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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지지자를 파블로프의 개로 만든 여권…檢개혁, 야바위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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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죄목’만 남았을뿐 윤석열 해임은 기정사실

판사에 대한 세평 수집을 ‘불법 사찰’로 몰며

없는 죄를 창조하느라 야바위판 벌이고 있어

‘검찰개혁=윤석열 축출’ 조건반사에 자신감 얻어



검찰개혁, 왜 지록위마의 야바위판이 됐나



중앙일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나라의 환관 조고가 황제에게 사슴을 바쳤다. “말입니다.” 황제가 물었다.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 조고는 끝까지 말이라 우겼다. 다른 신하들 또한 조고를 따라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했다. 모두 조고의 위세에 겁을 먹었던 것이다. 결국 제 판단력을 못 믿게 된 황제는 정사에서 손을 떼고, 얼마 후 조고에게 죽임을 당한다.

불법사찰이란 무엇인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판준비를 위한 세평 수집을 ‘불법사찰’이라 부른다. 서울고검의 공판업무 매뉴얼에는 ‘재판부별 재판방식에 편차가 있으므로 재판부별 특성을 파악해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그것이 불법사찰이란다. 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말로써 허구의 세상을 지으려는 것이다.

이 바벨의 혼란을 수습해준 것은 조국 전 장관의 SNS글. 거기엔 불법사찰의 명확한 정의가 등장한다. ‘첫째, 공직과 공무와 관련이 없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법이다. 둘째, 대상이 공직자나 공무 관련자라 하더라도 사용되는 감찰 방법이 불법이면 불법이다. 예컨대 영장 없는 도청, 이메일 수색, 편지 개봉, 예금계좌 뒤지기 등등.’

이 정의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사찰’과는 거리가 멀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것도, 불법으로 수집한 정보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가 내린 정의도 잊어버리고 그는 그게 불법사찰에 해당한다고 우긴다. 머리에 RAM만 있고 하드가 없나?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휘발하나 보다. 이를 지적하자 “악의적이고 야비한 오독”이란다.

그의 변명을 들어보자. “불법사찰의 방법에 영장 없는 도청, 이메일 수색, 편지 개봉, 예금계좌 뒤지기만 있는 게 아니란 점은 한국 사회 평균 보통인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인으로 생각해도 구글로 검색을 하고 공판검사에게 전화하는 것은 불법사찰의 방법이 아니다. 검색과 통화를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도 있던가.

사슴은 말이 아니다

중앙일보

그래픽=최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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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공개된 문건에 판사의 이념성향이나 인격에 대한 평가, 개인 취미 등이 기재된 것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이념성향’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는 것은 상식. 이는 공판 준비에 필요한 정보다. 판사의 ‘인격에 대한 평가’ 역시 미국에선 더 심하게 허용된다. ‘개인 취미’ 또한 불법이 아니라 불필요한 정보에 불과하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세평 수집이 ‘위법’이 되는 요건을 제시한 바 있다. “세평을 수집한 사람들을 위협·위축시키거나, 제어할 만한 개인적인 비위 사항이나 약점·취약점들이 수집돼 정리되어야만” 한다. 개인의 취미는 대상자를 위협·위축시키거나 제어할 만한 개인적인 비위 사항이나 약점·취약점에 속하지 않는다.

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불법사찰은 ①위법한 목적으로 ②특정인에게 불이익을 줄 의도로 ③지속적이고 예외적으로 이뤄질 때 성립한다. 공판 준비는 위법한 목적이 아니고, 검사가 판사에게 불이익을 줄 처지는 못 되며, 문서 작성은 매뉴얼에 따라 일회적으로 이루어졌다. 세 요건 중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는 셈이다.

법무부는 ‘물의 야기 법관’이라는 표현을 들어 마치 검찰에서 판사를 사찰한 양 몰아갔다. 하지만 그 정보는 공판참여 검사에게 문의해 얻어낸 것이었다. 사법농단 공판을 담당한 부장검사 역시 문건을 유출한 사실이 없다고 확인하며 이렇게 꼬집었다. “법무부에서 오해될 수 있도록 잔기술을 부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판결은 사전에 내려졌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윗사람을 농락하고 권세를 부리는 것)의 상황이 계속되자 사건의 법리 검토를 맡았던 이정화 검사가 양심선언을 했다. “문건에 기재된 내용과 다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죄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고, 감찰담당관실 검사들도 제 결론과 다르지 않아 그대로 기록에 편철했다.” 그런데 윗선에서 그 부분을 삭제하고 수사의뢰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이렇게 변명한다. “확보된 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 이외에도 유사한 판사 사찰문건이 더 있을 수 있는 등 신속한 강제수사의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0에다 100을 곱한다고 어디 답이 달라지던가. 확보된 문건 자체가 사찰문건이 아닌데, 그런 문건이 100장이 더 있다 한들 어떻게 수사대상이 되겠는가.

전국 59개 검찰청 평검사들이 총장의 징계와 직무정지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 고검장과 검사장·사무국장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장관 휘하의 법무부 과장들도 항의문서를 차관에게 전달했고, 추 장관 사람으로 알려진 조남관 권한대행까지 반기를 들었다. 그래도 장관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게다.

권력은 이미 총장을 내치기로 결정했다. 추 장관의 법률대리인은 그가 낸 직무정지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될 거라 말했다. “이틀 후면 집행정지 효력이 없어지므로 소 이익이 없어진다.” 해임은 기정사실이고, 남은 것은 각하께서 거기에 사용하실 ‘죄목’뿐. 그래서 없는 죄를 창조하느라 지록위마의 야바위판을 벌이는 것이다.

야바위판

세평 수집을 ‘불법’이라 부르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법률과 판례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은 그것을 제시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게 불법사찰이라 우기는 것은, 법학자가 아니라 정치인으로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법학교수회에서는 검찰총장의 직무정지를 ‘헌법과 법치주의의 훼손’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법학을 전공한 그에게 리걸 마인드(legal mind)가 없다는 것은 심히 민망한 일이다. 그는 사법의 문제를 늘 정치화한다. 정의를 법정 안이 아니라 법정 밖에서 구하려는 것이다. 법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던 그가 밖에서는 헤프게 재잘거린다(twitter). 그의 판사는 법정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의는 지지자들의 판결에 있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 야바위를 벌이는 것이다. 바람잡이들의 연기도 볼 만하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의 혐의가 “충격적”이란다. 김남국 의원은 불법사찰에 “소름”이 끼친단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충격을 받고 닭살이 돋는 이상증세. 이 오버액션은 그 사건을 대하는 지지자들의 신체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넛지’라 할 수 있다.

백주 대낮에 이런 가공할 사기극이 가능한 것은 믿어주는 지지층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치적 설득에 기만극을 활용하는 것은 자유주의 정치 문화에서는 낯선 현상. 이런 것은 대의의 올바름으로 수단의 불법성을 용인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요즘 민주당의 정치 커뮤니케이션이 이상해졌다.

파블로프의 실험

1950년대 소련에서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를 이용한 선전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개가 종소리에 반응하듯이 인간은 언어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실험의 요체는 끝없는 반복 학습으로 인민들을 ‘현실세계보다 구호·표어·상징에 반응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그 학습을 거친 이는 현실의 사슴이 아니라 ‘말’(馬)이라는 말에 반응하게 된다.

민주당은 지지자들을 현실이 아니라 구호에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었다. 사실 윤 총장은 개혁에 반대하지 않았다. 제도 개혁은 입법부 소관이고, 검찰 인사는 추 장관 혼자 했다. 거기에 저항의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현실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기득권의 저항’이라는 구호에 반사행동을 할 뿐이다.

그가 개혁에 반대해 쫓겨나는 게 아니다. 그의 죄는 따로 있다. “울산 사건을 만들었다.”(황운하) “조국 일가를 쑥대밭 만들었다.”(김두관) “라임·옵티머스와 원전수사를 했다.”(김태년) 이제는 그냥 노골적으로 털어놓는다. 이 뻔뻔함은 지지자들의 몸속에 이미 ‘검찰개혁=윤석열 축출’이라는 반사기제가 형성됐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재심 전문으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가 보다못해 항의하고 나섰다. “아닌 건 아닌 겁니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미 현실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판사 사찰’이라는 신호에 조건반사를 할 뿐이다. 윤 총장은 해임될 것이다. 해임의 유일한 근거는 당의 구호와 지지층의 신체 사이에 형성된 생리학적 반사기제다.

대통령까지 이 집단망상의 포로가 됐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장관의 손을 들어주며 그는 감추어진 민낯을 드러냈다.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찰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던 악습을 완전히 뜯어고치겠습니다.” 조건 반사된 지지자들을 거느린 채 그는 자신이 뜯어고치겠다던 그 악습의 수호신이 되었다.

■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 윗사람을 농락하고 권세를 부린다는 뜻.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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