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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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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개혁 이끈 20세기 최연소 대통령 지스카르 영면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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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연령 인하, 낙태 합법화, 이혼 자유화 등 사회 변화 주도

'유럽 없이 프랑스 없다'…유로화 모태·EU 헌법 초안 등 마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독재자에게 받은 다이아몬드 선물은 불명예

연합뉴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 별세
[AP=연합뉴스 자료사진]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20세기 프랑스의 최연소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94)이 2일(현지시간) 세상과 영원한 '작별 인사'를 했다.

1981년 TV로 생중계한 퇴임 연설에서 "안녕히 계세요"(Au revoir)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뒤돌아 유유히 걸어 나가며 대통령으로서 이별을 고한 지 약 40년만이다.

그의 모습을 정면에서 촬영하던 카메라는 1분 가까이 텅 비어있는 의자를 비춰야 했고 화면 속에서는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만이 쓸쓸히 울려 퍼졌다.

지스카르 전 대통령은 1974년 대통령 선거에 우파 후보로 나와 1.6%포인트 차이로 좌파 후보인 프랑수아 미테랑을 밀어내고 48세에 엘리제궁에 입성했다.

이 젊은 대통령은 대내적으로 여러 개혁 과제를 달성했지만,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과 비교해보면 대중적인 인기가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다.

주간지 르주르날뒤디망슈가 지난해 9월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에 의뢰해 진행한 '프랑스 제5공화국의 최고 대통령'을 꼽아달라는 설문조사에서 3%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지스카르 전 대통령이 프랑스를 현대화하고, 유럽을 하나로 모은다는 두 가지 목표를 공히 달성했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샤를 드골 정부에서 1962∼1966년, 조르주 퐁피두 정부에서 1969년∼1974년 두 차례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프랑스를 대표하는 경제 전문가였다.

1974년 1월 제1차 석유파동, 1978년 10월 제2차 석유파동이 터지면서 대내외 경제 환경이 녹록지 않았지만 그는 전반적으로 프랑스 성장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임 기간 그는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성인 연령을 18세로 낮추고 낙태 합법화, 이혼 자유화, 장애인 노동권 인정 등 사회적 측면에서도 프랑스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영화와 방송 검열을 없애는 한편 방대한 조직이었던 프랑스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ORTF)을 라디오 프랑스, TF1 등 여러 회사로 분할해 언론의 다양한 목소리를 독려하기도 했다.

지스카르 전 대통령과 헬무트 슈미트 당시 독일 총리가 합심해 1979년 출범한 유럽통화체제(EMS)는 이후 유로화로 이어지는 씨앗이 됐다.

그가 1975년 11월 15∼17일 파리 근교 랑부예성으로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 등 가장 산업화한 민주주의 국가 정상 6명을 초청한 행사는 오늘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모태가 됐다.

퇴임 후에는 1989∼1993년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했고 2001∼2003년 유럽연합(EU)의 헌법 초안 작성을 주도하는 등 대통령직을 마치고 나서도 유럽 통합을 향한 열정을 보였다.

훗날 발간한 회고록에서 "패배를 상상해본 적이 없다"던 그는 1979년 치솟는 유가, 실업률 상승 압박에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독재자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받았다는 의혹까지 겹치면서 위기에 처했다.

그해 10월 주간지 르카나르가 지스카르 전 대통령이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독재자 장베델 보카사에게 다이아몬드 30캐럿을 받았다고 보도한 게 발단이었다.

지스카르 전 대통령은 다이아몬드를 자선단체에 내놨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선거 운동 기간 내내 그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 7년 전 자신이 이긴 미테랑에게 패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스카르 전 대통령의 임기 7년은 프랑스를 변혁시켰다"며 "그가 프랑스에 제시한 방향은 여전히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하고 있다"고 추모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대변인을 통해 트위터에 "프랑스는 존경받는 정치인을 잃었고, 독일과 유럽은 친구를 잃었다"고 밝혔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프랑스 정치의 현대화에 성공"한 지스카르 전 대통령은 "내가 항상 존경하고 언제나 즐겁게 토론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세계에 개방을 선택했고, 유럽이 프랑스가 더 위대해질 수 있는 조건이라 믿었던 정치인을 잃었다"고 애도를 표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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