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오는 21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의 이미지를 벗고 자율주행과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 수소 등 미래 사업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 [현대차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올해 미래 성장 변곡점"…'자동차' 뗀 기아

17일 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그룹 임직원에 보낸 이메일에서 "2021년을 미래 성장을 가름 짓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의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티저 이미지를 공개한 현대차[005380] 아이오닉 5를 1분기에 공개하는 것을 비롯해 기아 CV(프로젝트명), 제네시스 JW(프로젝트명) 등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 기반한 신차를 잇달아 선보일 예정이다.

전기차 라인업을 현재 8개 차종에서 2025년 23개(현대차 12개, 기아 11개)로 확대해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100만대를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아이오닉 5' 티저 이미지 [현대자동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다만 주요 글로벌 완성차업계도 발 빠르게 전동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어 미래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 회장의 고민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외에 폭스바겐과 GM, 지리 등 완성차업체와 테슬라 등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갖추고 있다.

특히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선도해 온 테슬라는 아이오닉 5의 티저 이미지가 공개된 지난 13일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모델 Y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며 국내 전기차 시장의 왕좌 다툼을 예고한 상태다.

작년의 경우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중 가장 많이 팔린 코나 일렉트릭(8만4천735대)이 국내에서 8천66대가 팔린 반면, 테슬라의 모델3는 테슬라 국내 판매(1만1천826대)의 대부분인 1만1천3대가 팔렸다.

정 회장이 사장 시절 디자인 경영을 통해 흑자로 전환시켰던 기아는 최근 아예 사명에서 '자동차'를 떼고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기아의 사명 변경은 1990년 기아산업에서 기아자동차로 이름을 바꾼 지 31년 만이다. 로고도 9년만에 교체했다.

기아가 일반에 익숙한 사명과 로고를 전면 교체하며 이를 토대로 전기차와 모빌리티 솔루션, 모빌리티 서비스, 목적 기반 차량(PBV)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플랜 S' 전략을 본격 가동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단순히 사명 변경에 그치지 않도록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새 로고 현판이 적용된 양재동 기아 사옥 [기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글로벌 업체와 협업 가속

실리를 중시하는 정 회장 하에서 현대차그룹은 미래 기술 각축장으로 불리는 올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불참했다.

작년에는 정 회장이 직접 현대차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을 소개하고 우버와 협력해 개발한 개인용 비행체(PAV)의 실물 크기 콘셉트 'S-A1'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CES가 온라인으로 열리는 만큼 홍보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작년 이상의 성과물을 내놓기에 아직 이르다는 얘기도 나왔다.

대신 미래 모빌리티 사업과 관련해 글로벌 업체들과의 다양한 협업을 추진 중이다.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작년 말에는 정 회장 취임 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총 8억8천만달러(한화 약 9천588억원)에 인수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 [현대차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이는 미국 앱티브와 자율주행 합작 법인 '모셔널'을 설립하는데 20억달러를 투자한 이후 최대 규모로, 정 회장은 '책임경영'의 일환으로 직접 사재 2천400억원 가량을 출연하기로 하며 로보틱스 사업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최근에는 현대차가 애플과 자율주행 전기차 생산 협업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시장이 들썩이기도 했다.

애플이 '키'를 쥔 만큼 현대차는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나 초기 단계로 결정된 바 없다"며 애플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가운데 내부에서도 득실을 따지며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수소 생태계 구축 앞장서…자율주행·UAM 개발도 속도

정 회장은 올해 수소연료전지 브랜드 'HTWO'를 론칭하는 등 수소 생태계 구축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 15일 중국 광저우(廣州)에 해외 첫 수소연료전지 생산기지를 구축하기로 하는 등 '수소 굴기(우뚝 섬)'를 내세운 중국으로도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030년 전 세계에 70만기의 수소연료전지를 판매하는 것이 목표다.

제3회 중국 수입박람회 전시된 현대차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촬영 차대운]

또 내년에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주행이 가능한 레벨 3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을 선보이고 2024년에는 원격 발렛 기능도 내놓을 계획이다.

UAM 개발에도 집중한다. 2026년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화물용 무인항공시스템(UAS)을 처음으로 선보이고 2028년에는 도심 운영에 최적화된 완전 전동화 UAM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정 회장은 취임 두 달만인 작년 12월 시행한 첫 임원 인사에서 신재원 UAM사업부장을 사장으로, 김세훈 연료전지사업부장을 부사장으로, 현동진 로보틱스랩장을 상무로 각각 승진 임명하며 미래 사업 강화에 힘을 실었다. 신규 임원 승진자 중 30%가 미래 신사업·신기술·연구개발(R&D) 부문에서 배출됐다.

이와 함께 정몽구 명예회장의 최측근인 김용환 현대제철[004020] 부회장과 정진행 현대건설[000720] 부회장이 용퇴하며 또 한 번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앞서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에 오른 지 3개월 만인 2018년 12월 그룹 사장단 인사를 통해 이미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했다.

◇ 품질·안전, GBC 신축 등 과제 산적

다만 현대차의 '고질병'으로 지적되는 품질·안전 문제나 정몽구 명예회장의 숙원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신축 사업, 지배구조 개편 문제, 중고차 시장 진출 문제 등에서는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차 신사옥 건립 부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특히 연초부터 울산공장에서 협력업체 직원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며 그룹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정 회장은 당초 예정됐던 사내 라이브 신년회를 취소하고 "품질과 안전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완벽함을 추구할 때 비로소 고객이 우리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당부하고 나섰다.

작년 말에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과 세타2 GDi(직접분사) 엔진에 대한 리콜 적정성 조사를 끝내기 위한 과징금 부과에 합의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미국에서 엔진 고장과 이에 따른 화재 위험으로 40여만대의 리콜 조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GBC 신축 사업의 경우 기존 105층 대신 70층 2∼3개동, 50개층 3개동 등의 설계 변경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지며 강남구가 반발하고 나서 당분간 갈등이 예고된 상태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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