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이슈 윤석열 검찰총장

[김광일의 입] 돌고 돌아 결국 ‘문재인 대 윤석열’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요즘 사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돌고 돌아 문재인 대 윤석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법무장관과 여러 검사들과 판사들, 그리고 여야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다소 혼란스러운 전쟁터 같았지만, ‘김광일의입’에서 거듭 말씀 드린 것처럼 결국 이 싸움은 ‘돌고 돌아서 문재인 대 윤석열, 윤석열 대 문재인’ 싸움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아니 지난 1년 가까이 ‘추미애’란 세 글자가 여러 신문의 1면 톱에서 빠지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조선일보 사설 제목처럼 ‘추미애라는 꼭두각시’였을 뿐이고, 현 정권의 대리인이었을 뿐이고, 주인공들의 등장을 위한 엑스트라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 추미애라는 행동대장을 주저앉히는데도 여러 장수가 필요했는데, 가령 어제 문화일보는 ‘법치 파괴를 막은 다섯 사람’으로 이들을 소개했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꼭두각시 노릇을 했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였기 때문이다. 먼저 추 장관을 꺾어놓은 첫 번째 장수는 조미연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다. 조 판사는 추 장관의 직무정지 명령에 대해 취소 판결을 했다. “직무 배제는 검찰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검찰청법 취지를 몰각한다.” 이어서 두 번째 장수는 징계 절차의 부당성을 만장일치로 지적한 강동범 법무부 감찰위원장과 감찰위원들이다. “징계 청구 사유를 고지하지 않았고, 소명 기회도 주지 않아 절차에 중대한 흠결이 있다.”

세 번째로 추미애 장관에게 결정적 타격을 입힌 장수는 고기영 전 법무부 차관이다. 그는 징계의 부당성을 호소하면서 결연히 사표를 던졌다. “최근 일련의 사태에 차관으로서 책임을 공감한다.” 그리고 추 장관에게 대적한 네 번째 장수는 일주일 동안 총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다. 그는 직무정지 철회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총장의 임기가 보장되지 않으면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드는 중대한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 장관과 그 추종자들에게 결정적인 반기를 든 다섯 번째 장수로는 이정화 법무부 감찰담당관실 검사가 있다. 이 검사는 윤 총장에 대해 직무정지 무죄를 밝히는 양심선언을 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 성립 여부 분석 결과 ‘죄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상 살펴본 다섯 사람이 이 석간신문의 표현대로 “법치 파괴를 막은” 다섯 의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을 이렇게 비유하면 이해하기 참 좋으실 것이다. 한쪽 진영에는 이 나라의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려는 ‘법치주의 국가’가 있다. 맞서 있는 진영에는 ‘막무가내 찍어내기 왕국’이 있다. 누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법치주의 국가’의 대장으로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떠올랐고, ‘찍어내기 왕국’의 대장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추미애 행동대장’ 뒤에서 마치 존재가 없는 사람처럼 숨어 있었는데,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자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의 사태에 전혀 모르쇠로 일관하던 대통령이 어제 전격적으로 친정부적인 이용구 변호사를 법무차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문재인 보스’가 등장할 필요 없이 ‘추미애 행동대장’이 자신이 알아서 사태를 정리했으면 좋으련만, 추 장관은 앞서 말한 ‘법치주의 진영’의 다섯 의인들한테 연쇄 펀치를 얻어맞더니 태엽 풀린 인형처럼 주저앉았고, 그러자 문 대통령이 나서서 법무차관을 새로 임명하고 윤석열 총장을 맞상대할 채비를 갖춘 것이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 팔면봉 칼럼은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 윤석열 징계 위해 법무차관 전광석화 임명. 추미애에게 맡겼던 ‘윤 겨냥 칼날’을 직접 뽑아 드셨네.”

그러나 ‘법치주의 진영’의 ‘윤석열 대장’은 맞상대로 누가 나오든, 저쪽 행동대장이 나오든, 저쪽 보스가 나오든 자신의 할 일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는 스타일이다.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4.5%로 드디어 1위 자리에 오른 윤 총장은 직무에 복귀한 지 하루만인 어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에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 대해 ‘감사 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라고 지시하고 승인했다.

그런데 ‘추미애 행동대장’을 잠시 뒤로 물리고 대신 이용구 법무차관을 전격 기용해서 새로운 진용을 갖추려는 문 대통령은 벌써 스텝이 꼬이고 있다. 워낙 급하게 차관 임명을 하다 보니,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측면을 노출하고 만 것이다. 첫째, 임명 직후에 터져 나온 얘기는 이용구 신임 차관이 서울 강남에 아파트가 두 채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보시는 시청자도 있겠으나, 현 정권이 강남에 아파트 가진 사람을 워낙 ‘죄인’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파트 두 채 가진 고위 공직자를 잡도리해왔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말 따로 행동 따로’를 지적한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용구 차관이 월성 1호기 원전 조작의 핵심인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변호인이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용구 차관은 윤 총장의 해임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검사징계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윤석열·문재인의 최대 갈등 요인인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수사에서 원전 의혹을 부정하는 변호 활동을 해온 사람이다. 눈곱만큼이라도 법 상식이 있는 사람은 대번에 “전형적인 이해충돌”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양쪽으로 갈려서 치열하게 싸워온 한쪽의 ‘주장 선수’에게 이번에는 ‘경기 심판’을 맡긴다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어차피 문재인 정권은 그런 것 안 따지는 정권이다. 주장 선수한테 심판도 맡기고, 거꾸로 심판이었던 사람한테 선수로 뛰라고도 한다. 정권에 여러 형식으로 발탁된 판사들이 열심히 나서서 행동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문 대통령도 워낙 경황이 없고 당황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때는 확실한 자기편이라는 사람한테 행동대장 역할을 맡기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무만 보고 숲을 놓쳐서는 안 된다. 검찰을 둘러싼 근본 원인은 대통령이 인사권을 수단으로 검찰을 정치 도구화 시킨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검찰에 문제가 적잖았지만, 그때마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마지막 선을 넘지 않도록 인사권, 수사지휘권, 감찰권 행사를 자제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들어와 그 선이 무너졌다. 국민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의 학살에 가까운 인사권 전횡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그래서 결론은 검찰개혁은 허울일 뿐이고, 사실은 검찰장악이었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됐다.

요즘 이런 얘기가 돌아다닌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윤 총장이 수사 1호가 될 것이란 얘기다. 여권에서 공공연하게 꺼내고 있다. 추 장관이 12월 대대적인 학살 인사를 예년보다 한 달 가량 앞당길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 월성1호기 수사팀은 곧 공중 분해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최근 일선 검사들은 훗날을 위해 친정부 성향의 간부들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던 지시들을 이른바 ‘외압 일지’로 꼼꼼하게 기록해두고 있다고 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 법치 파괴 현장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한다.

오늘의 결론은 이것이다. 현 정권의 ‘검찰개혁’은 ‘검찰장악’이란 것이 만천하에 밝혀졌다. 추미애란 ‘행동대장’이 주저앉자 ‘보스’인 문 대통령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법치주의 진영’의 윤석열, ‘찍어내기 왕국’의 문재인, 두 사람이 직접 맞선 상황이 됐다. 한마디로 “돌고 돌아 결국 ‘문재인 대 윤석열’”이 된 것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