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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文 회견에 알았다, 대통령 할수 없는 일 이렇게 많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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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호 서울대 교수가 본 신년회견

국민 기대, 집권초 자신감 컸지만

간단한 해답 내놓을 수 없는 현실

그게 1년간 침묵의 이유 아닐까

진솔한 소통으로 국민에 다가서길

중앙일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거리두기를 고려해 기자 20명만 참석하고 100명은 화상 연결로 진행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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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은 마스크를 쓴 20명의 기자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뒤로는 100명의 기자가 벽을 가득 채운 큰 화면에 화상으로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지난해 1월 14일의 기자회견 이후 첫 회견이었다. 내가 회견을 보기 위해 들어간 청와대 유튜브 채널은 화면의 오른쪽 채팅창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하트 모양이 낭자한 응원의 메시지들을 뿜어올리고 있다. 어떤 이는 방송으로, 어떤 이는 인터넷으로 지켜보았을 것이고, 많은 이는 생업에 종사하느라 회견을 볼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두 시간을 넘겨 끝난 기자회견은 수많은 사안에 대한 논의를 남겼다. 비서실은 3개의 대분야, 즉 방역·사회, 정치·경제, 그리고 외교·안보 등으로 나누어 진행하고자 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은 그런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도 오랜만에 온 다급한 기회인지라 분야에 맞춰 질문을 던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질문들은 ‘사면 문제’에서 시작돼 검찰 갈등으로, 그리고 외신기자들의 대북정책에 대한 질문들까지 매우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것으로 진행됐다.

이곳에서 세부적인 이슈들에 대한 디테일은 모두 제쳐놓고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왜 이런 기자회견이 만 1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없었을까 하는 것이다. 지난 1년은 코로나19가 야기한 생활의 모든 영역에 이르는 문제들로 인해 전 국민이 예외 없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인해 이런 소통의 기회를 지금까지 미뤄왔다고 했지만, 오히려 코로나19 때문에 더 적극적인 소통을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부터라도 이런 소통의 기회를 더 넓은 범위에서 적극적으로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와 같은 소통은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는 시간”이라기보다 대통령의 의무이지 않은가.

대통령의 말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한 순간들이었다. 부동산 가격을 잡는 일은 지난해에 급격하게 늘어난 세대 수로 인해 역부족이었고, 재난 지원은 정부 재정의 역할만으로는 역부족이며, 대북정책은 결국 바이든 신정부의 정책적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따라 그 성패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에서부터 자신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에 있어서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대통령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요컨대 어제의 기자회견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에 대한 토로이기도 했다.

한국의 대통령만큼 끝없는 기대로 점철된 자리가 있을까. 그것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끝없는 요청의 리스트를 보면 알 수 있다. 정당을 해산해 달라는 청원에서부터 특정 재판부 판사 탄핵에 이르기까지, 고통받는 청년과 중장년과 노년이 각기 올린 호소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경제와 정치와 삶의 각 영역에서 발휘해 주었으면 하는 무소불위의 영향력에 대한 기대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게시판에 남겨진 대부분의 청원들은 대통령의 능력 밖 일들일 따름이다.

지난 1년 동안 대통령의 침묵은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까. 그 끝없는 기대와 집권 초의 자신감에 반비례해 정작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진흙뻘을 지나는 것처럼 느리고 답답하기만 한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때로는 정책들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 코로나19가 시민들을 고통에 빠뜨린 곳에서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대가 하늘처럼 높아지기만 했지만 간단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는 입장에서 그동안 할 수 있는 말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핑계라고 할 것이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자각과 인정이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100점짜리 답이 아니라 80점짜리라 하더라도 진정성 있는 노력과 소통이 시민들의 마음에 더 와닿고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 어제의 기자회견이 그런 노력의 끝이 아닌 시작이 됐으면 하는 염원이다.

■ 박원호 교수

중앙일보

박원호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치학 연구방법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선거조사(American National Election Studies) 펠로와 플로리다대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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