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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밈(meme)으로 분석한 코로나 버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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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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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경제학 시즌2-47] 19세기 중국 청나라 여성들의 전족 사진을 보면 그들의 기형적인 발모양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지난 1000년간 '발이 작은 여성이 아름답다'는 인식이 중국인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여자 아이들의 발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도록 꽁꽁 싸매는 전족과 같은 풍습이 생겨났다. 전족이 유행하면서 여성들의 발은 기형적으로 변해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시각에서 기형적인 발을 예쁘다고 평가하는 전족은 수용하기 힘든 문화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공유하고 있는 문화나 생각들 가운데 후손들이 '전족'처럼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한 것들은 없을까? 아마도 '미(美)'에 대한 우리의 기준 가운데는 미래의 인류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혹은 200년이 지난 세대의 후손들은 21세기 보디빌딩대회와 입상자들의 몸을 보고 '멋있다' '아름답다'라며 감탄하는 지금 세태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보디빌더들이 몸을 만들기 위해 흘린 땀과 수고의 결과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그러나 적당히 작은 여성의 발은 매력적일 수 있지만 기형적인 발이 아름다울 수 없는 것과 같이, 지나치게 근육만 강조한 몸은 아름답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건강의 상징인 보디빌딩대회 우승자들의 몸은 역설적이게도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즉 의학적으로 이상적인 신체에 비해 보디빌더들의 몸은 체지방이 지나치게 적고 수분 함량도 부족한 상태다. 근육을 선명하게 보이기 위해 극단적으로 체지방을 줄이고, 수분함량을 감소시키는 식이요법과 체형관리는 오히려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남성의 체지방은 대략 12~18%이다. 그런데 보디빌딩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체지방은 5% 미만이다. 특별한 체질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 한 평범한 남성의 체지방이 5% 수준까지 떨어지는 상황은 건강에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을 때나 가능한 수치다. 실제로 대회를 앞두고 과도하게 체지방을 낮춘 보디빌더들은 면역력이 떨어져 평상시보다 쉽게 피로해지거나 질병에 노출된다고 한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체지방이 감소해 건강이 위태로운 몸을 보면서 육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사회적 관념들이나 문화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학자들은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이나 문화가 발생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전공이나 이론적 배경에 따라서 다양한 원인과 가설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가운데 '이기적인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제안한 '밈(meme)'의 개념은 시대정신과 문화가 형성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수전 블랙모어는 리처드 도킨스의 '밈(meme)' 개념을 이론적으로 보다 정교하게 정리하고 확장했다. 그녀는 생명체의 DNA와 같이 밈은 복제자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밈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의 생각을 모방하고, 유사한 생각들을 통합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론에 따르면 유전자가 자신과 같은 자손을 더 많이 복제하기 위해 숙주인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설계하듯이 밈도 자신과 같은 생각과 개념을 더 많이 복제하고 전파하기 위해 사람들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뇌 속에 있는 생각이나 문화와 같은 밈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뇌로 전파될 수 있도록 자신의 숙주인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를 조정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수전 블랙모어는 밈의 개념을 이용해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인간이 그들의 본성을 거스르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녀는 사람들은 주변 지인들을 돕고, 공동체에 헌신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이런 착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이 모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밈은 자신을 더 많이 복제하고 전파하도록 밈의 운반자인 인간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밈의 개념을 이용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저출산 현상의 저변에 있는 여러 동기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 과거에는 생물학적인 유전자와 밈은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즉 자식을 많이 낳을수록 같은 유전자를 더 많이 재생산할 수 있고, 자녀 교육을 통해 자신과 같은 가치관이나 문화를 전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생물학적인 계보를 따라 자손을 통해 수직적으로 생각이나 개념을 전수하는 것보다 인터넷이나 방송 등을 이용해 수평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생각이나 개념을 전파하는 것이 과거보다 수월해졌다. 오늘날 유능한 사람들은 자식 낳고, 양육하는 데 절대적인 시간을 투입하는 대신 글을 쓰거나 예술 작품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자신의 밈들을 전파하고 재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미디어 환경 때문인지 앞서 살펴본 저출산의 사례처럼 최근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인간에 대한 밈의 영향력이 유전자의 영향력을 압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밈의 영향력은 출산율 저하와 같은 사회 현상에 국한되지 않고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정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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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불황에 대응해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제로금리에 가까운 초저금리 정책을 펼치며, 경쟁적으로 유동성을 증가시켰다. 이 과정에서 여윳돈이 생긴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대량으로 금융시장에 유입됐다. 주식시장을 비롯해 자산시장 전반에 개인투자자들의 참여가 늘면서 전통적인 재무이론이나 펀더멘털을 기초로 한 투자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투자를 모방하거나 시장의 부침을 단기적으로 추종하는 투자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2020년 하반기에는 선진국 주요 증시의 종합주가지수가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생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고, 2018년 폭락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전년 대비 300% 이상 상승했다. 이처럼 지난해 금융시장의 과열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투자론 교과서의 이론들보다 수전 블랙모어의 밈 이론이 훨씬 더 설득력 있고 직관적이다. 특히 한국의 '동학개미', 미국의 '로빈후드'와 같은 개인투자자 그룹은 전문가들의 분석보다는 시장에 대한 기대와 자신들의 의견을 공유하고 확산하면서 주가 상승을 견인했다. 예탁결제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테슬라 주식을 3조6000억원 이상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개인투자자들 가운데 테슬라에 대한 구체적인 기업 정보를 분석하거나 전기차 산업에 관련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주식을 매입한 사례는 흔치 않을 것이다. 최근 테슬라 주식의 가격 상승은 아무리 보아도 탄탄한 이론적 배경이나 정교한 재무분석 결과를 근거로 한 예측보다는 코로나 종식 이후 급반등할 경기에 대한 기대감과 첨단 기술에 대한 다소 추상적인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한 중앙은행들의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법정화폐의 공급량이 급증하면서 가치 저장 수단으로 기존 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그 대안으로 비트코인이 다시 주목을 받아 가상화폐에 대한 기대와 공감대 형성이 가격 상승을 가속화하는 데 주요한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2018년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할 당시와 비교해 비트코인에 대한 근본적인 기술 수준과 결제 시스템으로서 가상화폐의 지위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같은 자산시장의 과열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수학적이고 기술적인 요인이 아닌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문화적 현상을 배경으로 설명하는 밈 이론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2019년 발간한 저서 'Narrative Economy(이야기 경제학)'를 통해 밈과 유사한 가설을 제안했다. 그는 정보의 진위 여부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다수가 그 이야기를 믿으면 이는 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실러 교수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 미국 부동산시장의 버블은 '부동산 가격은 결코 하락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입소문과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고, 강화되었다고 한다.

최근 국내외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과거 어떤 시기보다도 개인들이 운용하는 자금이 시장에서는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었다. 따라서 이제 금융시장에서 개인들의 기대 혹은 공포와 같은 심리적인 요인들이 시장에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력이 증가했다. 따라서 최근 자산시장의 추세는 과거 어떤 때보다 예측하기가 어려워졌고, 변동성 역시 크게 확대되었다. 최근 자산시장의 가격 변화는 모멘텀에 따른 장기적인 추세보다는 단기적이고 심리적인 요인에 더 직접적인 지배를 받고 있는 만큼 개인들은 투자 의사결정을 할 때 전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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