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월성 원전' 내부자료 대량삭제 혐의, 공무원들 구속…檢 칼끝 어디로 향할까?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산업부 공무원 2명 구속…직원들 '자료 삭제'에 대해선 함구, 당사자 이외 알 수 없는 사항이라며 말 아끼는 모습

세계일보

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월성 1호기 원전 관련 내부 자료를 대량으로 삭제하거나 이를 지시한 혐의 등으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구속되면서 검찰이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청와대 등 이른바 '윗선'을 향한 수사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에 대한 실체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대전지법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일 오후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과 감사원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A(53)씨 등 산업부 국장급 공무원 등 2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함께 영장이 청구됐던 과장급 공무원 1명에 대해선 "영장 청구된 범죄사실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고, 이미 확보된 증거들에 비춰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날 오후 2시 30분께부터 시작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검찰과 변호인 간 치열한 공방 속에 약 4시간 50분 동안 진행됐다.

A씨는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인 지난해 11월께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A씨와 함께 구속된 부하 직원 B씨는 실제 주말 밤에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예전에 자신이 썼던 PC에서 약 2시간 동안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444건을 지웠다고 감사원 등은 밝혔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검사)는 일단 자료 삭제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해 11월 26일 월성 1호기 관련 내부 보고자료와 청와대 협의 자료 일체를 제출하라는 감사원 요구를 받자, 대통령 비서실에 보고한 문서 등을 빼고 소송 동향 같은 일부 자료만 같은 달 27∼28일에 보냈다. 삭제는 그로부터 불과 사나흘 뒤에 이뤄졌다.

청와대와 협의했던 흔적을 없앤 셈인데, 검찰은 감사원 감사에서 그 경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자료 삭제가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기 위한 것을 넘어 월성 원전 조기 폐쇄 과정에서의 청와대 관여 사실 자체를 없애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검찰 판단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날 영장이 발부됨에 따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한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실체 파악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구속자들의 윗선인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채희봉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 이번 의혹 사건 핵심 관계자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감사원은 2018년 4월 2일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이 산업부 공무원에게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추진방안을 (백운규) 장관에게 보고한 후 이를 알려달라'는 연락을 했다고 밝혔다.

백 전 장관은 관련 직원 질책과 보고서 재검토 등 지시를 통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 조기 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시 가동 중단할 것'이라는 취지의 방침을 정하게 했다고 감사원은 강조했다.

검찰은 한수원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도 이어가는 한편 최종 윗선을 향한 수사 칼끝을 세우고 있다.

한편 법원이 4일 밤 월성1호기 원전 관련 자료 삭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혐의로 산업부 공무원 2명에 대해 구속 영장을 발부하자 산업부는 크게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직원들 사이에선 "참담하다" "안타깝다" 등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한 직원은 "산업부 전체가 마치 범죄집단처럼 매도되는 것 같아 참담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 고위 공무원은 "총론으로 보면 이 사안은 대통령 공약사항과 국정과제 이행에 관한 것이고, 기존의 원전·석탄 중심 에너지 구조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며 "이런 총론은 온데간데없고 '자료삭제'만 부각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국민이 먹고사는 생존과 직결된 에너지 정책이 이렇게 정쟁에 휘말린다면, 행정을 할 수가 없다"면서 "차라리 국회가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일선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업무가 나중에 구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일할 맛이 안 난다" "열심히 일한 것도 죄인가"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들렸다. 한 직원은 "내가 만약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자료 삭제' 부분 등에 대해선 다들 함구하는 분위기다. 재판을 앞둔데다 당사자들 이외는 알 수 없는 사항이라며 말을 아꼈다.

공직사회 전체에 '복지부동' 문화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 직원은 "정책을 추진하는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