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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는 여야가 아니라 PK당·TK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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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역 현안 놓고 사사건건 대립… 가덕도 신공항 문제로 갈등 첨예화


TK(대구·경북)의 한 의원(국민의힘)실 A보좌관에게 지역 언론사에서 전화가 왔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전화였다. 전화를 끊은 후 A보좌관은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의원의 입장을 묻는데,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라고 말했다. 정해진 답은 ‘절대 반대’라는 것이다. A보좌관은 “지역 국회의원으로서는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무조건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추진을 놓고 PK(부산·경남)와 TK의 여론은 격돌하고 있다. 찬반 여론을 이끄는 중심에는 지역 정치인과 지역 언론이 있다. PK 정치인과 TK 정치인이 격돌하고, PK 언론과 TK 언론이 지역 민심을 주도하고 있다. 영남의 한 민주당 B지역위원장은 “정작 지역 주민들은 큰 관심이 없는데, 지역 언론과 정치인들만 찬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PK에서는 여야 의원 대다수가 가덕도 신공항을 밀고 있다. 11월 20일 부산의 국민의힘 의원 15명은 ‘부산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발의했다.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 역시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적극적이다. 한때 밀양 신공항을 밀었던 경남의 정치인들도 이제는 대부분 가덕도 신공항에 손을 드는 모양새다. 밀양이 지역구인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밀양·의령·함안·창녕)은 “지금은 가덕도 신공항이 맞다고 본다”면서 “단, 영종도에 있는 인천국제공항 규모만큼 크게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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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대교가 도개하는 가운데 11월 11일 부산 중구 유라리광장에서 부산·울산·경남 시민단체가 김해공항 확장안을 취소하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시민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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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언론과 정치인만 목소리 높여
TK 의원들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TK에는 여당인 민주당 의원이 한명도 없다. 대구에 12명, 경북에 13명의 국회의원이 있지만 홍준표 의원(무소속)을 제외한 24명이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때문에 여당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거의 없다. 민주당 소속으로 대구 부시장을 맡고 있는 홍의락 전 의원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을 뿐이다.

가덕도 신공항 논란을 놓고 영남지역에는 여당과 야당의 대립이 있는 것이 아니라 PK와 TK의 대립이 있다. 가덕도 신공항 논란만 보면 PK당과 TK당이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잠시 잠잠해지던 PK·TK 갈등은 내년도 예산안 통과를 앞두고 또 한 번 불거졌다. 12월 1일 국회 예결위 소위원회에서는 국토교통부의 연구용역비 20억원에 대해 ‘가덕신공항 적정성 조사 사용 검토’라는 부대의견을 붙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예산안의 본회의 통과를 앞둔 12월 2일, 예결위 국민의힘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해공항 확장 백지화에 대한 국토위의 명확한 입장이 없다는 점을 들어 원내 지도부가 부대의견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여야 예산 합의의 길목에 대구가 지역구인 주호영 원내대표와 추경호 예결위 간사가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국민의힘 부산 의원들만 입장이 애매해졌다. 부산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과 국토부가 분명한 입장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부대의견은 붙이지 못한 채 내년도 예산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부산일보는 12월 3일자 사설에 ‘툭하면 가덕신공항 몽니 주호영, 공당의 원내대표 맞나’라는 글을 올려, 부대의견을 붙이는 것에 반대한 주 원내대표를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11월 20일 부산지역 의원들이 원내 지도부와 상의 없이 특별법을 발의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때문에 가덕도 신공항 문제는 여야 간 싸움이 아니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내전으로 비화됐다.

PK와 TK는 한국 정치에서 영남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 한국 정치의 양대 산맥인 영남과 호남을 일컬을 때 영남은 늘 한묶음으로 묶였다. 두 지역의 관계는 ‘우리는 남이가?’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는 남이다’라고 외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1996년 15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PK 출신의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던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 후보들이 대구지역에서 대거 떨어졌다. 오히려 야당인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소속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당시 대구에서는 PK 정권에 홀대를 받고 있다는 민심이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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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구·경북 지역구 의원들이 11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김해신공항 백지화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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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천공단·원전해체연구소로 맞붙기도
지역 현안을 놓고 서로 감정을 붉히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위천공단 유치였다. 1990년대 초반, 대구는 달성군 논공면 위천리에 대규모 공단을 만들려고 했다. 산업구조를 섬유산업 중심에서 전자 및 기계산업 중심으로 개편하는 꿈을 갖고 추진했으나 환경 문제가 대두됐다. 부산지역에서는 위천공단 건설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낙동강 수질 오염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1991년 페놀 오염 사태로, 당시 환경문제는 크게 이슈가 됐다. 결국 위천공단은 무산됐다.

최근 신공항 문제와 함께 몇가지 이슈를 놓고 PK와 TK는 힘겨루기를 했다. 원전해체연구소(원해연) 선정을 놓고 PK와 TK가 갈등을 빚었다. 부산·울산 대(對) 경주가 붙었다. 올해 영남권 감염병 전문병원 지정을 놓고도 PK와 TK 간 신경전이 불붙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이전을 놓고 PK와 TK 간 유치전이 뜨거워졌다.

노무현(PK)·이명박(TK)·박근혜(TK)·문재인(PK) 대통령으로 이어져 오면서 신공항 문제는 PK와 TK 갈등이라는 중심축으로 전개돼 왔다. 이런 가운데 절충안도 나왔다. 홍준표 의원(무소속)의 제안이 대표적이다. 홍 의원은 11월 20일 대구 지역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가 4대 관문공항 건설로 지역 균형발전의 토대를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해 대구, 부산, 광주(무안) 신공항 관련 특별법의 동시 일괄 처리가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 의원이 낸 보도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띈다. “대구·경북 주민은 부·울·경 주민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함. 소아를 넘어 대승적 접근이 필요한 때임.” 사실상 현실론인 셈이다. 국토위 관련 민주당 관계자인 C씨는 “김해신공항 확장이냐 가덕도 신공항 신설이냐는 부산 지역민들에게 맡겨야 한다”면서 “대구·경북이 무작정 반대를 할 시간은 지났다”고 말했다. TK지역 사정에 밝은 D씨는 “TK지역 주민들의 대부분은 가덕도 신공항을 짓든 말든 큰 관심이 없다”면서 “가덕도 신공항 문제는 이미 남의 동네일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D씨는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TK지역에서 의석을 싹쓸이하면서 예견된 일”이라면서 “여당 내 TK의 목소리가 사라지면서 국책사업 결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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