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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朴피해자 가족 “죽지못해 산 6개월, 24시간 붙어 숨쉬는 것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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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어머니·동생 직접 입장문 “6개월간 상황 점점 극단 치달아”

“책임 회피한 박원순 명예만 소중한가, 우린 죽어가는데…”

조선일보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가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박원순 성폭력 사건 검찰 재수사 및 수사 내용 공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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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앞에서 지난 6개월간 숨도 제대로 못 쉬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터져버릴 것 같아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지만, 나는 우리 딸 앞에서 절대로 내색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힘들다고 하면 같이 죽자고 하기 때문입니다.”(피해자 A씨 어머니)

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 A씨 가족들이 침묵을 깨고 직접 입을 열었다.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이 성추행 피소 사실을 알고 극단적 선택을 한 지 6개월 만이다. 지금까지 A씨는 변호인단을 통해 입장문을 발표한 적이 있지만, 가족들은 직접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검찰 조사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박 전 시장 피소 사실을 유출한 당사자로 지목됐는데도 이를 부인하고, 박 전 시장 주변인들이 A씨가 박 전 시장에게 쓴 편지를 A씨 실명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는 등 2차 가해가 끊이지 않자 18일 가족들이 나서 입장문을 발표한 것이다. 200자 원고지 52매 분량의 이 입장문엔 피해자 A씨와 그를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 동생의 고통이 그대로 담겨 있다.

피해자의 동생은 “지난 6개월간 저희 가족은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살고 있다”면서 “흔히들 시간은 약이라고 하지만, 6개월 전보다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상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다.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피해 사실 부정 및 은폐를 위한 일련의 과정, 그리고 2차 가해로 인해 누나는 삶의 의욕이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어머니께서는 누나 곁에서 24시간 함께 계셔야 한다. 누나는 혼자서 잘 수가 없다. 한 번은 4월 사건의 피고인에게, 한 번은 박 전 시장에게 성폭행당하는 꿈을 꾸기 때문”이라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숨을 죽이고 누나의 숨을 들으며 상태를 살핀다. 어머니께서는 누나가 힘들어서 울면 같이 울고, 욕하면 같이 욕하면서 자신의 삶을 태워 누나의 삶을 겨우겨우 밝혀가신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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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아버지께서는 박 전 시장이 자살하고 누나의 성추행 피해 사실이 전면적으로 부정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이렇게 억울하게 끝날 바에야 다 같이 죽자’고 하셨다. 삶의 어떤 고난도 꿋꿋하게 이겨내신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고 누나에 대한 걱정으로 점점 여위어 가시는 걸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했다. 그는 “저는 아침이 되면 혹시 누나가 밤사이 나쁜 마음을 먹고 실행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면서 누나와 엄마의 안전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면서 “최근엔 2차 가해가 더욱 심각해져 누나의 신상이 포함된 정보나 사진이 노출되지는 않았는지 국내외 사이트를 수시로 검색해 신고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나의 삶에 대한 불안감과 회의감이 더욱 심각해질까 봐 무섭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은 피해자 A씨가 작년 7월 ‘박원순 시장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이틀 뒤 박 전 시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씨의 고소장이 경찰에 접수되기도 전에 고소 내용이 박 전 시장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전해져 논란이 됐다. 지난달 검찰 수사 결과, 한국여성단체(여연) 김영순 대표와 여연 대표 출신인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순영 전 서울시 젠더특보가 유출자로 지목됐다. 피해자 변호인이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김 대표에게 전달하자 이를 전달받은 남 의원이 임 특보에게 전화로 “박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임 특보는 남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여성 권익을 보호해야 할 여성단체 대표와 여성단체 경력을 발판으로 3선 국회의원이 된 남 의원이 오히려 성추행 피해자를 궁지로 내몬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남 의원은 “피소 사실은 몰랐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봤을 뿐”이라는 앞뒤 안 맞는 해명을 하며 지금까지 발뺌하고 있다. 남 의원은 또 민주당이 A씨를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한 것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동생은 “남 의원, 김 대표, 임 특보로 인해 누나는 피해 사실을 증명하고 가해자의 사과를 받을 기회조차 잃게 됐다”면서 “누나 같은 피해 여성의 인권을 지켜줄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분들이 누나를 외면하고 입을 다문 것”이라고 밝혔다. A씨 아버지는 입장문에서 “피해자가 가장 힘든 시간에 이 여성 운동가 세 명은 적극적으로 가해자 편을 들어줬다는 것이 전 국민을 분노케 한다”면서 “(남 의원은) 지금이라도 피해자와 가족과 국민 앞에 잘못을 사과하고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길 바란다”고 밝혔다.

남 의원 등 여성 단체 출신들이 보이는 행태는 피해자 가족들에겐 또 다른 고통을 주는 ‘2차 가해’에 해당한다. 서울경찰청은 5개월간 수사 끝에 지난달 박 전 시장 성추행 고소 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서울시 부시장 등 주변인의 강제 추행 방조 건은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극심해졌다. 강제 추행 방조 혐의로 고발된 오성규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은 “고소인 측 주장이 거짓이나 억지라는 것이 확인됐다. 4년 성폭력 주장의 진실성이 의심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찰 수사 결과가 “사필귀정”이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지난달 23일 민경국 전 서울시 인사기획 비서관은 A씨가 박 전 시장에게 쓴 편지 세 통을 페이스북에 공개했고, 김민웅 경희대 교수는 ‘민경국 비서관이 공개한 자료'라면서 A씨의 편지를 올리고 “어떻게 읽히시느냐. 4년간 지속적 성추행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이 쓴 글”이라고 했다. 이후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는 A씨 사진이나 A씨 실명이 적힌 편지가 “가짜 미투” 등 주장과 함께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작년 7월 박 전 시장과 팔짱 낀 사진을 올리면서 “나도 추행했다”는 글을 올렸던 진혜원 동부지검 부부장검사는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꽃뱀은 왜 발생하고 왜 수틀리면 표변하는가’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A씨 어머니는 입장문에서 “피해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내가 죽으면 인정할까?’라는 말을 한다. 자기의 모든 비밀번호를 가르쳐주며 만일을 위해 기억하고 있으라고 한다”면서 “내가 ‘(네가) 죽으면 또 악성 지지자들이 그것 보라고, 지가 잘못했으니 죽은 거라고 나올 거라고, 그럴수록 더 씩씩하게 살자’고 겨우 달래 놓으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나와서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하고, 또 달래 놓으면 윤준병 의원이 사필귀정이라는 둥 뭐라 하고, 또 달래 놓으면 진혜원 검사가 꽃뱀이 어쩌고 뭐라 하고, 김주명(전 서울시장 비서실장), 오성규, 민경국, 김민웅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또 한마디씩 황당한 소리를 하는 상황이 되풀이 되면서 우리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졌다”고 썼다. A씨 어머니는 이어 “이제는 인터넷에 실명과 실물 사진, 동영상까지 유포하며 온갖 수단으로 피해자를 공격하고 있다”면서 “죽음으로 모든 책임을 회피한 그의 명예만 소중하고 밝은 미래를 향해 꿈을 키워온 작고 작은 피해자의 명예는 이렇게 더럽혀져도 되는 것이냐”고 했다.

A씨 동생은 “박 전 시장의 장례식 후 어떤 기관장은 누나에게 살의를 느낀다고 했다. 누나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임시 거처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면서 “누나가 바라는 것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과 2차 가해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 일상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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