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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文, 남북대화 복원하려는데…"김정은 비이성적" 박지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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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정보위 브리핑 "김정은, 코로나 비이성적 행동"

8월 '김여정 위임 통치' 논란 이어 남북대화 찬물

朴, 스가 총리 특사 면담 뒤 서훈 실장 방일 무산

국정원 "박 원장, 서 실장 서로 깍듯, 소통 잘 돼"

중앙일보

지난 7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국가정보원장·통일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박지원 국정원장(왼쪽), 이인영 통일부 장관(가운데)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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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책 추진을 책임진 외교·안보 사령탑엔 대북 특사가 두 명 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뒤 20년 만에 복귀한 박지원(78) 국가정보원장과 2018년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2018년 6·12 1차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2019년 2·28 하노이 정상회담을 만든 서훈(66) 국가안보실장이 주인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서훈 안보실장, 박지원 원장과 함께 1987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임명하며 "멈춘 남북관계를 움직일 소명이 있다"고 임무를 지정해줬다. 당시엔 '드림팀'으로 불린 인사였다.

하지만 2일 현재 취임 126일(서훈 실장은 152일) 동안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했느냐는 성과는 물론 세 사람이 엇박자만 낸다는 비판이 여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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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 전날 만찬장에서 당시 방북한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가운데)이 서훈 국가정보원장(왼쪽) 소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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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27일 국회 정보위원회 브리핑이었다. 박지원 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환율 급락을 이유로 10월 말 평양의 '거물 환전상'을 처형했으며, 지난 8월엔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물자반입 금지령을 어긴 핵심 간부를 처형했다고 보고했다.

바이러스가 바닷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어업과 염전까지 금지했다고 공개하면서 "김 위원장이 비이성적으로 대응하는 건 물론 과잉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당시 한 정보위 참석자는 "문재인 정부 임기 4년차를 맞아 범정부 차원에서 남북대화 재개를 추진하는 가운데 김 위원장의 불안정한 행태를 무더기로 공개한 건 이례적일 뿐 아니라 찬물을 끼얹는 일이었다"며 "바이든 행정부에 북한의 코로나19 위기를 부각하려 의도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진지한 협상을 할 때가 아니다라는 신호를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박 원장의 브리핑 내용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코로나 백신 등 대북 인도적 지원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이인영 장관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박 원장의 정보위 브리핑이 민감한 파장을 부른 건 처음이 아니다. 취임 이후 첫 브리핑인 8월 20일엔 김 위원장이 통치 스트레스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에 권한 일부를 넘겨 '위임통치'를 한다고 밝혀 논란을 불렀다. 이후 이인영 장관이 "위임 통치가 아니라 역할 분담을 한 것이며 김여정이 이인자나 후계자로 전권을 행사한다는 건 무리한 해석"이라며 국정원 정보를 부정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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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성사 주역인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송호경 북한 아태위원장(왼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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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원장은 지난달 10일 정보기관 수장으론 이례적으로 대일 특사로도 나섰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를 만나 문재인-스가 선언으로 한·일관계를 정상화한 뒤 김 위원장을 도쿄올림픽에 초청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스가 총리가 박 원장에 "한국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의 진전된 방안 제시를 먼저 하라"고 요구하면서 서훈 실장이 도쿄를 방문해 양국 갈등을 매듭지으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야당 정보위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박 원장은 다시 대북 특사로 나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겠다는 목표 한 가지에만 매달리는 것 같다"며 "현 정부의 초대 특사인 서훈 실장과의 경쟁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이인영 장관까지 대북 식량·비료 지원은 물론 코로나19 백신 지원 카드까지 공개적으로 내밀며 삼각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런 '드림팀' 내부 경쟁으로 지난 2년간 정의용 전 안보실장 시절과 달리 청와대의 컨트롤 타워로서 조정 기능은 급격히 약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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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5일 대북특사로 방북할 당시 서훈 국가정보원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네 번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다섯 번째)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은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오른쪽 두 번째), 김상균 국정원 2차장(맨 오른쪽).[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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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서훈 실장이 대선배로 박 원장을 깍듯이 예우하는 등 두 사람의 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국정원은 정책집행 부서가 아니므로 청와대와 외교부·통일부 등에 지원하는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 원장 역시 공개 석상에선 서 실장을 "내 직속 상관"이라고 부르며 존중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취임 이후 이인영 장관을 포함한 3인 주례 오찬 회동을 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 전반을 조율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정기 멤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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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9월 16일 오전 경기 파주시 판문점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북한의 판문각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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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 원장은 지난달 임명된 김기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까지 국정원 차관급 5명 전원의 인사에서 소외되는 등 인사 권한에 관한 불만이 적지 않다고 한다. 후속 인사를 놓고도 내부에서 알력이 끊이질 않는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경쟁 구도 속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성공의 중요한 다른 한 축인 한·미 동맹 간 조율이 실종됐다는 점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변화가 예고된 상황에서 미국의 지지 없는 대북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22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염두에 두고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옥토버 서프라이즈(미 대선 직전 깜짝 사건)'로 추진했던 일이다.

김홍균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에 앞서 한·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건 긍정적 시도지만 미국이 북한은 물론 미·중 관계를 포함한 동북아 정책을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도쿄올림픽 구상을 내보인 건 우리만의 희망사고이거나 전략적 실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급하게 한국 패만 먼저 보여줘 실현 가능성만 작아졌다는 뜻이다.

여권의 핵심 의원은 "한반도는 물론 세계정세에 다시 변화가 일고 있다"며 "지금은 씨를 뿌리거나 추수하는 계절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와 주변국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대안을 모색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효식·김다영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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