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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한국과학에 노벨상보다 중요한건, 질문하는 아이로 키우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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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새해특집

[글로벌석학 인터뷰]<6> 아다 요나트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硏 교수

동아일보

중동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아다 요나트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과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과학자를 향해 “특별한 조언을 구하지 말고 관심과 열정이 끌리는 데로 나아가라”고 격려했다.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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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은 과학의 목표가 아닙니다. 호기심과 열정이 바탕인 연구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중동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해 큰 주목을 받았던 세계적 화학자 아다 요나트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교수(82)는 동아일보와의 신년 서면 인터뷰에서 “과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분야를 탐구할 수 있는 열정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포의 단백질 공장’으로 불리는 리보솜 구조를 밝혀낸 성과로 2009년 2명의 남성과학자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에 앞서 울프 화학상, 로스차일드 생명과학상, 아인슈타인 세계과학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상을 목표로 연구한 적은 없다고 거듭 밝혔다. 매년 노벨 과학상 발표 때 전전긍긍하는 한국 과학계에 대한 쓴소리로 들렸다.

1939년 예루살렘에서 유대교 성직자(랍비)의 딸로 태어난 그는 단백질 합성 및 유전자 전달에 관여하는 세포 내 소기관 ‘리보솜’ 연구의 선구자다. X선 결정학 기술로 리보솜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낸 공로로 마리 퀴리(1911년·프랑스), 퀴리의 딸 이렌 졸리오퀴리(1935년·프랑스), 도러시 호지킨(1964년·미국)에 이어 여성으로는 네 번째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요나트 교수는 젊은 과학자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냐는 질문에 “조언을 구하지 말라. 스스로 고민하고 관심과 열정이 이끄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당신 자신의 롤모델은 바로 당신이라는 의미였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리보솜, 항생제, 슈퍼 박테리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는 그는 이스라엘 전반에서 폭넓은 존경을 받고 있다. 과거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당국이 억류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대원의 조건 없는 석방을 촉구하는 등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세계적 과학자임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질문에는 줄곧 “내가 아는 부분만 답하는 게 적절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은 과학에 관심이 많은 나라다. 적극적으로 과학 교육에 투자했고 일정 부분 성과를 냈지만 아쉽게도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나는 한 번도 과학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보다는 호기심이 바탕이 된 연구를 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이미 많은 한국 연구자들이 훌륭하게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한국 과학자와 여러 차례 아주 유익한 교류를 했다. 한국의 젊은 과학자가 계속 열정과 호기심이 뒷받침된 연구를 진행하면 노벨상도 수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언한다면….

“한국의 과학 교육에 대해 잘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 아직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분야를 탐구할 수 있는 열정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호기심과 열정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중요한 건 질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가 부모에게 질문을 할 때 두려움이 없이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학교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학교와 집에서 관심이 생기는 것에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설령 아이의 질문이 부모나 선생님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도 괜찮다. 그런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호기심과 열정을 키우는 데 질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요나트 교수는 과거 인터뷰에서 리보솜 연구 또한 ‘세포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인생은 호기심과 실험의 연속이었다며 어린 시절 집 난간의 높이를 측정하려다 발코니에서 뜰로 떨어지는 바람에 팔이 부러진 적도 있다고 밝혔다. 끝없는 호기심이야말로 대담한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창조적 연료라는 것을 많은 과학자가 증명해 왔다고도 강조했다.

―인공지능(AI)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에 대한 관심이 과학교육의 미래 또한 바꿀까.

“AI 관련 기술을 포함해 새로운 기술들이 대거 등장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과학 교육의 핵심 요소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거듭 말하지만 현재도 미래도 과학 교육의 핵심은 호기심과 열정을 키워주는 일이다.”

요나트 교수는 과거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과학은 그 발전 방향을 예견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공통 토대가 화학, 물리, 수학 같은 기초과학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며 기초가 튼튼해야 더 깊고 풍부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신이 평생을 매진한 리보솜 연구 또한 초기에는 주목받고 각광받는 분야가 아니었지만 재미와 열정으로 연구를 계속한 덕에 오늘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그의 성공에는 이스라엘 기초과학의 산실로 꼽히는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역할도 컸다. 초대 대통령 겸 아세톤을 만든 유명 화학자인 하임 바이츠만(1874∼1952)의 이름을 붙여 만든 이 연구소는 이스라엘이 세계적 생명과학 강국으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유대인 부호 키멜만가(家)가 요나트 교수의 연구를 적극 지원해 돈 걱정 없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 퀴리에 대한 책을 읽으며 화학자의 꿈을 키웠고, ‘이스라엘의 퀴리’ ‘중동의 퀴리’로 불린다고 알고 있다. 전 분야를 통틀어 중동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 또한 유명한데 여성 과학자가 남성 과학자와 다른 점이 있다고 보는가.

“퀴리 박사의 지적인 모습, 연구에 대한 헌신에 크게 감명 받았다. 하지만 과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성 연구자가 특별한 장점을 지니거나 단점을 보유했다고도 보지 않는다. 다만 사회 전반에서 여성 과학자를 대우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더 많은 훌륭한 여성 과학자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여성 과학자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다른 과학자에게) 너무 많은 조언을 구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다. 또 구체적으로 지향하는 바와 경험하는 어려움 역시 다르다. 스스로 고민하고 관심과 열정이 끌리는 데로 나아가는 게 가장 좋은 길이다. ‘특별한 조언을 구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젊은 남성 과학자에게도 똑같이 해주고 싶은 말이다.”

―외동딸이 의사라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다.

“딸 하지트는 이스라엘 최대 종합병원 셰바메디컬센터에서 내과의사로 재직하고 있다. 서로의 연구와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딸과 협력해 연구를 진행한 적도 있다. 외손녀 또한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손녀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요즘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나

“여전히 리보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주로 리보솜에 의한 단백질 유전자 코드의 변환 과정, 여러 항생제가 왜 이 과정을 마비시키거나 저항성을 갖게 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이 외에 부작용이 적고 친환경적인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대한 연구, 암 빈혈 등 리보솜의 돌연변이와 생명의 근원과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연구 또한 진행하고 있다.”

요나트 교수는 일반 항생제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는 ‘슈퍼 박테리아’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슈퍼 박테리아를 이길 수 있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도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해 왔다. 노벨상을 수상했고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연구에 열심이라니 놀랍다고 하자 “당연히 연구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는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코로나19 확산 사태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바이러스 대란이 앞으로 또 나타날 것으로 보나.

“화학자로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관심이 많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이제 꽤 이해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전자 코드 전달 역할을 수행하는 리보솜을 이용하는 방법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거의 이해하게 됐다는 의미다. 다만 내가 바이러스 전문가가 아닌 만큼 백신이나 코로나19 등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아다 요나트
1939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출생
1962년 히브리대 화학과 졸업
1964년 히브리대 생화학과 석사
1968년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엑스레이 결정학 박사
1970년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연구원
1984년 바이츠만과학연구소 교수
1989년 바이츠만과학연구소 키멜만 생체분자센터장
2006년 울프화학상, 로스차일드 생명과학상
2008년 아인슈타인 세계과학상
2009년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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