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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판사교체·준법위·정경심…이재용 '실형' 세 가지 요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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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욱 판사 합류 이후 재판부 변화

준법위 기회 줬지만 '미션 완수' 실패

표창장 위조로 4년 받은 정경심 재판 부담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지난 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마련한 외부 독립 감시기구인 ‘준법감시위원회’의 운영 노력이 양형에 반영돼 집행유예가 선고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이 부회장의 실형 선고에는 △새롭게 합류한 강상욱 판사의 역할 △준법위의 미흡한 활동 △교차 재판의 영향 등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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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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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욱 판사 합류로 기류 바뀌었나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당초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당초 서울고법 형사1부의 정준영·송영승·김세종 부장판사였다. 당시 재판부는 지난 2019년 10월 25일 첫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을 언급하며 ‘실효적 준법감시 제도 마련’ 등을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특검은 이를 ‘편향 재판’이라고 지적하며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기도 했으나 기각됐다. 삼성 측은 곧바로 외부 독립 기구인 준법위를 출범했고 재판부는 이에 대한 실효성 여부를 평가하는 ‘전문심리위원’을 도입했다.

그러다 지난해 정기 인사로 김세종 판사 대신 강상욱 판사가 새롭게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이후 재판부는 지난달 21일 공판에서 지난 30년 동안의 과거 삼성그룹 총수 범죄 8건을 지목하며 발생 원인은 무엇이고 재발 방지 수단을 마련해 소명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재판부가 지정한 전문심리위원단 3명 모두 ‘발생 가능한 위법행위의 유형화’를 핵심 평가 요소로 꼽았기 때문이었다.

석명을 요구한 위법 행위는 △1983~1987년 故 이병철 선대 회장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220억원 뇌물 제공 △1990년~1992년 故 이건희 전 회장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100억원 뇌물 제공 △1999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김홍업씨에게 5억원 증여 △2008~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및 다스의 로펌 수임료 89억원 대납 △차명 계좌로 78억원 상당 조세포탈 △삼성물산 돈으로 한남동 주택 공사비 33억원 지급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 증거인멸 사건 등이었다.

강 판사는 “피고인(이재용)이 제시한 준법감시제도 개선 방안이 향후 기업 내부 비리를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실효성이 있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이 사안들에 대한 법적위험 평가 등이 이뤄졌는지를 묻는 것이고 아무리 전문 심리위원 보고서를 들여다봐도 그런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그동안의 공판은 정 부장판사를 주축으로 삼성에 호의적인 분위기로 진행됐으나 강 판사의 합류로 기류가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이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토록 하고 이를 양형에 반영해 집행유예를 이끌어내려 했으나 강 판사가 합류해 브레이크를 건 게 아니냐는 것. 더욱이 과거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의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받은 사업지원TF 출신 임원이 최근 경영 일선에 복귀한 점도 고려됐을 거라는 분석이다.

‘준법위’ 기회 못 살린 삼성

두 번째 요인은 ‘준법위’ 운영의 미흡함이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제도의 양형 반영 의사를 밝힌 후 삼성이 곧바로 준법위를 설치·운영한 것은 긍정적이었다. 재판부가 사실상 없던 기회를 만들어 준 셈으로, 양형 반영 여부를 떠나 삼성은 일단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운영 결과는 재판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전문심리위원들로부터 지적받은 ‘준법 위반 리스크 유형화’와 ‘사업지원TF와 총수 등 컨트롤타워 감시 방안 마련’ 등을 완수해내지 못했다.

재판부는 최종 선고에서 준법위가 미래에 벌어질 불법·일탈 행위까지 막기엔 역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또 삼성그룹 컨트롤타워 조직에 대한 준법 감시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은데다, 준법위와 협약을 체결한 7개사 이외의 회사들에서 발생할 위법행위에 대한 감시체계가 성립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과거 각종 비위 의혹에 연루된 삼성 미래전략실의 후신인 ‘사업지원TF’나 총수, 즉 ‘국정농단’과 같은 비위행위를 결정·지시할 수 있는 핵심 대상에 대한 감시 방안이 미흡했다는 것. 준법위는 지난해 12월 전문심리위원들의 지적 이후 리스크 유형화를 위한 용역 발주와 사업지원TF 감시 강화를 포함한 준법위의 통제·감시 범위 확대 등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선고일까지 특별한 방안을 내놓긴 역부족이었다. 이 부회장도 지난달 30일 결심공판 최후 진술에서 이중·삼중 재발 방지책 마련 등을 강조했으나 결국 구체적 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재판부와 전문심리위원의 지적이 선고를 코앞에 두고 이뤄진 만큼 시간이 촉박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준법위는 이달까지 약 1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컨트롤타워에 대한 감시체계 마련과 리스크 유형화를 진행하지 못하면서 재판부가 준 기회를 날린 셈이 됐다.

교차 재판 결과에 따른 부담

또 하나의 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이다. 정 교수는 이 부회장의 선고를 불과 한 달도 안 남긴 지난달 23일, 표창장 위조 혐의로 징역 4년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 부회장 재판이 정 교수 재판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주요 재판인 데다, 86억 뇌물 혐의라는 점, 전문심리위원의 지적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하는 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정 교수의 항소심 재판을 진행한다. 정 교수의 1심 재판부는 삼성 합병 사건 재판을 맡는다.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두 주요 사건의 재판부가 서로 교차하면서 재판을 맡게 돼 선고에 부담감을 가졌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부가 추후 맡게 될 재판 선고까지 고려해 이번 선고를 내려야 했을 것”이라며 “교차한 두 재판부가 추후 맡게 될 재판에서 각각 어떤 선고를 내릴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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