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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뭐 하나 정상인 게 없지만 아무 일 없는 척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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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 자매’ 27일 개봉

어릴적 아빠의 폭력에 시달리다… 결혼후 가정생활도 쉽지만 않아

외도-이혼-암과 싸우면서도 위로마저 부담스러운 세 자매

“괜찮다” 반복하는 우리 모습같아… 배우들 열연에 가족의미 되새겨

동아일보

‘세 자매’에서 완벽한 척하는 둘째 미연 역의 문소리, 괜찮은 척하는 첫째 희숙 역의 김선영, 안 취한 척하는 막내 미옥 역의 장윤주(왼쪽부터). 세 자매가 아버지 생일잔치에서 발작을 일으켜 입원한 막내 진섭을 기다리고 있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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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개봉하는 영화 ‘세 자매’에 등장하는 가족 중엔 ‘멀쩡한’ 가족이 없다. 세 자매 중 첫째 희숙(김선영)의 남편은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로 돈이 필요할 때만 집에 찾아오고, 사춘기 딸은 희숙에게도 욕을 서슴지 않는다. 둘째 미연(문소리)의 남편은 미연이 지휘자로 있는 교회의 성가대원과 바람을 피운다. 중학생 아들을 둔 남자와 결혼한 셋째 미옥(장윤주)은 엄마 역할을 하고 싶지만 자신의 존재를 부끄러워하고 숨기려는 아들의 모습에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세 자매는 서로에게 ‘척’을 한다. 암 판정을 받은 희숙은 남편과 딸 중 그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지만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미연은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뒤 삶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상실감을 느끼지만 신도시 45평 자가에 사는 완벽한 가족인 척 포장한다. 소주를 입에 달고 사는 미옥은 술에 취해 시도 때도 없이 미연에게 전화를 걸지만 “또 술 마셨냐”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맨 정신인 척한다.

영화는 세 자매가 진짜 모습을 숨긴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근원 역시 ‘멀쩡하지 못했던’ 이들의 가족사에서 찾는다. 세 자매의 아버지가 막내아들 진섭과 첫째 딸 희숙에게 가했던 폭력, 이들이 아버지에게 맞는 모습을 지켜보며 매일 밤 ‘아버지 빼고 우리 가족 전부 죽어서 천국 가게 해 주세요’를 기도했던 미연. 문제적 가족으로 시작해 문제적 가족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겉으론 평범해 보이는 가정 어디에나 존재하는 가족 간 갈등과 봉합, 상처와 치유를 담는다.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영화의 메시지가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건 단연 배우들의 열연 덕이다. 세 배우의 연기는 숨이 막히는 듯한 갑갑함을,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인한 가슴 저릿함을 안긴다.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몰입감을 높인다. 엄마와 말을 섞는 것조차 싫어하지만 한편으론 동정심도 품고 있는 희숙의 딸 보미 역의 김가희와, 새엄마 미옥을 부끄러워하는 성운 역의 장대웅은 주변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가족 중 일원의 얼굴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

영화는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의 관계 속에서 희망을 찾아낸다. 술에 취하지 않은 척 전화하던 미옥에게 미연은 “맨날 술에 취해 전화로 중얼거리는 말이 기억은 나느냐”고 묻는다. 그런 미연에게 미옥은 “남편 집 나가고 이혼당하게 생겼지? 다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괜찮은 척, 완벽한 척, 맨 정신인 척하는 이면의 모습을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래서 표현은 못 해도 마음속으로는 서로를 가엾게 여기고 보듬으려는 가족의 의미를 일깨운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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