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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발 내딛은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초기부터 '삐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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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 폭행 사건·정인이 사건으로 경찰 역량에 '물음표'

"경찰 수사종결권 회수해야" 강경 목소리도

警"국민 피해 입는 사안 단 한 건도 없도록 관리할 것"

법학자들 "경찰 대내외 견제 장치 마련해야" 한목소리

[이데일리 이성웅·남궁민관·박기주 기자] 올해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67년 만에 검찰 수사지휘권이 폐지되는 등 검경 관계에 큰 변화가 시작됐지만 연착륙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입양 부모의 학대로 16개월 아이가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은 독자 수사 역량이 한층 강화되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경찰에 찬물을 끼얹었다. 경찰이 조금만 더 주의깊게 들여다봤다면 애초에 막을 수도 있었다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떨어지자 ‘경찰의 자체 수사종결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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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정인이 사건’ 피의자인 정인이 입양모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인 지난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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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경찰 준비 돼 있는지 모르겠다”…警 “국민 피해 없도록”

이 같은 분위기를 틈타 일각에서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회수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자 검찰의 불만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한 검사는 “경찰에서 올라온 변사 사건 보고서를 보니 한 페이지만 해도 오타가 수두룩했다. 검찰은 둘째치고 경찰이 문제다. 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다”며 노골적으로 경찰의 능력에 의문을 표했다.

최근 논란이 된 사건들로 인해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만한 역량이 있느냐는 의문이 지속 제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과 정인양 사망 사건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용구 차관은 차관 임명 전이었던 지난해 11월 6일 밤 자택 앞에서 술에 취해 잠든 자신을 깨우려는 택시 기사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일선 파출소에선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을 적용했다. 그러나 사건을 접수한 서초서는 이 차관에게 반의사불벌죄인 단순 폭행죄를 적용하고 피해자가 이 차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내사 종결했다.

만약 이 차관 사건을 내사 종결하지 않고 정식 입건했다면 단순 폭행이라도 경찰의 불기소의견서를 검찰이 한 번 더 검토하는 게 기존 수사 방식이었다. 그러나 바뀐 체제에선 정식 입건된 사건도 경찰이 자체적으로 불기소 의견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할 수 있다. 물론 현행 체계에서도 검찰이 불송치 기록을 보고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지만 1번만 가능하다. 경찰이 다시 같은 결론을 내리면 사건은 그대로 묻히는 셈이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온 정인이 사건 역시 양보모의 학대 의심 신고가 3차례나 있었지만 경찰은 내사 종결하거나 불기소 의견을 냈다.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경찰이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범죄자는 △2015년 81만 7923명 △2016년 78만 2348명 △2017년 69만 7687명 △2018년 68만 2820명 △2019년 70만 7897명으로 5년간 전체 수사 대상의 39.2%에 달한다.

이 같은 우려들을 불식시키기 위해 경찰에서 새롭게 설치한 기구가 국가수사본부(국수본)다. 국수본은 경찰의 전반적인 수사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국수본은 주요 1차 수사권 행사 기구로 경찰 단계 수사를 총괄·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경찰은 최근 일련의 부실 수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국수본과 자치경찰제 도입 후 국민중심 책임수사 체제를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하고 정착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 목표”라며 “경찰의 잘못으로 사건 처리가 잘못되고 국민이 피해를 입는 사안이 단 한 건이라도 없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학자들 “경찰 수사 전문성과 공정성 확보할 장치 필요”

법학자들은 수사권 조정 취지에 따른 선기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서둘러 경찰 수사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대내외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경찰의 수사권을 통제할 수 있는 외부적 장치가 적절하지 않다. 경찰의 수사 적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들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제일 큰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대대적인 경찰 제도 개혁과 함께 검경 수사권 조정을 논의하면서 속도 조절을 했어야 한다”며 “조정이 이미 이뤄졌기 때문에 이제는 경찰 내부에서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감사 시스템을 갖추고,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간 세부적 업무 분담 조정 등을 통해 실질적인 민주 경찰을 이뤄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재봉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그간 검사가 해온 경찰 수사 견제의 역할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외부 전문가 참여를 통해 전문성을 높이고 그 과정에서 수사 면면을 외부에 공개해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외부 전문가를 수사에 참여시킬 실질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한 교수는 경찰이 국민과 소통하며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검경 수사권 조정) 각론에 대한 정비 작업에 돌입했지만 지금 장막에 가려져 있어 국민들이 느끼는 답답함이 매우 크다”며 “국민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왜 그렇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의견을 개진하는 등 개혁에 참여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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