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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정 총리 격노에 일단 "YES" 외쳤지만... 고민 깊은 '곳간지기' 기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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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총리, '법제화'에 반대기류 보인 기재부에 격노
기재부 "뜻 와전" 해명 속 제도 추진 의사
하지만 나라 곳간 사정 여의치 않아 고민 깊어
전문가 "한달 수십조 들 수도"
한국일보

정세균 국무총리가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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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자영업 손실보상제' 법제화를 내각에 공식 지시하자, 나라 곳간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번 법제화되면 쉽게 바꾸기 어려워 장기 재정 운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일회성인 재난지원금 지급처럼 덜컥 찬성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상 없는 영업제한은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보상 법제화에 대한 여론공감도 확산하고 있어 이를 무조건 반대만 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특히 내각 수반의 지시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여당은 물론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어, 기재부는 재정 출혈을 최소화하면서도 소상공인 피해를 합리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묘수'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한국일보

여당 발의 방역조치 손실보상 관련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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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총리 질타에 기재부도 “제도화 검토”


정세균 총리는 2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기재부를 향해 자영업 손실보상제에 대한 법적 제도개선을 지시했다. 전날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 어렵다"며 우회적 반대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제동을 건 것이다.

특히 정 총리는 당시 김 차관의 발언을 보고받고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총리는 한 방송에 출연해서도 "개혁 과정엔 항상 반대 세력, 저항 세력이 있지만 결국 사필귀정"이라며 기재부를 겨냥한 발언을 이어갔다.

내각을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기재부 때리기'에 나서자, 기재부는 바짝 엎드렸다. 발언 당사자인 김 차관도 '뜻이 와전됐다'며 하루종일 이를 해명하기 바빴다.

김 차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러 방안을 검토해 국회 논의에 충실히 임하겠다.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외 제도를 조사한 내용을 소개한 것인데 그렇게(반대한 것으로) 비춰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상세히 검토한 뒤 국회 논의에 임하겠다”고 밝히며 총리 지시를 따르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밝혔다.

한국일보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제26차 비상경제 중대본 회의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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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100조원 거론… 재정 부담에 고민


정 총리 공개 지시로 '소상공인 보상 법제화'를 일단 추진하기로 했지만, 나라 곳간 사정도 챙겨야 하는 기재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유례없는 확장재정 기조를 유지해온 상황에서 소상공인 피해 보상을 법제화하기까지 한다면 재정 출혈은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방역 기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전문가들은 소상공인 피해 보상을 위해선 매달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상 방식에 따라 100조원이 들어갈 것이라는 추산도 하고 있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최근 토론회에서 집합금지 업종 기준 매출액 감소분의 70%까지 보상을 해 주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민 의원의 제안대로는 매달 24조7,000억원씩 4개월간 98조8,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올해 예산(558조원)의 17.7%에 해당하는 규모로, 지난해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 규모 합(66조8,000억원) 보다도 32조원 많다. 소상공인뿐 아니라 여러 지원·보상 대상을 살펴봐야 할 기재부로서는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규모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재정으로 다 감당할 수 있다면 논란을 줄이는 측면에서 법제화 하는 게 좋지만 예산이 문제"라며 "만약 손실을 전액 보상해야 한다는 방식의 논의가 이뤄진다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제화 경직적? 근거 마련되면 안정성 보장


한번 법제화를 하면 그 기준을 쉽게 바꿀 수 없어 장기 재정 운영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도 기재부의 고민거리다. 또 법제화를 한다면 보상 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려 ‘급한 불’을 끄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신속하고 유연한 지원인데 법제화를 하면 예산을 탄력적으로 쓸 수 없다"며 "효과적인 지원이 되지 않으면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 교수도 "어디까지 지원을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법으로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장의 지원 이후에 사후 보상이 필요할 수 있는 만큼 법을 통해 근거를 마련해 놓을 필요성은 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재난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 있는 상황에서 지원이나 보상을 시스템화해 놓고, 이에 근거하면 안정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 =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세종 =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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