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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보시라이 쿠데타 있을거요" 9년전 시진핑 맞은 바이든 귀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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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 2012년 방미때 바이든이 호스트

보시라이·저우융캉 준쿠데타 ‘파일’ 건네

후진타오, 중난하이 포위에 정법위 반격

전 대만 군사정보국 부국장 저서에 기록

왕이 “희망의 창 열렸다”…관계회복 기대

중앙일보

지난 2012년 2월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 부주석의 공식 방미 기간 조 바이든(오른쪽) 당시 부통령 부부가 워싱턴 해군 천문대에서 준비한 만찬에 시 부주석 부부를 초대해 함께 웃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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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약 9년 전이던 2012년 3월 19일. 중국 최고 수뇌부의 집단 거주지인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남문을 무장경찰이 포위했다. 사실상 쿠데타였다.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이 정보를 사전에 인지했다. 심복을 미리 앉힌 38군에 즉각 베이징 진입을 명령했다. 군이 무장경찰 본부인 중앙정법위원회(검찰·경찰·법원을 총괄하는 당 조직) 건물을 포위, 무장을 해제시켰다. 현장에 없었던 저우융캉(周永康) 당시 정법위 서기는 체포하지 못했다. 하지만 쿠데타는 진압됐고, 이후 시진핑(習近平·68) 현 국가주석으로 당·군·정 권력이 이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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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2월 14일 워싱턴 백악관의 루즈벨트룸에서 확대 양자회담 전에 조셉 바이든 당시 미 부통령과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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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쿠데타 정보를 미리 시진핑에게 직접 전해준 인물은 오는 20일 취임하는 조 바이든(78) 미국 46대 대통령이었다는게 홍콩의 중국 전문 월간지 『첸사오(前哨·전초)』가 지난 2013년말 보도했던 내용이다. 바이든 당선인이 시 주석의 집권에 ‘숨은 조력자’였던 셈이다. 시 주석은 이제 ‘옛 은인’ 바이든과 ‘전략적 경쟁자’로 마주한다. 임기 말까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헤쳐 나온 시 주석의 중국은 바이든 취임을 긴장 반, 기대 반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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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초 청두(成都) 미국 총영사관에 진입해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 왕리쥔(王立軍) 충칭(重慶)시 공안국장 겸 부시장.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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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에 앞선 2012년 2월 13일 시진핑 당시 국가 부주석은 9박 10일 일정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했다.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호스트로 그를 맞았다. 바이든은 손에 기밀 자료를 쥐고 있었다. 일주일 전인 6일 왕리쥔(王立軍) 충칭(重慶)시 공안국장 겸 부시장이 청두(成都) 미국 총영사관에 진입해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며 건넨 파일이었다. 파일은 즉시 게리 로크(駱家輝·71) 주중 미국 대사에게 보고됐다. 로크 대사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깨워 사실을 알렸다. 힐러리 장관은 즉시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이게 바이든이 시진핑에게 전달했던 ‘특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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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방부 산하 군사정보국의 전 부국장 웡옌칭(翁衍慶·76) 퇴역 중장의 저서 『중공정보조직과 간첩 활동』(2018)의 표지. [아마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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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방부 산하 군사정보국의 전 부국장 웡옌칭(翁衍慶·76) 예비역 중장은 저서 『중공정보조직과 간첩 활동』(2018)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왕리쥔이 제출한 보시라이(薄熙來)·저우융캉(周永康)의 쿠데타 계획 물증을 시진핑에게 보여줬다. 시진핑은 베이징에 돌아온 뒤 후진타오 주석에게 내용을 보고했다.(중략) 3월 18일 링지화(令計劃) 중앙판공청 주임의 아들 링구(令谷)가 베이징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중앙경위국 무장 부대가 현장을 봉쇄했다. 후진타오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 3월 19일 밤 심복 쉬린핑(許林平) 군단장에게 38군의 베이징 진입을 명령했다. 무장경찰의 본부 중앙정법위 건물에서 대치하도록 했다. 군 병사들이 소리쳤다. ‘우리는 후 주석의 쿠데타 본부 제압과 쿠데타 지도자 체포를 명령받았다.’ 이에 무장경찰은 ‘중요 국가 부처를 공격하는 너희들이 반군’이라며 공포탄을 쏘며 저항했다. 하지만 무장경찰 부대는 정규 군대를 대적하지 못했다. 곧 무장 해제됐다. 38군은 정법위 건물에 진입했지만, 저우융캉을 찾지 못해 체포엔 실패했다.”

웡 중장의 기록은 계속된다. “바이든 부통령은 정확하게 시 주석에게 말했다. 왕리쥔이 미국에 건넨 자료에는 장쩌민(江澤民)·저우융캉·쩡칭훙(曾慶紅)·보시라이 등이 비밀리에 시진핑을 겨냥해 권력 탈취 계획을 모의했다는 사실이 들어 있었다. 이미 시행을 시작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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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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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시진핑과 후진타오는 반격에 성공했다. 그해 11월 거행된 중국 공산당 18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은 중난하이를 물려받았다. 보시라이·저우융캉·링지화는 차례차례 숙청됐다.

바이든의 선물은 시진핑 집권 직후 오바마 정부와 중국이 밀월 관계를 맺는 동력이 됐다. 지금도 중국에서 바이든 당선인을 가장 잘 아는 지도자는 추이톈카이(崔天凱·69) 주미 중국대사도, 미국통 양제츠(楊潔篪·71) 정치국 위원도 아니다. 시 주석이다. 2011년 초부터 18개월 동안 두 정상은 양국을 오가며 8차례 25시간 이상 단독 일대일 만남을 가졌다.

시 주석은 바이든 당선에 짤막한 축전을 보냈다. 지난 11월 25일 “충돌·대항하지 말고, 상호존중·협력 공영을 희망한다”고 했다. 왕이(王毅·68) 외교부장은 지난 2일 신화사·CC-TV 공동 신년인터뷰에서 “미·중 관계에 희망의 창이 열렸다”며 “미국 신정부가 이성을 되찾고 대화를 재개해 양국 관계를 정상 궤도로 되돌리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국에는 “온 것이 있는데 보내는 것이 없으면 예의가 아니다(來而不往非禮也, 『예기(禮記)』)”라는 말이 있다. 9년 만에 마주하는 바이든에게 시 주석이 어떤 선물로 답할지 주목된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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