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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선수가 낸 아이디어가 현실로… 이게 바로 NC의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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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감독·박민우가 말하는 NC

프로야구 NC의 창단 첫 우승은 ‘리니지 집행검’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MLB닷컴 등 해외 언론이 일제히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트로피”라고 극찬했다. NC 내야수 박민우(27)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제 아이디어입니다! 퍼뜩 생각난 순간부터 ‘이건 대박이야’ 직감했어요. 앞으로 NC 왕조를 상징할 검이죠.” 이동욱(46) NC 감독도 가만 있지 않았다. “내 지분도 있어. 너희가 홈런 치면 더그아웃에서 칼 뽑는 동작으로 한다는 걸 내가 우승 세리머니로 하자고 조언했잖아.” 박민우가 말을 이었다. “구단주님께서 ‘집행검 보너스’를 주시리라 내심 기대하고 있습니다. 회사 게임을 널리 알렸으니 리니지 CF 모델로 써주시지 않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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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NC의 이동욱(왼쪽) 감독과 박민우가 28일 창원NC파크에서 종이로 만든‘집행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이 검은 엔씨소프트 임직원들이 한국시리즈 기간에 썼던 응원 도구다. 2011년 창단 첫 훈련장에서 만나 동고동락했던 두 남자는“KBO리그 9번째로 탄생한 우리 팀이 9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다니 꿈같다”고 했다. 사진 촬영 때만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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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진이 형, 리니지CF 기대합니다”

지난달 28일 NC의 온라인 우승 축하연을 앞두고 두 남자를 만났다. 9년 전 팀 창단 첫날 코치와 신인 선수로 만나 우승까지 함께 걸어 온 사이다. 한국시리즈 공식 MVP는 주장 양의지이지만, 이 감독은 “내 마음의 MVP는 민우”라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박민우를 만난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2011년 10월 11일 전라남도 강진 야구장에서 처음 봤어요. 저는 서른일곱 수비 코치였고, 민우는 까까머리 신인이었죠. 민우가 고교 때 이영민 타격상을 받았고 프로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유망주였지만 보완할 게 많았습니다. 선수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밥 먹는 시간 빼고 오로지 야구만 했어요. 틈나는 대로 야구장 돌멩이 주워가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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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강진 야구장에서 열린 NC의 창단 첫 훈련에서 노진혁을 지도하는 이동욱 감독. 당시 수비코치였다./N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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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도 회상했다. “그때는 감독님이 젊으셔서 펑고 훈련 때 파워가 남다르셨어요. 흰머리도 별로 없었는데, 제 수비 봐주시느라 머리가 하얗게 세신 것 같아요. 그런데 강진 시절은 진짜 힘들었어요. 치킨 7마리는 시켜야 겨우 배달 오는 깡시골에서 고교 때도 안 해봤던 훈련량을 주 6일씩 소화하는데, 저는 제일 막내였으니까 형들 눈치 보며 심부름할 것도 많았거든요. 그때 같이 고생했던 (나)성범 형, (노)진혁 형, (김)진성 형, (원)종현 형 등과 통합 우승을 일궜다는 게 가슴 벅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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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강진 첫 훈련에 참가한 박민우의 모습. 그는 "프로에 오면 편하게 운동할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보다 더 살벌하게 훈련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N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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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애틋한 10년 인연엔 ‘눈물의 박민우 필드’가 있다. NC 미국 스프링캠프에서 펑고를 계속 놓치는 신인 박민우를 보다 못한 이동욱 당시 수비코치가 나무가 우거진 보조 구장으로 데려갔다. 박민우는 펑펑 울면서 밤낮으로 일대일 훈련을 했다. 이 감독은 “민우 하체가 길어서 수비 자세가 뻣뻣해지기에 다리 벌리고 의자에 앉아 공 받는 특훈을 하는 등 갖은 애를 썼다”며 “국가대표 2루수로 성장한 민우가 대견하다”고 했다. 박민우는 “제 야구와 함께 울고 웃어주셨던 감독님을 ‘제2의 아버지’로 사랑한다”고 했다.

◇새 목표: 창원에서 다시 집행검 뽑기

NC는 4년 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4전 전패로 맥없이 물러났지만, 올해 그 아픔을 되갚았다. 둘은 한국시리즈 4차전 승리가 우승에 결정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감독은 “민우가 4차전 끝나고 ‘제가 우승 감독 만들어드릴게요’ 메시지를 보내줬다”며 “선수들이 긴장해서 1~3차전엔 수비 실수도 나오고 기량 발휘를 다 못 했는데, 이후부터는 우리 리듬대로 경기를 풀었다”고 했다.

이 감독은 우승 기자회견에서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울먹거렸다. 그는 “야구로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는데 어머니는 항상 저를 믿고 지지하셨다. 그 사랑을 이번 우승으로 보답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고 눈물의 의미를 말했다. 그의 야구 인생은 빛보다 그림자가 익숙했다. 동아대 졸업 후 롯데(1997~2003)에서 통산 143경기 타율 0.221 5홈런 26타점을 기록하고 서른에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숫자와 영어가 난무하는 야구 데이터가 낯설었지만 누구에게든 묻고 배워 데이터에 해박한 지도자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격의 없는 의사소통이 NC의 최고 장점인 것 같아요. ‘집행검’ 아이디어도 구단이 무시는커녕 적극 채택해줘서 참 고맙습니다.”

박민우는 “서울로 가기 전 ‘우승 못 하면 창원 집에 안 내려온다’고 비장하게 선언했는데, 부모님이 TV로 우승 장면을 보고 한참 우셨다고 한다”며 “고교 타격상에 프로 신인왕, 골든글러브, 태극마크, 팀 우승반지까지 다 이루다니 나는 참 축복받은 야구 선수”라고 했다. “한 가지가 남았네요. ‘NC 응원석이 꽉 찬 창원 홈구장에서 우승하기’. 새로운 목표로 삼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 감독이 말했다. “민우야, 우승하고 숙소에서 만난 꼬마에게 네 모자 씌워줬잖아. 그 꼬마 우리 친조카다.” 박민우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이런 운명의 장난이! 그럼 감독님 모자 주시고 제 모자 돌려주세요. 저 팬들께 우승 당시 장비들 다 드려서 하나도 없어요!”

[창원=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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