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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의사 처방전 들고 약국 아닌 용산 전자상가로…“이 게임 하루 3회씩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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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류준영의 속풀이 과학]디지털치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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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COVID-19) 장기화로 코로나 블루(Corona Blue)에 이은 ‘코로나 레드’(짜증·분노), ‘코로나 블랙’(암담함) 등의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 통제 불가능한 위기 상황에서 찾아오기 마련인 정서 반응들을 나타낸 합성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정신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자 20일 발표한 올해 업무계획에 ‘디지털 치료제’ 개발을 신규 사업으로 넣었다. 디지털 치료제는 데이터·인공지능(AI) 기반으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의 징후를 탐지하고 정신건강을 관리·치료하는 소프트웨어(SW)적 약물을 뜻한다.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 인터넷 게임, 가상·증강현실(VR·AR) 등이 치료 도구로 쓰인다. ‘심리 방역’을 목표로 한 디지털 치료제는 ‘또 하나의 신약’으로 통하며 전 세계로 확산 추세다. 최근 폐막한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도 관련 제품들이 출품돼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국내 제약·의료업계에서 디지털 치료제는 규제산업 분야에 해당 돼 아직 미개척 영역으로 남아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위기 맞은 사회보장체계 해결사=인슐린을 측정해 당뇨병을 예방하는 앱, VR를 이용한 공포증 치료 등이 최근 미디어를 통해 소개된 대표적 디지털 치료제다. 엄밀히 말하면 스마트폰에 수면장애를 관리하는 앱도 디지털 치료제에 해당한다. 이용자의 심박·호흡수, 나아가 특수장비를 통해 뇌 활동을 모니터링 한 EEG(뇌전도) 자료 등의 수면 데이터까지 수집·분석하게 되면 수면의 질을 개선할 적절한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다.

미국 디지털치료제산업협회(DTA)에 따르면 알약 등 화합물 치료제를 1세대, 항체 등 단백질을 이용한 생물학적 제제를 2세대 치료제라고 한다면, 3세대는 디지털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한 치료제로 분류한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한축인 디지털 치료제는 원격의료만큼 논쟁을 부르는 의료계 ‘핫’이슈다. 대학병원 정신과 한 의사는 “약 처방 대신 이런 게임을 스마트폰에 깔고 하루에 3번 이상 하라고 하면 환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지 상상이 안 된다”며 “특히, 전자기기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의 경우 처방을 제대로 활용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임상적 유효성 검증, 수가체계 도입 및 적정 수준, 기술적 특성에 맞는 규제 체계 정립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나 세계 각국은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공급해 초기 시장을 선점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유는 저출산·고령화 때문이다. 매년 건강보험을 비롯한 건보재정의 건전성 확보에 적색등이 들어오고 국가 사회보장체계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디지털 치료제는 해결사로 통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관계자는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디지털 치료제는 환자의 상태 변화를 정밀 관찰해 특정 질환에 대한 사전 예방·진단·치료가 가능한 데다 비용도 코딩 등 개발비 정도만 들어 일반 약물에 비해 현격히 낮다”며 “디지털 치료제가 국가 의료자원을 잘 배분하는 역할을 해 결론적으로 의료비 총액을 줄여 준다”고 설명했다. 관련한 예로 서울대 편웅범 교수 연구팀의 ‘디지털헬스의 주도적 지위에 관한 예측’ 자료를 보면 디지털 치료제는 개발기간과 비용이 각각 3.5~5년, 100억~200억 원인 반면 기존 신약은 15년에 평균 3조 원이 든다.

◇2017년 FDA 첫 승인…ADHD·약물 중독·불면증·암 환자 예후 등 적용분야 다양=지난해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환아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 ‘인데버 RX’ 게임을 의료기기로 승인했다. FDA 허가를 받은 최초의 게임 기반 치료제다. 태블릿을 좌우로 움직이며 장애물을 피하며 주어진 코스를 도는 식의 간단한 게임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치매, 알츠하이머, 뇌졸중 등 신약 개발이 쉽지 않은 중추신경계 질환, 금연, 약물중독, 우울증, 불면증,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자폐증 등 신경정신과 분야 등에서 치료 및 개선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첫 디지털 치료제는 미국 페어 테라퓨틱스사의 약물중독 치료 앱인 ‘리셋(reSET)’이다. 지난 2017년 9월 FDA 승인을 받았다. 알코올, 코카인, 대마 등 약물중독 환자에게 인지행동치료(CBT)를 제공한다. 2018년 12월엔 마약성 진통제 중독 치유하는 ‘리셋-오’, 지난해 3월엔 불면증에 효과가 있는 ‘솜리스트’ 등의 디지털 치료제가 FDA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선 디지털 헬스케어기업 라이프시맨틱스가 호흡기질환 환자를 위한 호흡재활 프로그램 ‘숨튼’, 암 환자의 예후 관리 프로그램 ‘레드필케어’ 등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5월 제정된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 등으로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토대가 생겼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서 디지털 치료제 인증·관리기준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관계자는 “디지털 치료제는 약물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환자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고, 만성질환과 신경정신과 질환 등 그동안 불충분했던 치료영역에 대한 의료수요를 디지털 치료제가 충족시켜줄 것”이라며 “디지털 치료제 관련 정부 과제를 지속 발굴해 다양한 제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류준영 기자 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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