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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베를린 소녀상’ 지킨 한정화 “이제 의회 동의없인 미테구청이 철거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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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베를린 코리아협의회 대표 현지 인터뷰

일본 압박 맞서 끈질기게 시민사회·구의회 설득

미테 구의회 압도적 ‘소녀상 영구 존치’ 이끌어내


한겨레

2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코리아협의회 사무실에서 한정화 대표가 환히 웃고 있다. 베를린/ 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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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미테구 의회에서 ‘평화의 소녀상’ 존치 결정이 통과하기까지, 한 달이 일 년 같았어요.”

독일 베를린시 미테구 의회의 ‘평화의 소녀상 영구 존치 결정’을 이끌어낸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를 2일(현지시각) 베를린의 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 대표는 “9월 말 소녀상 설치 이후 일본의 훼방으로 곧 철거 명령이 있겠다고 추측했지만, 철거 날짜가 너무 급박해서 황당했다”며 단체의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한 채 소녀상 존치에 매달렸던 한 달여 간의 숨가쁜 과정을 떠올리며 속시원하게 웃었다.

미테구청은 지난 10월7일 “10월14일까지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하겠다”는 명령을 내렸다. 한 대표는 곧바로 철거명령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소녀상 앞에서 매주 콘서트를 열었고, 지난달 25일 베를린 도심 잔다르망 마르크트에서 열린 소녀상 철거반대 의자 설치 시위에는 150명이 참여했다. 온·오프라인으로 철거 반대 운동도 활발히 펼쳤다. 그 사이 독일 유력 신문에는 평화의 소녀상 뉴스가 속속 보도됐다.

결국 미테구 의회는 1일 찬성 24 대 반대 5의 압도적 표차로 평화의 소녀상 영구설치 결의안을 의결하고, 향후 소녀상의 영구설치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결의안은 소녀상에 대한 철거명령을 철회하고 당초 내년 8월14일이었던 설치기한을 내년 9월 말까지로 6주 연장하기로 했다. 한 대표는 “여전히 구청이 철거 결정권을 갖고 있다”면서도 결의안 문구 중 한 항목에 주목해 소녀상이 영구 존치 될 것으로 전망했다. 결의안을 보면 ‘구청은 소녀상 영구 존치 해결방안을 찾는다. 그때 구의회도 참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 대표는 의회가 압도적으로 영구 존치를 가결한 상황을 언급하며 “이제 미테구청이 의회의 동의 없이 소녀상을 철거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구의회는 “일본군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아시아 여성들을 성착취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비판적이고 예술적인 토론은, 베를린의 역사적 배경에 기반한 베를린 미테구, 베를린 시, 나아가 시민사회의 공공장소에서 이뤄져야 한다. 평화의 소녀상은 전쟁은 물론 평화 시기에도 일어나는 성폭력에 대한 토론을 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소녀상 영구존치 결정의 근거를 명확히 했다. 코리아협의회가 전단지를 만들어 들고 다니며 일일이 의원들을 설득해 이룬 가장 뜻깊은 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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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반대를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베를린/ 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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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는 “철거 명령이 떨어졌을 때, 우리가 마치 시당국의 규정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처럼 설명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소녀상이 외교적 갈등이 된다는 이유로 피해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고, 소녀상 자체가 마치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게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한 대표가 이런 답답함을 토로하자, 베를린에서 30여년간 활동해온 코리아협의회와 다양한 인연을 맺어왔던 현지 관계자들의 도움이 이어졌다. 특히, 미테구 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방안을 조언하는 이가 많았다. 코리아협의회 활동가들은 좌파당과 녹색당 의원들을 찾아가 소녀상의 의미를 설명했다. 특히 좌파당은 코리아협의회에 직접 두 번이나 찾아와 한 대표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코리아협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하면서 연대했던 30여개 단체도 ‘소녀상 지킴이’를 자청해 왔다. 이주민 여성단체인 ‘야지디 여성단체’, 유고슬라비아 내전 때 성폭력 문제를 다루며 활동하는 ‘메디카 문디알레’, ‘극우에 반대하는 할머니’ 등 단체가 힘을 보탰다. 여러 한인단체들도 물심양면으로 함께했다.

앞으로 코리아협의회는 미테구청, 구의회와 함께 소녀상 영구존치를 위한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한 대표는 좌담회, 학술회, 시민들과의 대화의 장을 계획하고 있다. 한 대표는 “전쟁 범죄를 알리는 것뿐 아니라 피해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념비는 소녀상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며 “소녀상이 용기 있는 여성을 기린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베를린/ 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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