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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판공비' 논란으로 보는 선수협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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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야구계 발전 위해 필요한 선수협, '야구인' 목소리 고르게 담아내야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선수협)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년전 그들의 선배들과 야구팬들이 온갖 역경과 시련을 감수하며 선수협을 출범시켰던 대의가 무엇이었는지 초심을 되돌아봐야할 때다.

선수협 회장인 이대호(롯데 자이언츠)의 '판공비(업무추진비)'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하필 이대호가 회장을 맡은 2019년 3월 이후 판공비가 기존의 연 2400만 원에서 2배 이상인 6천만 원으로 갑자기 크게 증액된 것이다. 둘째는 판공비(辦公費)라는 말 그대로, 공무를 처리하는데 써야할 자금을 왜 법인 카드가 아닌 현금, 그것도 개인 계좌로 받아서 썼느냐는 의문점이었다.

기자회견 열고 해명 나선 이대호
오마이뉴스

▲ 판공비 인상 문제로 비판을 받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이대호(롯데 자이언츠)가 2일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논란에 대해 해명하던 중 취재진을 향해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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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회장은 지난 2일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명에 나섰다. 먼저 판공비 인상에 대해서는 본인이 주장했던 것은 맞지만 당시는 자신이 회장에 취임하기 전이었고, 누가 당선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을 노리고 판공비를 스스로 인상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 아무도 선수협회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이들이 없어서 참여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금으로 판공비를 사용하고,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의혹에는 그동안 선수협회에서는 역대 회장 및 이사진에게 지급되는 비용을 '판공비'로 명명하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보수 및 급여로 분류해 세금 공제 후 지급해온 게 '관행'이었다고 설명했다. 선수협회장으로서 법인카드를 따로 받은 게 없었고, 선수협이 생긴 이래 20년 이상 전임 집행부에서도 계속 이어져 왔기에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고 했다. 앞으로 잘못된 관행을 조속히 바로잡겠다며 사과했다.

판공비 사용처에 대해서는 후배들을 만나서 식사를 하거나, 선수협 회의를 위해 서울에 다녀온다든지, 선수들을 위한 경비 등으로 활용했으며 사적인 용도로 쓴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당초 이대호의 선수협회장 임기는 내년 3월까지도 연임도 가능했지만, 판공비 논란이 불거지기 전 미리 사퇴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이대호의 해명과 사임 의사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대호의 주장과 달리 판공비 인상이 논의된 2019년 3월 당시 선수협 임시 이사회의 분위기는 사실상 '이대호를 추대하는 자리'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이대호가 관행이라고 주장했던 판공비 사용권한에서 대해서도 이미 선수협회에서 2012년 1월 '판공비는 반드시 카드로 결제하고, 증빙이 없는 판공비는 부인한다'며 투명한 자금 사용에 대한 관련 규정을 자체적으로 이미 마련해놓은 사실이 알려지며 설득력을 잃게 됐다.

당시 박재홍 회장과 박충식 사무총장은 이사회가 결정한 판공비 전액을 프로야구 2군 선수들의 장비지원금으로 기부하는가 하면, 판공비를 반드시 카드로 결제하도록 해 임의로 유용할 수 없도록 조치한 것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어쩌면 판공비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초에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다. 먼저 이대호가 회장에 취임하던 과정부터 살펴보자. 이대호는 처음부터 회장직에 그리 의욕이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이점은 이대호의 친형이자 공식 에이전트인 이차호씨가 개인 SNS에 올린 판공비 관련 해명이나, 야구계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대호가 국내야구 최고연봉자이자 스타플레이어로서 상징성이 큰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대호 같은 고액연봉자이자 나이많은 고참급 선수의 경우, KBO-구단을 상대로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는 선수협 회장은 개인적으로 부담이 큰 자리였다. 오죽하면 판공비 인상 논란도 자발적으로 회장직을 맡으려는 사람이 없으니 '보상' 차원으로 나온 아이디어였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선수협의 위상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스타급 선수들조차 먼저 앞장서야 하는 역할을 기피하고, 궁색하게도 '눈먼 돈'으로 변질된 판공비를 보상의 조건으로 내세워 독려해야할 만큼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선수협의 위상이다.

20-30년전 선수협의 태동을 이끌었던 선배 때와는 사뭇 다르다. 1980년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던 고(故) 최동원은 당시 선수들의 열악한 훈련 환경과 복지 상태를 보며 선수들의 목소리를 합법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미 롯데의 간판스타였고 부와 명예가 보장된 최동원이 굳이 가시밭길이 뻔한 선수협 창립에 앞장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최동원은 자신의 이익보다 연봉이 훨씬 낮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동료들-후배들의 권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대의'로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그 결과로 돌아온 것은 기업구단들의 조직적인 박해와 강제 트레이드라는 안타까운 희생이었다.

첫 시도는 실패했지만 최동원이 뿌린 씨앗은 10여년 뒤에 결실을 맺었다. 송진우와 양준혁, 마해영, 심정수 등의 주도로 2000년 1월 마침내 한국프로야구에 첫 선수협을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때도 역시 KBO와 구단들의 반대가 극심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선수들이 강제로 유니폼을 벗거나 트레이드당하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지만, 선수들은 끝까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팬들과 여론이 선수들을 끝까지 믿고 지지해준 덕분이기도 했다.

선수협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 갑자기 벌어진 것도 아니다. 2011년 손민한 회장 시절에는 '회계 투명성' 문제로 사실상 존폐의 기로에 서기도 했고, 2017년에는 '메리트 부활 요구'로 이호준 회장이 사임하고 이대호 회장이 선임될 때까지 사실상 2년간 수장없는 공백기를 맞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팬들에게는 저연봉 선수들의 권익을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보다는 고액 연봉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귀족 노조'로 변질되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고참급과 스타 선수들에게는 맡고 싶지 않은 자리로 취급받은 지 오래다. 20-30년과 달리 선수협의 존재 가치를 바라보는 여론도 싸늘해졌다.

새로운 집행부가 등장하여 인물만 바뀐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낡은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선수협은 여전히 야구발전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지만, 이대로라면 회장이나 사무총장 개인의 능력 및 의지에 따라 전횡이 벌어지기 쉬운 구조다. 일단 각 구단 연봉 상위 1~3위 선수가 자동으로 회장 후보가 되는 것부터가 적절하지 않다. 선수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위치에 있는 만큼 위상이 높은 스타급 선수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연봉이 리더십이나 책임감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부회장 혹은 공동 회장 같은 제도를 도입하여 권한과 부담을 분산시키는 것도 고려해야볼 만하다. 또한 고참급 선수들만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개선하여 중간 정도의 연차나 젊은 선수들도 선수협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은퇴 선수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선수협의 중심은 물론 현역 선수들이 되어야 하지만, 야구 현장을 잘 아는 은퇴 선수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선수협은 야구계 발전을 위한 조직이다. 현역과 은퇴 선수, 고참과 신인, 고액연봉자에서 최저연봉자까지 그야말로 모든 '야구인'들의 목소리를 고르게 담아낼 수 있어야 진정한 선수협이 되는 것이다.

이준목 기자(seaof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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