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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집도 없고, 이자는 쥐꼬리’…앵그리 머니, 증시로 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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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활황에 객장 대기인원 100명

집값 급등해 ‘벼락거지’공포 커져

요구불예금 13일만에 9조원 이탈

증시로 몰린 개인돈, 100조원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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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미래에셋대우 강남역WM 지점은 계좌 개설 등을 상담하거나 차례를 기다리는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염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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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 이자는 쥐꼬리만 한데 코스피 지수는 꾸준히 오르더라고요. ‘내 집’ 없는 사람이 돈 벌 방법은 주식밖에 없어요.”

지난 15일 서울 서초동 미래에셋대우 강남역WM 입구에서 만난 주부 김모(36)씨 얘기다. 김씨는 “주식 초보자지만 삼성전자나 현대차를 사는 게 금리가 0%대인 1년짜리 정기예금보다 낫겠다 싶어 새로 증권 계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김씨 외에도 계좌를 열기 위해 찾은 고객들로 증권사 지점 안은 북적였다.

인근 대신증권 강남대로센터 관계자는 “증시가 활황세를 띄자 고객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갑자기 몰려 대기인원이 100명을 넘은 지점도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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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은행에서 13일간 9조원‘대기자금’이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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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격 급등 속 집도 없는 데 주식도 오르고, 쥐꼬리만 한 예금 이자에 지친 '앵그리 머니'가 주식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열 받은 돈의 은행 탈출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4대 시중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새해 들어 13일 만에 9조원가량 줄었다. 17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13일 기준 489조280억원이다. 지난해 말(497조7605억원)보다 8조7325억원 감소했다.

요구불예금은 수시입출금식 예금과 시장금리부 예금(MMDA) 등 이자를 거의 주지 않는 대신 언제든지 입ㆍ출금할 수 있는 자금이다. 부동 자금의 대표주자 격이다. 새 투자처를 찾지 못한 탓에 지난해 1년간 요구불예금은 92조7352억원(4대 시중은행) 불어났다. 하지만 은행권에 머무르던 대기성 자금이 증시로 이동을 위해 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 은행권의 분석이다.

앵그리 머니의 밑바탕에는 '벼락 거지(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산 격차가 벌어진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상승장에서 소외되면 안 된다는 '포모(FOMO) 증후군' 등으로 인한 조바심이 깔려 있다.

직장인 윤모(43)씨는 “주택 청약은 번번이 떨어지고 아파트값은 다락같이 올랐다”며 “증시 상승장까지 놓치면 벼락거지가 될 듯해 처음으로 증권 계좌를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증시가 조정받는 대로 집 사려고 모은 돈을 쪼개서 국내외 주식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주택자인 일부 30~40대는 "주식 투자로 돈 모아 집 사는 데 보태려고 한다"고 계좌를 열고 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0억4291억원(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0억원을 넘어섰다. 1년(8억5951만원) 사이 1억8340만원, 21.3%나 올랐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달부터 지난 15일까지 한 달반 만에 19%나 치솟았다. 반면 은행 이자는 쥐꼬리라고 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예금금리 가중평균치는 0.9%로 연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돈에 꼬리표가 달렸지는 않아 자금 흐름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상담해보면)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특히 이자가 워낙 작아 예ㆍ 자금이 만기 되면 자금을 주식 계좌로 옮기는 고객이 늘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에 쏠렸던 자금도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서울 집값이 너무 오르며 일반 직장인이 월급을 받아서 집을 사는 것은 어려워졌다”며 “여기에 대출 금리는 낮은데 정부 규제까지 심해지자 ‘내 집 마련’을 위해 모아뒀던 자금마저 주식시장으로 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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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대기자금’은 70조원 돌파.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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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증시의 상승세를 견인한 동학개미에, 은행과 부동산을 맴돌다 제대로 열 받은 돈(앵그리 머니)까지 ‘대기 자금’으로 몰리며 주식 시장 주위를 배회하는 돈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주식을 사기 위해 투자가가 증권사 계좌에 넣어둔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11일 처음으로 70조원을 돌파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70조1396억원에 이른다. 연초 이후 13일 동안 4조6000억원 넘는 뭉칫돈이 들어온 영향이 크다.

같은 기간 개인이 주식투자를 위해 증권사에 빌린 돈(신용융자)은 1조7586억원 늘어나 전체 잔고는 20조9800억원이다. 사실상 개인이 즉시 증시에 투입할 수 있는 실탄(투자예탁금+신용융자)만 90조9693억원으로 100조원에 다다른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약 525조원)의 20% 해당하는 규모다.

뿐만 아니다. 올해 들어서보름여 만에 5대 시중은행의 마이너스 통장이 2만588개 개설됐다. 마이너스 통장 잔액만 1조5602억원 늘어났다. 이들 자금도 유사시에 증시 등으로 유입될 수 있는 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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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에 돈 빌려 투자한‘빚투’도 증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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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 돈이 몰리며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중에 풀린 자금이 넘쳐나면서 유동성이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주식시장이 과도하게 고평가된 데다 실물 경기와 괴리가 커지면서 급격히 조정받을 위험도 커졌다”고 말했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식시장은 단기간에 급격히 올라 이미 거품(버블)이 형성됐다”며 “증시 조정 국면에서 '빚투(빚내서 투자)' 투자자가 과도하게 손실을 피해 보지 않도록 증권사의 신용융자를 제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염지현ㆍ윤상언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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