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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노숙자에게 침낭 1만6000개…日 '침낭 아저씨'의 슬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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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에 사는 자영업자인 이시구로 다이엔(73)은 매해 겨울이면 노숙자에게 침낭을 나눠주려 길거리로 나선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그가 자원봉사자와 함께 노숙자들에게 나눠준 침낭은 1만6000개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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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에서 21년째 겨울만 되면 노숙자들에게 침낭을 나눠주는 봉사를 하는 이시구로(가운데). [마이니치 신문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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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거리의 침낭 아저씨'가 된 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을 잃은 다음부터다.

이시구로의 둘째 아들은 1989년 백혈병으로 숨졌는데, 그때 나이가 겨우 네살이었다. 그리고 8년 뒤인 1997년, 다시 아내를 암으로 잃었다.

가족을 둘이나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썼던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사람들과 연결됨으로써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는 짤막한 메모가 가슴에 와 박혔다. 아내는 수년간 이어진 투병 생활 중에도 "모두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일기장에 기록했다. 아픈 와중에도 아내는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이시구로는 일기장을 보며 아내 대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삶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이시구로는 마이니치 신문에 "누구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침낭을 나눠주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다른 계절에는 노숙자들을 위해 주말이면 식사를 만들어 나눠주고 오사카 주요 역사 앞을 청소하는 모임을 하고 있다.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겨울에는 평소의 봉사활동에 더해 침낭 나눠주기 운동도 함께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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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구로 다이엔은 오사카에서 노숙자들에게 침낭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20여년간 해왔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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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페이스북에 "오사카에서만 길 위의 죽음(路上死·노상사)을 당하는 사람이 100명 이상이라고 한다"면서 "이는 오사카의 수치라는 생각에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침낭을 받으면서 정말 고맙다고 사람들이 말할 때 따뜻한 마음이 내 가슴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정부 통계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오사카에는 6603명가량의 노숙인이 있었지만, 지난해에는 그 수가 982명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에 실업자가 늘면서 올겨울 노숙자도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그는 "노숙자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행사에서 최근 새로운 얼굴들이 부쩍 눈에 띈다"고 전했다.

그 역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했다. 이시구로는 "먼저 간 아내와 아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일 것"이라며 힘이 닿는 한 침낭 봉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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