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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4350㎞ ‘바이든 카라반’, 이틀새 9000명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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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내전 찌든 中美 빈곤층, “미국 가자” 필사적 이민 도보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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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에서 출발한 이민자 행렬 '카라반'이 17일(현지 시각) 과테말라 국경에서 방위군에 막혀있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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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국가 온두라스의 작은 마을에서 미용실을 하며 홀로 세 아이를 키우던 마를렌 무노즈씨는 지난 14일(현지 시각)부터 길을 걷고 있다. 6세, 14세, 15세 아이들 손을 잡고 사흘간 114㎞를 걸었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다. 그는 “걷는 게 너무 힘들지만 고향에 있다간 아이들을 굶겨 죽일 수 있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섰다”고 했다. 원래 가난한 동네인데 코로나 사태로 봉쇄가 이어져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자 살림과 미용용품을 팔고 고향을 등졌다고 했다.

그는 9000여명과 함께 걷고 있다. 그처럼 빈곤을 피해 미국으로 가려는 온두라스인과 바로 옆 나라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CNN에 따르면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각각 인구의 61%, 38.2%가 빈곤층이다. 오랜 내전과 허리케인 등으로 삶의 기반이 무너졌고, 작년부턴 코로나로 그나마 있던 일자리도 사라져 고통받는 이들이다. 이런 이들의 이민 행렬은 ‘카라반(caravan)’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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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온두라스 산페드로술라에서 수십 명으로 시작한 이 행렬은 지난 15일만 해도 3000명이었는데 이틀 만에 9000여명으로 불었다. 산페드로술라부터 약 170㎞를 걸은 이들은 과테말라 국경에 도착해 첫 장애물을 만났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17일 “과테말라 방위군이 국경에서 카라반의 월경(越境)을 차단하고 있다”며 “과테말라군은 곤봉과 방패, 최루탄을 동원했지만, 일부는 저지선을 뚫고 국경을 넘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600여명은 붙잡혀 본국 추방을 앞두고 있다.

미국행 카라반 행렬은 2010년대 들어 등장했다. 고질적인 가난과 내전, 자연재해 등으로 고통받는 중남미인들이 희망을 찾아 미국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런 만큼 이들의 행진은 필사적이다. 이번 행렬에 동참한 한 온두라스 남성은 NYT 인터뷰에서 “단지 굶어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나섰다”고 했고, 또 다른 남성은 “미국에 갈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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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에서 출발한 이민자 행렬 '카라반'이 17일(현지 시각) 과테말라 국경에서 방위군에 막혀있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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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반의 길은 죽음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으로, 국경을 넘으려던 이민자들이 붙잡혀 추방당하거나 국경 부근 열악한 환경으로 사망하는 일이 많았다. 2018년 카라반에 합류했던 사람들 중 최소 280명이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 시절 카라반은 주춤했다.

올해 들어 다시 카라반 행렬이 본격화된 것은 조 바이든이 미 대통령으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취임과 동시에 이민 정책을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때문에 이번 카라반 행렬은 역대 최대 규모가 됐다.

설령 이들이 과테말라 국경을 넘더라도 고행길은 시작일 뿐이다. 미국까지 가려면 과테말라뿐 아니라 멕시코를 통과해야 한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4200㎞. 멕시코와 미국 국경을 넘는 것도 어렵다. 멕시코는 카라반 행렬의 통과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작년 1월에도 1000여명의 카라반 이민자들이 멕시코 국경에 도착했지만 402명은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됐고, 나머지는 본국으로 추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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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에서 출발한 이민자 행렬 '카라반'이 17일(현지 시각) 과테말라 국경에 도착했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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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입국도 당장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새로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미국에 들어와 있는 1100만명의 불법 이민자 문제를 먼저 다룰 예정이다. 아직 입국하지 않은 이민자들은 후순위라는 뜻이다. 작년 12월 바이든 인수위는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폐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6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다.

☞카라반(Caravan)

원래 사막 등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 낙타나 말에 짐을 싣고 떼 지어 다니며 특산물을 팔고 사는 상인 집단을 일컫는 말. 최근엔 온두라스·과테말라·엘살바도르 등 중미(中美) 국가에서 무리를 이뤄 도보나 차량으로 자국을 떠나는 행렬을 지칭하기도 한다.이들은 미국이나 멕시코에서 난민 지위를 얻는 게 목표다.

[김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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