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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김광일의 입] 문 대통령의 ‘추미애 사태’ 출구전략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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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장관이 사면초가다. 이제 어디에도 우군은 없다. 하나 남은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뿐이다. 그만큼 문 대통령도 결단을 내리기엔 부담이 너무 커지고 말았다. 대통령이 한두 달 전에 추 장관을 경질했으면 이렇게까지 코너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문 대통령과 정세균 총리가 연쇄적으로 추 장관을 개별 면담했다. 그 자리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 궁금하다. 한국일보는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의 독대에서 추 장관은 “직(職)을 지키겠다”는 말을 하고 문 대통령은 사퇴를 설득하는 얘기가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이 정 총리를 만났을 때 “고민이 많다”고 한 것은 추 장관의 퇴진 시기를 고민한다는 뜻이었으며, 친문 핵심인 홍익표 의원도 공수처 출범으로 추 장관의 임무는 완수된 것으로 본다는 취지로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다. ‘임무가 완수됐으니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정 총리가 불을 지핀 추미애·윤석열 동반 퇴진론이 무게가 실리는 듯 했다. 적어도 청와대와 여권의 분위기는 그랬다. 그러나 오후에 감찰위원회와 행정법원의 단호한 결정들이 잇달아 나오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윤석열은 물론이지만, 추미애도 자진 사퇴를 하지 않을 것이란 쪽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애초부터 야당은 ‘동반 사퇴론’이란 말 자체가 황당하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권이 있는 정세균 총리가 대다수 국민이 ‘잘못돼도 너무 잘못됐다’고 하는 추 장관에 대해 해임건의를 해야지, 제대로 법대로 수사하는 윤 총장에게 자진 사퇴하리니 무슨 해괴한 발상인지 모르겠다.” 동반사퇴가 ‘해괴하다’는 것이다. 시청자 댓글 중에는 “돼먹지 않은 양비론(兩非論)이라니, 너희가 무슨 황희 정승이냐”는 질책도 있었다. 윤 총장이 먼저 사퇴하고, 이어서 추 장관이 물러나는 ‘선(先) 총장 사퇴, 후(後) 장관 사퇴’라는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도 야당에서는 “비겁한 ‘물귀신 작전’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검찰 내에서는 처음으로 추 장관에 대한 단독 사퇴 요구가 나왔는데, 어제 대전지검 천안지청 장진영 검사는 ‘추미애 장관님, 단독 사퇴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에서 “장관은 진정한 검찰 개혁을 위해 장관직에서 단독 사퇴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현 사태의 출구 전략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바둑에서처럼 ‘사석(捨石) 작전’이다. 버릴 사, 돌 석, 돌을 버리는 것이다. 누가 버려야 할 돌인가.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은 정권에 가장 큰 부담을 안기고 있는 ‘국민 밉상 추미애’다. 추 장관이란 돌을 버리고, 정권을 살려야 한다는 명분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눈 딱 감고 추 장관을 단독으로 경질하는 것이다. 가능성은 높지 않다. 둘째는 4일 금요일 징계위가 윤 총장에 대한 해임·면직 같은 중징계를 결정하고 문 대통령이 그것을 재가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 또한 윤 총장이 불복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에서 뒤집어지면 이번에는 추 장관이 아니라 문 대통령 자신이 치명상을 입게 된다.

셋째 ‘동반 퇴진론’을 내세워 총대를 멨던 정세균 총리가 한 번 더 총대를 메는 것이다. 즉 총리가 윤석열 총장을 따로 만나 자진 사퇴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정사에 총리와 검찰총장이 단독으로 회동하는 사례는 없었다. 그리고 윤 총장이 그런 제안을 수락하지도 않을 것이다. 넷째는 문 대통령이 직접 윤 총장에게 물러나라는 뜻을 담아 다시 한 번 ‘메신저’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서 문 대통령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한 가지, 청와대와 민주당에서 절박하게 나오는 마지노선은 오는 12월9일로 예정돼 있는 공수처법 처리 이전까지 윤석열 총장의 거취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12월9일이면 다음 주 수요일이다.

어제 진행됐던 일들을 정리해드리면 이렇다. 서울행정법원은 추미애 법무장관의 ‘무법자(無法者)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추 장관의 조치에 대해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몰각(沒却)하는 것”이라고 했다. ‘몰각’이란 ‘아주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이보다 단호할 수가 없다. 조미연 판사가 호남출신이라느니 국제인권법 출신이어서 좌파 성향이라느니 말들이 있었지만 김광일의입 방송은 어떤 선입견과 어떤 예단도 할 필요가 없다고 했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법리(法理) 앞에 조 판사와 행정법원도 법관의 양심을 지켜낸 것이다. 추미애 장관과 그 추종세력을 제외한다면 대개 그럴 것이라고 본다.

조미연 판사는 표지 포함해서 무려 10쪽 분량의 결정문을 내놓았는데, 이중 3쪽에 걸쳐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조했다. 이런 문장들이다. “현행 법체계는 검찰의 수사 및 공소 권한을 장관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총장으로 하여금 부당한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임명 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검증하고, 임명되고 나면 임기를 보장했다.”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 감독권에 맹종할 경우 검사들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유지할 수가 없다.”

하나하나 주옥같은 결정 문장들이다. 우리나라 검찰과 사법을 정치권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이정표 같은 판례를 남긴 것이다. 앞으로 어떤 정권, 어떤 대통령, 어떤 법무장관이 오더라도 이 문장을 액자에 넣어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법치와 민주주의를 위해 그만큼 중요한 결정문이 됐다.

이에 앞서 법무장관 자문기구인 감찰위원회도 추미애 장관의 부당함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내용은 이렇다.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직무배제·수사의뢰는 중대한 절차적 흠결이 있어 부적정하다.” 이 보다 명확할 수가 없다. 추 장관의 조치에는 중대한 흠결이 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법무부 박은정 감찰담당관, 그리고 그곳에 파견 갔던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 사이에 대질 심문이 있었는데 서로 큰소리가 오갔다고 한다. 이정화 검사는 이른바 ‘판사 사찰’ 의혹 사안이 검찰총장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적은 보고서가 삭제됐다고 양심선언을 한 주인공이다. 그런데 상관 격인 박은정 감찰담당관은 “삭제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했고, 이정화 검사는 “삭제를 지시하셨습니다”라고 맞섰다. 누가 맞을까. 여러분은 이미 정답과 진실을 알고 계실 것이다.

감찰위과 행정법원에서 이 같은 일련의 ‘양심적 브레이크’가 작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윤석열 징계절차를 강행하려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법원 결정으로 다소 문제가 생겼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했다. 4일, 금요일에 윤 총장 징계와 해임 절차가 이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은 정권과 집권 세력에게 그렇다는 뜻이다. 자기들의 생존이 위태롭다는 뜻이고, ‘레임덕의 둑’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뜻이고, ‘윤석열 검찰’의 칼날이 그 어느 때보다 두려워졌다는 뜻이고, 이렇게 밀리다간 서울·부산 보궐선거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다는 위기의식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웃지 못 할 일이 하나 벌어졌다. 감사원이 원전 문건 444개를 삭제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을 조사하면서 ‘그런 지시를 내린 윗선이 누구냐’고 묻자 “감사 정보를 미리 들은 적이 없다. 나도 내가 신내림을 받은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이 공무원의 처지가 참 딱하기도 하고, 국민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복잡한 심정이다. 감사원 조사에서 이 공무원은 같이 대책 회의를 한 뒤 지시를 내린 산업부 상관의 이름, 그리고 청와대까지 뻗쳐 있는 윗선의 이름들이 입술 끝에 맴돌았겠지만, 그 이름을 꾹 참고 대신 ‘신내림을 받았다’고 한 것이다. 하긴 자신에게 그 상관들이 신처럼 보일 때도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감사원의 월요일 감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일요일 밤에 사무실에 들어가 증거 문건을 컴퓨터에서 삭제했던 공무원이 ‘신내림을 받고 문서를 삭제했다’고 한 것인데, 외국 기자가 알고 한국을 조롱하는 기사를 쓸까봐 겁난다. 이참에 문재인 정부에게 스스로 ‘신내림 정부’라고 믿고 있는 집단이냐고 묻고 싶다.

오늘 조선일보 사설은 ‘추미애라는 꼭두각시’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고 뒤에 있으면서 추 장관을 내세워 윤 총장을 공격했던 것이 지난 11개월 간 벌어진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갈등의 본질이다. 추 장관은 악역을 맡은 꼭두각시일 뿐이다.” 또 조선일보 사설은 ‘문 정권의 윤 총장 집단폭행 전체가 국정농단’이란 제목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일은 청와대의 울산 선거 공작과 월성 1호기 평가 조작 사건 등 정권의 불법을 덮기 위한 무리수이다. 불법의 최고 책임자는 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즉각 추 장관을 경질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라.” 참으로 통렬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은 이번 사태를 ‘국정농단’으로 규정했다. 박근혜 정권은 국정농단이란 구실로 탄핵됐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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