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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21세기의 키신저' 브레머 회장 “바이든, 한국에 美·中 선택 강요 않겠지만 더 큰 ‘안보협력’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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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석학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바이든 , 韓 지정학적 입장 잘 이해

美 주도 지역안보서 한국 역할 기대

주한미군 규모·분담금 등 재평가

동맹 강화하며 협상 마무리할 것

당장은 북한문제 신경 쓸 여력 없어

한국과 긴밀 협력 속 대응 나설 것

동맹국과 손잡고 중국 패권 견제

한·일관계, 협력 전환 촉구할 것

세계일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정부가 한국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국이 핵심적인 안보·경제 파트너 국가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정부는 바이든 정부와 중국에 미·중 갈등이 악화할수록 한국 기업이 미국과 중국에 새로 투자하기 어려워지고, 기존 투자 기업도 계속 남아 있기 힘들어진다는 점을 ‘조용하고 부드럽게’ 설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또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비교할 때 문재인정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한·미 간 협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이 바이든 정부 아래에서 한·미 양국 사이를 이간질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한국 정부가 북한에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제정치학계에서 ‘21세기의 키신저’라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글로벌 전략가인 이안 브레머(Ian Bremmer)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 창설자 겸 회장은 바이든 정부 출범이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진단하기 위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유라시아그룹은 미국 뉴욕에 본부가 있고 워싱턴·샌프란시스코, 영국 런던, 브라질 브라질리아·상파울루, 싱가포르, 일본 도쿄에 지부를 두고 있다. 세계 90개국에서 전문가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글로벌 싱크탱크 및 위기관리 컨설팅업체다.

브레머 회장은 국제정치학계에서 ‘제이커브’(J-Curve·국가의 개방성과 안정성 상관관계 이론), ‘국가자본주의’(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자본주의), ‘G제로’(미·중 양국이 G2가 아니고 국제질서를 선도하는 국가가 아예 없는 세계), ‘금융무기’(Weaponization of Finance·금융자산을 이용한 당근과 채찍의 대외정책), ‘피벗 국가’(Pivot State·특정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중심축을 유지하는 나라), ‘지정학적 침체’(Geopolitical recession·미국의 지도력 붕괴에 따른 지정학적 퇴보) 등의 개념과 이론을 정립한 학자다. 현재는 ‘세계데이터기구’(WDO) 창설을 주도하고 있다.

다음은 브레머 회장과의 일문일답.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정세 전망은.

“바이든 대통령이 어느 시점에 이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미 정상회담을 갖는 것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된 북·미 양국 간 실무협상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으면 김 위원장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대북 문제에 접근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한국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조속한 시일 내에 타결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한국 언론 기고문을 통해 ‘우리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무모한 협박으로 한국을 갈취하기보다 동아시아와 그 이상의 지역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국과 함께 설 것’이라고 밝혔었다. 바이든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비용을 한국이 어느 정도 부담하도록 요구할지 결정한 뒤 한국과의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하려 들 것이다.”

-주한미군 병력 규모와 임무에도 변화가 있을 것인가.

“바이든 정부가 주한미군 병력 주둔 규모에 관한 정확한 평가를 할 것으로 본다. 주한미군의 역할은 전략, 전술의 필요성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렇지만 바이든 정부가 주한미군의 규모, 임무 변화 등을 결정할 때 동맹국인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거칠 것으로 본다. 바이든 정부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한국과 중국 간 경제관계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에 대한 ‘집단 포위 전략’에 한국이 가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인가.

“그렇다. 바이든 정부가 한국에 미·중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대신에 한국이 지역안보 협력을 위해 더 크게 기여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와 함께 한국에 힘을 보태줄 수 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신남방정책’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경제·안보 협력관계를 구축하려면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트럼프 정부가 이미 한국의 이런 노력을 지원하기로 했고, 바이든 정부도 이런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의 공급망 체계에 구멍이 생기고, 해외 진출 제조 기업의 국내 복귀 현상을 뜻하는 ‘온쇼어링’의 필요성이 커졌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양국 간 갈등이 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국내 회귀를 부채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은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에서 코로나19가 상당히 창궐했을 것이라는 게 거의 확실한 분석이다. 북한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더 큰 경제난에 직면해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겪고 있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 해결을 위한 한국의 지원을 거부한 북한은 앞으로도 한국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차단, 경제 회복, 사회 분열 등 긴급한 국내 현안에 대응하는 게 급선무여서 단기적으로 보면 북한 문제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으로 도발할 것인가.

“김정은 정권이 상당 기간 도발을 자제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김 위원장이 경제난 극복 등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 위원장은 또한 바이든 정부가 공식 출범할 때까지 기다려 왔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상대적으로 조용한 시기를 보냈다고 해서 그가 가까운 장래에 새로운 도발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첨예한 미·중 대결 구도가 계속될 것인가.

“바이든 정부에서는 트럼프 정부 당시처럼 미·중 양국이 과도하게 대결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국제사회에서 미·중 경쟁 구도는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트럼프 전임 정부가 독자적으로 대중 강경 정책을 밀어붙였으나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동맹국들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 중국이 추구하는 경제·안보정책에 제동을 걸려고 할 것이다. 이때 바이든 정부가 생각하는 최우선 협력 대상 국가는 유럽연합(EU), 일본, 인도다. 그렇지만, 미국의 대중 포위전선 구축작업이 쉽게 이뤄질 수 없다. 중국은 지난해 호주를 압박했던 것처럼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보복을 할 것이고, 국제무대에서 미·중 간 신경전이 가열될 것이다.”

-바이든 정부,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동북아에서 한국의 역할은.

“한국은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차단하고,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한 나라이다. 한국은 K방역 모델을 동북아 지역 국가를 포함해 세계에 전파해 왔고, 한국의 이런 노력이 중단되면 안 될 것이다. 한국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스트레스를 통제하면서 경제 재활성화와 재정비를 위한 변화를 시도하는 노력이 세계 각국에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일관계는.

“한국과 일본이 첨예한 대립 관계를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바이든 정부는 한국과 일본에 대결보다 협력을 종용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이나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타협을 해도 국내 정치적으로 얻을 것이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한·일관계는 내년에 문 대통령 정부가 끝나고,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야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브레머 회장은… ●미 툴레인대 졸업 ●스탠퍼드대 정치학 석사 및 박사 ●후버연구소 연구원 ●컬럼비아대 및 뉴욕대 교수 ●‘내셔널 인터레스트’ 편집장, ‘타임’ 편집위원 ●글로벌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 창설자 및 회장 ●월스트리트의 ‘글로벌정치위험지수’(GPRI) 개발 ●G제로 미디어그룹 CEO ●G제로, J-커브 등 국제정치 이론 정립 ●저서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우리와 그들’ (Us vs. Them) 등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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