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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워싱턴 사실상 계엄령…군인 2만명 '면도날 철책'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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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접근 다리, 내셔널 몰 모두 통제

"1945년 이후 가장 작은 대통령 취임식"

19일까지 주 방위군 2만5000명 배치

"철책과 군 병력이 워싱턴 뉴노멀 될 수도"

중앙일보

오는 20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의사당에 깃발과 단상이 준비됐다. 그러나 극단주의 단체의 무력시위 우려 탓에 17일 예정됐던 리허설은 연기됐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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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에서 워싱턴으로 들어오는 495번 고속도로에서 경찰의 짧은 추격전이 벌어졌다. 짐칸에 성조기를 단 픽업트럭을 불러 세우기 위해서였다. 오는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폭력시위를 예고한 극우세력일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워싱턴을 진입하는 도로 곳곳에는 교통 경찰이 배치됐다. 특별히 극우세력 상징을 달지 않았어도 수상한 차량은 일단 검문 대상이 됐다.

이날 아침에도 극단주의 세력이 잠입해 의사당 앞에서 기습 시위를 열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시내에선 긴장감이 돌았다.

그간 링컨기념관에서 워싱턴기념비, 의사당까지 이어지는 내셔널 몰은 팬데믹 중에도 주말에는 관광객이 몰려 도로변에 차 세울 곳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날은 간간이 지나가는 지역 주민 외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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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워싱턴 내셔널 몰을 따라 이어지는 인디펜던스 애비뉴가 16일(현지시간) 통제됐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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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대 대통령 취임식은 전국민의 축제이자 새로운 정부를 향한 축복의 행사였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다르다. 워싱턴 곳곳이 폐쇄되고 군인만 가득한 '계엄령 취임식'을 방불케 한다.

대통령 비밀경호국의 요청에 따라 지난 15일부터 취임식 다음 날인 21일까지 워싱턴DC 내셔널 몰 지역 대부분이 폐쇄됐고, 주변엔 2m 높이의 철책이 둘러쳐졌다. 내셔널 몰은 취임식 때마다 대통령 선서 장면을 보기 위해 수십만의 인파가 몰렸던 곳이다.

대통령 취임식을 연구한 역사학자 짐 벤댓은 "의사당 서쪽 입구에서 취임식을 열기 시작한 1981년 이후 내셔널 몰이 폐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WP에 말했다.

4년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때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 숫자를 놓고 논란이 됐다. 오바마 대통령 때의 절반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백악관이 "역대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다"고 반박했다. 당시 주류 언론들이 취임식 인파 사진을 비교해 백악관 주장을 일축했지만 트럼프의 백악관은 "대안적 사실"이란 유명한 말을 남기며 '역대 최대'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CNN은 이번 취임식을 놓곤 "적어도 참석 인파를 두고선 논란이 일지 않게 됐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코로나19에 보안 문제까지 겹친 이번 취임식은 1945년 이후 가장 작은 규모의 행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차대전 중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선서를 백악관 실내에서 하면서 1000명 정도만 초대했다. 벤댓은 "당시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본인의 건강 문제도 있어서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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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으로 둘러싸인 워싱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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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 취임식'이 불가피했지만, 이번엔 내전을 연상케 하는 쪼개진 미국이 '최소한의 취임식'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현재 워싱턴에선 시내 지하철역 13곳이 폐쇄됐고 인근 주에서 들어오는 주요 교량 4곳도 통행이 차단됐다. 일반 차량은 운행이 불가능해졌고, 대신 주 방위군을 실은 군용차량이 계속 시내로 들어오고 있다.

이날까지 워싱턴에는 약 1만 명 정도의 군인이 배치됐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주 방위군을 지휘하는 윌리엄 워커 소장은 취임식 전날인 19일 밤까지 2만5천명 정도로 병력을 늘린다고 알렸다. "아마도 취임식 당일 워싱턴에는 행사를 보러 온 사람보다 군인 수가 더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현지 언론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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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미국 워싱턴 시내에 있는 의사당을 둘러싸는 펜스 위에 '레이저 와이어'가 설치되고 있다. 레이저 와이어엔 날카로운 날이 부착돼 있어 펜스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용도다.[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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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당 주변의 분위기도 며칠 전보다 더 삼엄해졌다. 지난 6일 폭도들의 난입 이후 2㎞ 정도의 주변 도로를 따라 2m 높이의 철책이 둘러쳐졌다. 극우 세력의 추가 공격이 예고되자 이틀 전부터는 면도날을 방불케 하는 날카로운 날이 달린 이른바 '레이저 와이어'까지 펜스 위에 얹었다.

의사당의 철책과 면도날 와이어를 멍하니 바라보던 중학교 교사 스콧 크레이그는 기자에게 "워싱턴에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이런 전쟁터 같은 모습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장벽은 갑자기 쳐진 게 아니라 4년 동안 세워진 것"이라면서 "트럼프가 물러나도 인종차별·백인우월주의·계급갈등 등의 문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17일 의사당에서 열릴 예정이던 취임식 리허설은 연기됐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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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사당 주변의 레이저 와이어가 얹혀 있는 철책 앞에서 주 방위군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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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5일 취임식 보안 관련 기자회견을 연 무리엘 바우저 워싱턴 시장은 "취임식 후 워싱턴 지역이 정상(normal)으로 돌아가느냐"는 질문에 "뉴노멀(New Normal)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극단주의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하고, 부통령을 납치하려던 조직적 행동을 목격한 이상, 우리는 새로운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도 했다. 이중으로 철책과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고, 총 든 군인이 무리 지어 시내를 다니는 생경한 모습이 어쩌면 앞으로 적응해야 할 워싱턴의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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