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실업급여 대기만 200명···"코로나 두려울 지경" 신청 포기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실직자로 북적이는 서울 관악 고용복지센터. 김기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걸릴까 봐 빠져 나왔다. 실업급여 신청은 엄두도 못 냈다. 가 보고 경악했다."



사람에 치이는 고용센터…"코로나 두려울 지경" 신청 포기도



지난 6일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서울 관악고용복지센터를 찾았던 정모(59)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 빼곡하게 사람들이 들어차서 앉을 곳은 고사하고, 오가는 사람들에 이리 치고, 저리 치어 서 있기도 불편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딴 세상 얘기였다"는 게 정씨가 전한 실업급여 신청 창구의 모습이다. 정씨는 "실업급여 수급 신청서를 쓰는 데 다닥다닥 붙어서 팔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실업급여 신청 창구 옆 복도까지 실직자로 가득하다. 김기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언제부터 좀 한가해지느냐고 직원에게 물었더니 '계속 이렇다. 언제쯤 창구를 찾는 사람이 줄어들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날 정씨가 받은 번호표에는 대기자 수가 200명이 넘었다고 했다.



오전 11시에 가도 대기자 200명 "오후 2시에 오라"



14일 오전 10시 40분쯤 서울 관악고용복지센터를 찾았다. 주차장 입구에서 방문객의 체온을 체크했다. 도보로 찾아오는 사람은 현관에서 체온을 쟀다. 손 세정제가 있었지만 쓰는 사람도 있었고, 안 쓰는 사람도 있었다. 복도를 따라 2층 실업급여 수급 신청 창구로 들어서자 입구부터 사람들도 북적였다. 20~30대 청년들도 더러 있었지만 주로 40대 이상 중고령자가 대부분이었다.

중앙일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실업급여 신청 창구. 오전 11시인데 대기자 수만 196명. 김기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서자 직원이 번호표를 뽑아 나눠줬다. 그러면서 "대기자가 200명입니다. 오후 2시에 오세요"라고 말했다. 줄 서서 오전 11시 18분에 받은 번호표에는 '대기번호 356', '대기인수:196명'이었다. 대기표를 받아든 사람들이 창구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숨을 쉬며 발길을 돌렸다. 한 실직자는 복도를 걸어나가며 "2시에 오면 곧바로 신청할 수나 있는 거야?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라며 푸념했다. 정씨가 방문한 지 12일이 지났지만, 정씨가 전한 상황과 달라진 게 없었다.



"발 디딜 틈 없어진 지 오래됐다. 언제 풀릴지 감감"



직원에게 물었다. "매일 이런가"라고. 그러자 "오래됐습니다. 계속 이렇다고 봐야 합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청 마감 시간이 있느냐"고 했더니 "오후 3시에 (신청을) 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래 오후 3시에 마감인데, 인원으로는 800명이면 신청을 끊는다. 그런데 오늘은 더 일찍 끊을 생각"이라고 했다. "실업급여 신청 창구에 근무하는 상담원 가운데 한 명이 병원 진료 예약이 되어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상담원 한 명이 빠진 만큼 실업급여 신청 접수도 줄인다는 얘기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는 사람이 넘쳐도 상담 인력이 부족해 신청을 못 받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중앙일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실업급여 수급 자격 신청 창구. 수급 자격만 심사할 뿐 반드시 해야 하는 구직상담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김기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3시간여를 기다려 겨우 앉은 창구에서의 상담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3분을 넘기지 않았다.

실업급여는 구직을 전제로 지급한다. 직장을 구할 의사가 없으면 안 준다는 얘기다. 그래서 실업급여를 신청할 때 실직자의 구직 활동을 돕기 위한 초기 상담을 한다. 이 상담을 통해 실직자의 경력과 기술의 숙련 정도를 비롯한 포트폴리오를 파악하고, 심리상태 등을 점검한다. 필요할 경우 직업훈련을 알선하고, 심리치료를 병행한다. 한데 이날 서울 관악고용센터에선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상담원들이 초기 상담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판이었다.



구직 상담은 건너뛰어…구직활동은 첫 단계부터 막히고, 돈 지급 창구로 변질



9개의 실업급여 신청 창구에선 "원래 우리가 상담도 하고, 교육도 해드려야 하는 데 여건이 안 돼서 지금은 (실업급여 수급) 자격만 본다"고 신청자에게 안내했다. 구직을 전제로 지급하는 실업급여 신청 창구에서 구직활동이 막히고, 돈만 지급하는 창구로 변질한 셈이다.

"자그마한 기계부품회사에서 일하다 지난달 잘렸다"는 50대 실직자는 "마스크를 썼지만 여기선 사람 피하는 게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여기 두 번째 온다. 처음엔 그냥 돌아갔다. 상담 인원이라도 좀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 건너편 취업 신청 창구는 한산한데,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해도 되느냐. 실직자의 마음을 안다면 이래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취업자·실업자 증감 추이 그래픽 이미지. 김주원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자료:고용노동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실업급여는 11조8507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존 최대 기록은 1년 전인 2019년 8조913억원이었다. 최저임금인상, 주52시간제 등으로 실직자가 늘어 최대치를 갱신한 지 1년 만에 코로나19까지 덮쳐 다시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해도 만만찮다. 코로나19의 상황이 심상찮은 데다 올 초부터 경기가 얼어붙고, 연초 일자리 감소로 실직자가 증가하는 계절적 요인까지 겹친다. 여기에다 연말연시 정부가 주는 돈으로 만드는 임시 일자리도 늘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