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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그날 허둥댄 이규원 검사…김학의 출금 허위공문만 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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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으로 떠나려다 출국이 제지된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2019년 3월 23일 새벽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귀가하고 있다. [JT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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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 이규원(43) 검사가 2019년 3월 23일 자정께 법무부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긴급 출국금지(출금)를 요청할 당시 '긴급 출금 요청 양식'이 아닌 '일반 출금 요청 양식'을 작성해 보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검사는 일반 양식 제목 앞에 '(긴급)'이라는 문구를 수기로 적어 넣었다. 이후로도 얼마나 허둥댔는지 법무부에 총 6차례나 문건을 수정해 보내기도 했다.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이 검사의 허위 요청서는 처음부터 효력이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긴급 출금 요청서' 아닌 일반 출금 요청서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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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출국 금지 요청서(위)와 긴급 출극금지 요청서 양식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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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106쪽 분량의 공익신고서에 따르면 이 검사는 2019년 3월 23일 0시 8분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명의로 긴급 출금을 요청했고, 이는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출입국청)에 접수됐다. 이에 출국심사까지 마쳤던 이 전 차관은 0시 10분 탑승구 인근에서 출입국청 직원들로부터 출국금지 사실을 통지받고 탑승을 제지당했다.

이 과정에서 이 검사가 작성해 법무부로 보낸 요청서는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른 '출국금지 등 요청서'였다. 긴급 출금을 요청할 때는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제출해야 하는 데 일반 출금 요청서를 보낸 것이다. 이 검사는 일반 출금 요청서를 긴급 출금 요청서처럼 꾸미기 위해 제목 앞에 수기로 '(긴급)'이라고 적었다. 사건번호는 김 전 차관이 이미 무혐의 처분을 받은 '서울중앙지검 2013년 형제 65889호 등'이라고 썼다. 요청기관엔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서울동부지검 직무대리 검사 이규원)'이라고 쓰고 본인의 사인을 첨부했다.

긴급 출금 요청은 일반 출금 요청과 비교해 그 조건이 더 엄격하다. 긴급 출금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범죄 피의자로서 도주·증거인멸 우려가 있을 때만 요청할 수 있다. 또 긴급 출금 요청권자는 '수사기관의 장'으로 이 검사의 요청서엔 서울중앙지검장이나 서울동부지검장의 관인이 없었다.



법적 근거 달라…긴급 출금엔 '피의자' '수사기관장' 명시



일반 출금과 긴급 출금 요청서는 양식도 다르다. 일반 출금 요청서에는 '출입국관리법 제4조 3항, 4조의2 제2항 등(이하 생략)에 따라 다음과 같이 요청합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반면 긴급 출금 요청서에는 '위 피의자에 대해 출입국관리법 4조의6 제1항에 따라 긴급출국금지를 요청합니다'라고 돼 있다. 두 양식의 법적 근거가 다른데도 이 검사는 엉뚱한 요청서를 제출했다.

긴급 출금은 그 대상이 반드시 '피의자'여야 한다는 게 적시돼 있다. 이 전 차관은 당시 진상조사단의 조사 대상이긴 했지만, 정식 수사로 입건된 형사 피의자 신분이 아니었다. 또 일반 출금 요청서에는 '요청기관'을 쓰면 되지만, 긴급 출금 요청서에는 '○○○의 장'을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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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과 관련해 대검찰청이 기존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배당됐던 사건을 수원지검 본청으로 재배당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은 가운데, 의혹에 연루된 '추미애 사단' 인물들이 줄줄이 소환 조사를 받을지 관심이 모인다. 사진은 1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수원지방검찰청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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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법무부는 이와 관련 "법무부 장관의 출금 권한에 관한 기본 조항인 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2항은 '관계기관의 장의 요청이 있을 경우'란 문구가 없다" "(이 검사는) 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 발령을 받은 '독립관청'으로서의 '수사기관'에 해당해 긴급 출국금지 요청 권한이 있다"는 엉뚱한 해명을 내놓은 바 있다.

법조계에선 해당 조항은 일반 출금에 적용되는 법 조항인데 긴급 출금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 데다 이 검사가 파견된 진상조사단은 수사권이 없어 출금 권한이 없다고 해석한다. 긴급 출금 이틀 뒤 법무부 자체적으로 작성한 법률 검토 보고서에서도 "대검 진상조사단은 정식 수사기관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진상조사단 단독명의로 출금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담겼다.



허위 공문서 2건 아닌 총 6건…"문서 1건당 죄 따져야"



이 검사는 그날 새벽 3시 8분 법무부에 긴급 출금 승인요청서를 최종 접수하며 사후 승인 절차도 진행했다. 이번엔 출금 요청서에 적었던 서울중앙지검 무혐의 사건 대신 '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 1호'라는 동부지검 내사사건 번호를 적었다. 해당 번호의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유령사건이었다.

당시 법무부 직원 휴대전화 포렌식 분석 결과 이 검사는 최초 출금 요청서와 최종 긴급 출금 승인요청서를 보낸 3시간 동안 네 차례 추가 서류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중간 수정 과정에서 이 검사는 긴급출금 요청서 공식 양식의 공문도 보냈다. 이 요청서에는 한찬식 당시 서울동부지검장 이름을 적은 뒤 본인이 '代 이규원'이라고 대리 서명했다. 그런데 근거 사건번호는 '서울중앙지검' 번호를 그대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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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모 검사가 2019년 3월 22일과 이튿날인 3월 23일 작성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긴급 출입금지 요청서와 법무부 장관 승인 요청서. 이 검사는 긴급 출입금지 요청서엔 이미 김 전 차관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서울중앙지검 2013년 사건번호를, 승인 요청서에선 존재하지 않는 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1호란 사건번호를 적었다.[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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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사는 출입국관리법령상 긴급 출금 조치에 요구되는 부속서류인 긴급 출금 보고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 검사는 보고서에서 "김 전 차관은 윤중천으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수수 등의 범죄사실이 있다"며 "2019년 3월 25일경 대검에 뇌물수수 등 관련 수사 의뢰를 할 예정"이라고 적시했다.

중간에 서울중앙지검 무혐의 사건번호를 서울동부지검 내사번호로 고친 일반 출금 요청서와 긴급 출금 승인요청서도 보냈다. 최종 긴급 출금 승인요청서는 출력된 중앙지검 사건번호를 수기로 지워 동부지검 내사번호를 수기로 기재한 문서를 보냈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새벽 3시간 동안 이 검사와 법무부 출입국 본부 사이에서 문제가 많다고 인식했는지 총 6차례나 허위 서류가 오간 것으로 보인다"며 "공문서 위조죄든 허위 공문서 작성죄든 문서 1건당 죄가 성립할 수 있어 이날 새벽에 오간 문건 모두가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광우·정유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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