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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옵티머스, 조폭 출신 무자본 M&A 세력 ‘공생관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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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피고인 공소장 살펴보니

중앙일보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이 굳게 닫혀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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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억원대 피해를 낸 ‘옵티머스 사태’의 주범 김재현(51·구속)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가 지난 2018년부터 조직폭력배가 연루된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과 공생 관계를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옵티머스는 펀드 자금을 무자본 M&A 세력에 공급하고, 이 세력은 다시 회삿돈을 빼돌려 펀드 돌려막기(환매) 자금으로 댔다. 검찰은 이 과정에 연루된 핵심 관계자 고모씨를 최근 소환 조사했고, 조만간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할 방침이다.

수사 착수 7개월이 지났지만 정·관계 로비 등 권력형 비리 의혹 수사에선 별 진척을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옵티머스 투자금이 무자본 M&A 자금으로 활용



21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옵티머스 사건 피고인들의 공소장에는 김 대표 일당의 행각이 상세히 드러나 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주민철 부장)는 지난해 11월 30일 김 대표와 무자본 M&A 세력의 먹잇감이었던 해덕파워웨이(해덕) 박모(구속) 전 대표, 명성티엔에스(명성) 오모(구속) 회장 등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한때 ‘히든챔피언’으로 선정된 우량 코스닥 상장 기업 해덕에 대한 기업사냥은 창업주가 2018년 4월 자신의 지분을 서울 대형병원 이모 원장에게 돌연 매각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이 원장 배후에는 조폭 양은이파 2인자에서 무자본 M&A 세력으로 변신한 박모 씨가 있었다. 그는 회사 인수 후 실질적인 '회장님' 행세를 하다가 2019년 5월 국제PJ파 부두목 조규석(62·구속)에게 30억원을 빌린 뒤 이자를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해됐다.

처음엔 김재현 대표가 2018년 8~10월 박씨와 그의 측근 고씨, 이 원장 등에게 해덕의 인수 자금 230억원을 조달해줬다. 투자자들이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돈이었다. 이들은 해덕과 그 자회사 등의 자금을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하도록 만들어 돌려막기 자금을 확보하고, 박씨가 또 다른 상장회사의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펀드가 대주는 공생관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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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서 폭력조직 국제PJ파의 부두목 조규석이 검거 돼 광역수사대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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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틀어지자 다시 최대주주 바꿔…펀드 자금 200억 또 투입



하지만 2018년 11월 거래소가 불성실공시법인이라며 해덕 주식거래를 정지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이들은 ‘플랜B’로 박 전 대표가 운영한 화성산업을 전면에 내세워 회사를 정상화하려 했다. 해덕의 주식 거래를 재개시킨 뒤 지분을 매각해 시세 차익을 남길 목적이었다.

2019년 2월 해덕의 최대주주는 이 원장에서 화성산업으로 바뀐다. 김 대표는 이때도 화성산업에 펀드 자금 200억원을 제공한다. 이 돈은 옵티머스의 페이퍼컴퍼니(SPC)인 대부디케이에이엠씨, 트러스트올, 셉틸리언을 거쳐 전달됐다. 트러스트올은 옵티머스 비자금의 저수지로 불린 회사로, 셉틸리언 이모(38) 전 청와대 행정관이 절반의 지분을 보유한 자금 세탁 창구용 회사였다. 이 자금의 일부인 133억원은 다시 트러스트올 계좌로 들어갔다. 투자금은 다시 회수되고 경영권은 넘어가는 전형적인 무자본 M&A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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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자산운용 펀드 사기와 관련해 옵티머스 측 로비스트 3인방 중 핵심으로 꼽히는 전 연예기획사 대표 신 모씨가 지난해 11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신씨는 구속된 로비스트 김모씨, 달아난 기모씨와 함께 옵티머스 이권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정관계 인사를 상대로 불법 로비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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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매 중단 직전 HLB로 매각 시도했던 옵티머스 일당



이들은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하기 두 달 전쯤인 지난해 4월 해덕을 코스닥 시가총액 3위 업체인 에이치엘비(HLB)에 매각하려 했다. 실제 HLB 관계자는 이들과의 협의 과정에서 화성산업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50억원 상당의 신주를 인수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 달 뒤 이 돈을 납입했다. 박 전 대표는 이 50억원을 수표로 인출해 김 대표에게 전달했고, 이 돈도 펀드 환매 자금으로 사용됐다.

진양곤 HLB 회장은 지난해 10월 “회사는 펀드의 피해자로, 개인 자격으로도 옵티머스 임직원 및 관계자와 인사를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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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8일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융정의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가 '옵티머스 부실 감독, 금감원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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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회장은 2018년 4월 당시 조폭 출신 박씨의 해덕 경영권 장악을 돕기 위해 자금조달책 역할을 했다. 오 회장과 박씨, 고씨는 해덕의 자회사인 세보테크 자금을 유용해 또 다른 코스닥 상장사와 명성을 인수하는 데 썼다.

검찰은 지난 18일 고씨를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고씨 역시 세보테크 회삿돈 횡령 등에 관여한 공범이라고 판단하고 조만간 기소할 방침이라고 한다.



자회삿돈 횡령 고씨도 곧 기소될 듯…“권력 수사 미적”



다만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확대된 이번 수사는 여전히 많은 의문점을 남긴다. 특히 검찰이 옵티머스 압수수색 등을 통해서 정·관계 로비 정황이 담긴 ‘펀드 하자 치유 관련’ 문건을 확보했지만 거론된 핵심 인사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초기부터 자금 흐름 추적과 함께 전방위적인 로비 의혹 수사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옵티머스 로비스트로 지목되는 기모씨 등은 지난해 11월 영장실질심사에 불출석한 뒤 잠적했다.

한 변호사는 “옵티머스 사태는 안정적인 수익을 미끼로 거액의 투자금을 모은 자산운용사 대표가 조폭 출신의 무자본 M&A 세력과 어울리며 펀드 투자자와 소액주주들에 막대한 피해를 준 최악의 금융 범죄로 기록될 것”이라며 “청와대가 이런 사건에 연루된 인사를 검증 과정에서 거르지 못한 점은 큰 문제인 만큼 정관계 로비 의혹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광우·정유진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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