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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깎은 머리로 ‘끝나지 않은 야구의 꿈’ 꾸는 아버지와 아들 [동행 인터뷰]

글자크기

김성근·김정준 부자의 ‘40년 만의 외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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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준 SBS스포츠 해설위원(왼쪽)이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고 있는 아버지 김성근 소프트뱅크 코치 고문을 바라보고 있다. 안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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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복귀 앞둔 김 고문 위해
김 위원이 미용실 동행 ‘이벤트’

아들도 그때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 동네 이발소에 가본 적은 있다”고 했다. “그땐 아마 그랬지”라고 기억을 더듬던 아버지는 “아무튼 아들이 날 데리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웃었다.

지난 13일 낮 강남구 청담동의 한 미용실. 아버지 김성근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코치 고문(79)과 아들 김정준 SBS스포츠 해설위원(51)은 나란히 미용실 대형 거울 앞에 앉았다. 김성근 고문이 일본 출국을 하루 앞두고 이발할 곳을 찾지 못하자 김정준 위원이 나서 마련한 작은 이벤트였다.

■ 만나지 못한 성수동 이발사

이발 목적의 동반 외출은 어림잡아 40년 만이다. 김성근 고문은 서울 성수동 자택에 머물 때면 인근 대중목욕탕 이발소를 이용하곤 했다. 단골 목욕탕의 이발사를 통해 동네 소식을 전해듣는 것은 하나의 재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한 시즌을 마치고 지난달 3일 귀국 뒤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김 고문의 일상에도 제동이 걸렸다. 대중목욕탕을 찾는 것조차 망설여야 했다. 이에 출국을 앞두고 머리조차 다듬지 못하고 주저하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손을 내밀었다.

김정준 위원이 작정하고 아버지와 동행한 곳은 멋쟁이들이 많은 ‘프리미엄 미용실’이었다.

짧은 헤어스타일만 고집하는 김성근 고문이 먼저 머리 손질을 마쳤다. 김정준 위원이 머리 손질을 마무리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김성근 고문이 “이런 데는 (커트값이) 얼마나 하나”라며 슬쩍 묻는다. 그러더니 거울 한번 보고는 “스타일이 깨끗해졌다”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사실 어느 유명 헤어디자이너가 손을 대더라도 스타일이 획기적으로 바뀔 일은 없었다. 김성근 고문은 1980년대 OB 사령탑 시절을 포함한 과거 사진 속에서도 거의 한결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다. 김 고문은 “사실 난 어딜 가도 늘 옆머리는 6㎜, 윗머리는 9㎜로 한다. 그게 제일 낫다”며 머리를 한번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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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자른 두 부자는 기념촬영 뒤 식사를 하면서 인터뷰하고 있다. 안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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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여든, 또 야구장으로 떠난다

여든 살 고령, 가족들 만류에도
소프트뱅크 합류 서두른 이유는
오사다하루 회장과의 신뢰 때문

김 고문 부자가 미용실을 나서기 전 얼마간 프런트 데스크가 살짝 요란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서로 카드를 내밀어 스태프 입장에서 어느 카드를 받아야 할지 잠시나마 곤란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스태프의 선택 이상으로 어려웠던 것은 김 고문의 일본행 결정이었다. 1942년생으로 올해 한국나이로 여든 살. 가족 모두 김 고문의 일본행을 말렸다.

그러나 김 고문은 예정했던 길에 다시 올랐다. 김 고문은 “집에서는 모두 가지 말라고 했지만 그런 차원에서 고민하고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3년 전 일본에 다시 가게 된 건 왕 회장(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의 제안 때문이었다. 내 입장에서 먼저 ‘이제 이만큼 했으니 됐다’, 하는 건 신뢰를 깨는 것”이라며 “지난 시즌을 마치면서 또 한 시즌 함께하는 게 기정사실화돼 있었다”고 전했다.

김 고문은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 문제 등으로 구단에서 입국을 2주가량 미뤄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지난 14일 주저없이 예약해뒀던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김 고문은 “여기 와서 자가격리 기간도 있었고, 약 40일은 거의 집에서 보냈다. 오랜만에 긴 시간 가족을 느끼는 시간이었지만, 답답함에 생각이 마비되는 감이 있었다. 캠프 합류를 늦췄다가는 흐름을 타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서둘러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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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자른 두 부자는 기념촬영 뒤 식사를 하면서 인터뷰하고 있다. 안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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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꿈꾸고 있는가

“야구 인생 후회 없나” 질문에
“끝없는 공부”라며 미래를 말해
“저변이 좁아 경쟁의식 떨어져”
안주하는 국내 스타들에 일침도

미용실 옆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성근 고문은 비빔밥, 김정준 위원은 미역국을 주문했다. 사실, 야구인생 성공과 풍파가 시리즈로 이어졌던 김 고문에게 정말 묻고 싶은, 기자의 질문 중 하나는 ‘지난 세월 중 딱 하나라도 후회되는 일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 고문은 그 질문을 받아들고는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갔다. 김 감독의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해 있었다.

김 고문은 “인생 자체가 끊없는 공부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며 “일본에서 매일 경기하면서 아직도 새로운 야구가 자꾸 들어온다. 아 그렇구나, 이렇구나, 할 때가 많다”고 했다. 김 고문은 또 “소프트뱅크에서는 야구단 조직이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새삼 느낀다. 야구를 잘 아는 왕 회장이 톱으로 있으니 조직이 웬만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결정과 실행이 일사천리”라며 “모든 게 야구 우선으로 돌아간다. 지난해 지바 롯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뒤에는 선수단이 주기적으로 무료 검사를 받아 위험요소를 줄였는데 선수 영입부터 그런 결정까지 머뭇거림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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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무엇으로 통했나

1군 타격 파트를 맡고 있는 김 고문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일본프로야구 개막이 늦춰지던 중 코칭스태프 미팅에서 분명한 의견을 낸 적이 있다. “단체훈련을 하기 어렵던 시기다. 코치들 사이에서 이리 가자, 저리 가자 의견이 있었는데,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훈련량을 유지하는 쪽을 얘기했다. 그때 감독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구도 기미야스 감독과 생각이 통했고 팀에는 긍정적 효과로 나타났다. 소프트뱅크는 지각 개막 속에서도 호성적을 냈다. 시즌 중 팀 페이스가 떨어질 때는 김 고문에게 자문을 구하는 일도 늘었다. 김 고문은 “연패에 빠졌을 때면 ‘김상 같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곤 했다. 그때는 ‘나 같으면 선수들 집합시켜 놓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겠다’, 그거 하나로 끝난다. 야단칠 때도 짧고 굵은 말 하나로 끝내는 게 좋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2018년 소프트뱅크 코칭스태프에 합류해 두 시즌 동안 2, 3군을 오간 뒤 지난해에는 1군에서 생활했다. 2021시즌도 1군에서 보낼 예정인 김 고문은 지난해 정규시즌 우승 확정일에 구도 감독과 포옹했다. 구도 감독은 김 고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2021시즌을 부탁했다.

■ 구자욱과 로하스

‘한·일 야구 차이’를 묻자 김 고문은 “확실히 얘기하자면 우리나라는 야구 인구가 적어 경쟁의식이 떨어진다”는 화두부터 던졌다.

“어린아이들 자체가 어느 정도 올라와 스타가 됐다 하면 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몇몇 선수 중 삼성 구자욱도 그렇다. 더 컸어야 할 선수다. 이게 본인 문제만은 아니다. 본인 의식이 있고 주위에서 선수 보는 의식도 있어야 하는데 그 정도에서 다 멈추고 만다. 야단치는 지도자가 안 보이는 것도 아쉽다.” 김 고문은 구자욱 이름을 댔다. 1군 첫해인 2015년 타율 0.349에 OPS 0.951을 기록한 구자욱은 이후로도 크게 치우침 없는 활약을 이어갔지만 큰 도약은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OPS는 0.863이었다. 김 고문은 밑에서 밀고 올라오는 선수층 자체가 엷은 것이 톱클래스 선수들이 안주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KBO리그 MVP 수상 뒤 일본프로야구 한신에 입단한 멜 로하스 주니어 등 일본으로 떠난 여러 전직 KBO리거들의 성공 여부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봤다.

“간단히 봐서 우리 투수 수준이 아직 낮다. 스피드 있고 컨트롤 있고 포크볼 등 변화구까지 있는 3박자 투수가 우리 리그에는 얼마나 있는가, 이 문제다. 3박자 투수의 수적 차이가 있다. 그게 관건 아니겠는가.”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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