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결혼한 날도 연구실로…암 연구하다 코로나 백신 만든 과학자 부부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바이오엔테크 창업자인 우구르 사힌(왼쪽)과 외즐렘 튀레지 부부. 바이오엔테크 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혁신적인 과학자 남편과 감각이 뛰어난 임상의사 아내…서로를 보완하는 두 과학자의 환상적인 조합이 코로나19 백신을 탄생시켰다.”

노벨생리학상을 수상했던 스위스 과학자 롤프 징크나겔은 독일 바이오엔테크 창립자 부부에 대해 “환상적인 과학자 커플”이라 평했다. 2일(현지시간) 영국이 세계 최초로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하면서 생명공학 기업인 바이오엔테크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30년간 암치료 연구에 전념해오던 바이오엔테크 창립자 부부가 그동안 축적해온 연구 성과를 토대로 코로나19를 막아낼 백신을 개발한 이야기를 전했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은 신기술인 ‘메신저 리보핵산’(mRNA·전령RNA) 방식을 적용해 만들어졌다. 바이오엔테크 창업자인 우구르 사힌(55)과 외즐렘 튀레지(53) 부부는 암 항체 치료제 개발을 위해 mRNA를 연구해왔다. 1990년대 홈부르크대 병원에서 처음 만난 사힌과 튀레지는 암 환자들을 치료할 방법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사힌은 “우리는 표준 항암 치료만으로는 곧 환자에게 더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암연구에 매진하게 된 이유를 전했다.

바이오엔테크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기로 결정한 건 유럽에 본격적으로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이었다. 지난 1월 25일 사힌은 코로나19에 관한 논문을 읽고, 곧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덮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집 컴퓨터로 mRNA를 활용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침투를 막을 백신 디자인을 시작한 그는 회사를 설득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매진해왔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 전념했던 연구가 인류를 구할 백신 기술에 쓰인 것이다.

부부는 모두 터키 이민자 출신 독일 과학자다. 사힌은 터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독일 외국인 노동 정책으로 독일 포드 공장에 채용되면서 온 가족이 터키를 떠나 독일에 정착했다. 아내 튀레지의 아버지는 터키에서 외과의사로 일했다. 사힌 아버지와 비슷한 시기 독일로 건너와 작은 마을의 가톨릭 병원에서 일했다. 튀레지는 아버지가 일하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수녀들로부터 영감을 받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한때 수녀를 꿈꾸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됐다.

의대를 졸업한 뒤 두 사람은 ‘암 치료제 개발’이라는 공통된 꿈을 향해 나아갔다. 2001년 암 항체치료제 개발을 하기 위해 가니메드제약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암을 전염병처럼 물리치기 위해 신체의 면역체계를 프로그래밍하는 연구에 매진했다. 2002년 어느날 점심 같은 연구실에서 일하던 두 사람은 등기소로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합법적 부부가 된 두 사람은 바로 연구실로 돌아와 실험복을 입고 연구를 이어갔다. 그들의 연구는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상이었다.

과학자 커플은 항체치료 연구를 하다 mRNA로 연구를 확대했다. 바이오엔테크는 부부가 mRNA 집중 연구를 위해 2008년 설립한 생명공학 기업이다. 이사진 전원을 과학자들로만 구성했고, 연구진의 절반은 여성 과학자다. 부부는 mRNA 분야의 권위자인 카탈린 카리코 펜실베이니아대 생화학 교수를 포함해 60개국 출신 전문가들을 스카우트했다. mRNA 연구에 매진하려고 2016년 가니메드를 14억 달러에 매각해 그 수익금을 바이오엔테크에 재투자했다.

부부 과학자의 성공 뒤에는 믿고 투자해주는 ‘큰손’ 후원자가 있었다. 쌍둥이 형제이자 억만장자 투자자인 안드레아스와 토마스 스트룽만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2001년부터 사힌-튀레지 부부 사업에 2억 유로를 쏟아부었다.

화이자는 지난 2018년부터 독감 백신 개발을 위해 바이오엔테크와 협력해 왔다. 화이자는 코로나 백신 개발을 위해 바이오엔테크에 선불로 1억8500만달러(약 2063억원)를 지급했다. 개발이 완료되면 5억3300만달러(약 5943억원)가 추가 지급된다. 모건스탠리는 코로나19 백신이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에 130억달러(약 14조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했다.

부부는 돈방석에 앉게 됐지만, 수익금을 재투자해 mRNA 방식 등 신기술에 기반한 암 치료법을 개발하겠다는 원래의 꿈에 다시 몰두할 계획이다. 현재 바이오엔테크의 암 치료제 중 11개가 임상시험 중이다. 다수의 과학자는 치료제 임상 결과를 회의적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WSJ이 전했다. 그럼에도 부부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며 암 치료제 개발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자낳세에 묻다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