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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남북 독자들 모두 ‘주체사상’ 연재 때 가장 큰관심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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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길을 찾아서’ 연재 마친 박한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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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식 교수가 지난해 1월6일 80살 생일을 맞아 ‘피스 메이커’를 상징하듯 한국의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를 나란히 그려 놓은 축하 케이크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조지아주 오거스타주립대학의 검진센터 의료진이 선물한 것이다. 사진 오거스타주립대학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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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매회 공들여 준비했으니 스스로 낙제 점수는 줄 수 없고, 한 80점 비(B) 학점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ㅎㅎ.”

<한겨레> 회고록 기획 ‘길을 찾아서’의 22번째 주인공인 재미 북한전문가 박한식 조지아대학 석좌교수는 지난 28일 보내온 이메일 편지를 통해 2년에 걸친 대장정을 마친 소감을 “시원섭섭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평화에 미치다’를 제목으로, 지난해 3월18일 ‘카터의 첫 방북 드라마’부터 지난 12월7일 ‘한민족 통일 실현 방안’까지 45회 차례 격주 연재를 해왔다. 2018년 11월 서울 방문 때 회고록 연재를 수락했던 그는 이후 지금까지 애틀랜타 인근 오거스타의 자택에서 영상통화로 구술 집필자들과 끊임없이 통화하며 격주로 30매 분량의 원고를 보내왔다. 특히 지난달 발목 부상을 당한 그는 마지막 회 원고를 마감한 뒤에야 수술을 받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통일의 길 제시한 ‘평화에 미치다’

지난해 3월부터 격주 45회 대장정

전쟁·분단·이산의 가족사도 첫 공개

“공들여 준비했으니 B학점 정도…”


“북쪽에도 ‘한겨레’ 독자 많아 깜짝”

매월 온라인 강연 등으로 활동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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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 인근의 오거스타에서 살고 있는 박한식 교수는 지난달 다리를 다쳤으나 ‘길을 찾아서-평화에 미치다’ 연재를 마무리한 뒤 최근에야 수술을 받고 재활중이다. 사진은 지난해 오거스타주립대학 메디컬칼리지의 심혈관센터에서 정기 검진을 받을 때의 모습이다. 오거스타주립대학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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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가 이번 연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남북 문제와 통일을 ‘안보 패러다임’이 아닌 ‘평화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명제였습니다. 내 평생 연구 주제이자 삶의 화두인 ‘평화란 무엇인가?’를 상세히 설명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그는 연재를 통해 1939년 만주 하얼빈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혼란기에 평양을 거쳐 대구에 정착하기까지 전쟁의 참상과 유랑의 고통을 체감하며 ‘평화병’에 걸렸다고 남다른 성장기를 소개했다. 특히 조부가 경북 청도에서 만주로 떠났던 유민가족인데도 북쪽에서 내려왔다는 이유로 부친이 사회주의자 ‘누명’을 쓴 채 고초를 겪어야 했던 가슴 아픈 가족사와 ‘통일이 될 때까지 귀국하지 말라’는 유지에 따라 1965년 미국 유학에 나서 반세기 넘도록 ‘평화학’을 탐구해온 개인사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 통일에 관한 나의 이론과 철학을 차분히 전달할 수 있어서 기대 이상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신문 연재의 특성상, 개인적인 체험이나 시대 배경 등에도 상당 부분을 할애하다 보니 평화학 이론을 백퍼센트 전달하기에는 한계와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는 연재에 대해 한국 독자들이 “흥미롭다, 새롭다, 많이 배웠다”는 반응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보내왔다고 소개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국내외 전문가들의 반응과 평가였습니다. 남북 문제를 연구하고 실질적으로 정부의 통일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한국의 고위 인사들과 북한 전문가들이 내 글로 평화와 통일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고 큰 공부가 되었다는 후한 평가를 해주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는 40여년 북한과 교류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이 북쪽의 반응도 가끔 전해주었다고 밝혔다. “북쪽에서는 특히 주체사상에 대한 연재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중에는 남쪽에서도 알 수 있는 이들도 있지만 이름이나 신분을 공개할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지난 2~3월 4회(24~27회)에 걸쳐 연재한 ‘주체사상’편은 국내 독자들 사이에서도 큰 관심과 화제를 모았다. 북한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하거나 남북교류나 통일운동을 하는 단체 등에서는 박 교수를 온라인으로 초청해 ‘화상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또 한 가지 기쁘기도 하고 한편 놀라기도 했던 사실은 북쪽에서도 <한겨레>를 탐독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고 덧붙인 박 교수는 그런 점에서 북한 방문 때마다 사진을 충실하게 찍어오지 못한 것이 새삼 아쉬웠다고도 했다.

“워낙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 주관심사가 ‘주체사상’을 비롯한 북한 체제에 대한 학술적 토론과 관찰이었기 때문에 관광하듯 북 풍광을 둘러볼 여유도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북쪽의 고위층 인사들과 지속해서 교유를 해왔기에 함께 찍은 사진도 더러는 있지만, 내가 일방적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자제했습니다.”

그는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에 함께 사진을 찍을 기회도 있었지만, 학자로서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고자 촬영을 고사했다는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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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식 교수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인 매체 <뉴스앤포스트>에서 운영하는 개인 누리집(http://hanpark.org/)을 통해 앞으로도 활동 상황을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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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다리가 아직은 불편해도 온라인 강연 같은 실내 활동에는 별 지장이 없다는 박 교수는 ‘피스 메이커’로서 앞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바람직한 여론 조성의 촉매제 구실을 변함없이 해나가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특히 북한 바로알기운동에 역점을 두고 싶어요. 마침 지난 10월 제 강연을 들었던 미주 동포들이 위원회를 꾸려서 매주 화요일 줌(zoom)으로 ‘박한식 사랑방’(https://us02web.zoom.us/j/83881366189, 미팅 ID 838 8136 6189)을 열고 있어요. 한반도 통일을 더는 정부의 손에만 맡겨서는 안 되다는 사실을 지난 75년 분단사를 통해 깨우친 만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인들이 힘을 모아 ‘아래로부터의 통일’을 이끌도록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그는 <한겨레>와 애독자, 그리고 집필자들에게 보내는 답례의 인사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오랜 미국 생활로 영어가 더 익숙해진 탓에 서툰 우리말 글쓰기를 도와준 이현휘 제주대 특별연구원과 권준택 뉴욕 유티카대학 교수에게 특별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무엇보다 내 삶을 반추하고 생각과 철학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마련해준 신문사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한겨레’를 통해 전 세계 동포들과 소통할 기회가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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