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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벌써 15년' 故코비 브라이언트, 전설로 남은 불멸의 '한 경기 81득점' [서정환의 사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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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서정환 기자] 고인이 된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가 경이적인 한 경기 81득점 달성한지 정확하게 15년이 지났다.

브라이언트는 지난 2006년 1월 23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벌어진 토론토 랩터스와의 홈경기서 무려 한 경기 81득점을 달성했다. 브라이언트의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레이커스가 122-104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81점은 윌트 채임벌린의 100득점에 이어 NBA 역대 한 경기 최다득점 2위에 해당되는 무시무시한 대기록으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경기장에 있던 1만 8997명의 관중들은 모두 역사의 산증인이 됐다. 코비가 지난해 1월 헬기사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대기록이 다시 한 번 조명을 받고 있다.

81점은 레이커스의 종전 구단 기록인 엘진 베일러의 71점을 뛰어넘는 신기록이다. 또한 1979년 NBA에 3점슛 제도가 도입된 이후 NBA 한 경기 최다득점이다. 브라이언트는 마이클 조던의 생애최다 69점 , 데이비드 로빈슨이 94년에 작성한 71점을 가뿐히 뛰어넘으며 득점에 관한 전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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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또 봐도 믿기지 않는 81점

브라이언트는 2005년 12월 21일 댈러스 매버릭스전에서 3쿼터까지만 뛰고 종전 자신의 생애최다 62점을 퍼부었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자 필 잭슨 감독은 브라이언트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당시만 해도 브라이언트 원맨팀이었던 레이커스에서 그를 무리시킬 이유가 없었다. 브라이언트는 “오늘 절 막을 수 있는 것은 감독님 뿐이군요”라고 농담을 하면서 기록에 개의치 않았다. 경기 후 브라이언트는 “4쿼터까지 뛰었다면 80점까지는 가능했다”고 말했다. 브라이언트가 62점을 넣는 것을 보고도 다들 웃어넘겼다. 현대농구에서 80득점은 절대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불과 한 달 뒤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말을 현실로 옮겼다. 당시 레이커스의 베스트5는 브라이언트, 크리스 밈, 라마 오돔, 콰미 브라운, 스무시 파커였다. 토론토에서는 크리스 보쉬와 호세 칼데론이 뛰고 있었다.

경기가 접전으로 흘러가면서 계속 공이 브라이언트에게 갔다. 토론토가 이중 삼중으로 그를 에워쌌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날 브라이언트는 무려 46개의 야투를 시도해 28개를 적중시켰다. 3점슛은 13개 중 7개를 넣었다. 20개의 자유투를 얻었는데 실패는 단 두 개 뿐이었다. 득점에 집착해 슛만 던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42분을 뛰면서 6리바운드, 2어시스트, 3스틸, 1블록슛을 하면서 턴오버는 3개만 범했다. 원맨팀인 레이커스를 이기도록 하기 위해 혼자 슈퍼맨으로 변신한 결과물이 81득점이었다.

경기 후 브라이언트는 8번 유니폼을 내보이며 환호했다. 마침 브라이언트와 새로운 계약을 맺고 첫 시그내쳐 농구화 ‘코비 시리즈’를 선보였던 나이키는 이 장면을 광고로 활용했다. ‘몇 점 까지 넣나 한 번 보자!’는 심정으로 그를 막던 토론토 선수들도 나중에는 존경의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만큼 농구역사에 영원히 남을 명장면이었다.

브라이언트는 “홈팬들 앞에서 하나의 멋진 쇼를 펼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굉장히 기분이 좋다. 득점을 하리라 결심하고 코트에 나섰다. 내가 오늘 한 득점은 팀에 꼭 필요했던 득점이었다. 하지만 그 득점도 결국 승리를 위한 수단이다. 승리했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팀 승리에 더욱 의미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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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잭슨 감독도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정말 특별한 광경이었다. 정말 다른 세계의 수준이었다. 정말 인상적인 경기였다. 생전에 그런 경기를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기록의 희생양이 된 샘 미첼 토론토 감독도 놀랍기는 마찬가지. 그는 “코비에게 가장 놀라운 점은 끝날 때까지 냉혹하게 우리를 몰아붙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맨투맨 , 박스원 , 지역 방어 등을 써봤고, 작은 선수들을 총동원해 코비에게 볼이 가지 않도록 막았다. 심지어 나는 코비가 62점을 넣는 경기도 봤었다. 더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며 황당한 심정을 토로했다.

전세계 농구팬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웹사이트에 ‘코비 81득점’ 뉴스가 뜨자 다들 인터넷 오류나 만우절 장난으로 생각했을 정도였다. 나중에 정식 기록지를 확인하고,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도 잘 믿음이 가지 않았다.

기자도 추억이 있다. 브라이언트가 81점을 넣은 경기는 국내에 생방송이 없었다. 리그패스도 없던 시절이라 경기를 생방송으로 볼 방법이 없었다. 같은 날 추억의 시애틀 슈퍼소닉스는 피닉스 선즈를 2차 연장 끝에 152-149로 제압한 경기는 국내에 방송이 됐다. 레이 앨런이 2차 연장전에서 장거리 버저비터 3점슛을 넣으며 42점을 폭발시킨 명경기였다. 기자는 당시 이 경기를 보고 기사를 썼다.

그런데 브라이언트가 81점을 넣으면서 앨런의 경기는 완전히 묻혔다. 기자도 부랴부랴 브라이언트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포털사이트 기사에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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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사고로 고인이 된 '코비'

등번호를 24번으로 바꿔 달고 10년을 더 뛴 브라이언트는 5번의 NBA 우승, 통산 3만 3643점으로 NBA 4위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대기록을 남기고 2016년 은퇴했다. 첫 3연패시절 샤킬 오닐에 가렸던 브라이언트는 오닐과 떨어진 뒤 레이커스에게 두 번의 우승을 더 안기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브라이언트는 2009년과 2010년 연속으로 파이널 MVP를 수상해 오닐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2016년 토론토에서 열린 올스타전은 브라이언트의 마지막 올스타전으로 꾸며졌다. 81득점 10주년을 맞은 브라이언트는 “전날에 페페로니 피자에 포도맛 소다를 먹고 잤다. 경기 전에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무릎도 매우 부은 상태였다. 그 상태로 나가서 뛰었다. 어떻게 81점을 넣을 수 있었는지 몇 번을 머릿속에서 다시 생각해봤다. 결론은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날은 그냥 신기한 밤이었다. 많은 득점을 넣었지만 설명은 불가능하다”고 회상에 잠겼다.

브라이언트는 마지막까지 대단했다. 그는 지난 2016년 4월 14일 유타 재즈와 홈경기에서 한 경기 60득점을 폭발시키며 팀의 101-96 대역전승을 이끌었다. 슈퍼스타의 마지막 경기답게 모든 것을 폭발시킨 명승부였다. 은퇴경기까지 그는 완벽하고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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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자는 한국기자 중 유일하게 현장취재를 했다. 전세계에서 천명이 넘는 취재진이 취재신청을 했다. NBA에서 코비 브라이언트 기사의 포트폴리오를 요구했고, 심사를 통과해 400명에게만 허락된 역사적인 경기의 취재증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스테이플스 센터 인근에 5만명이 넘는 팬들이 몰려 일대 교통이 마비됐다. 경기장에는 #thankyouKobe라는 해시태그가 붙었다. 그만큼 브라이언트는 레이커스팬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였다.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브라이언트에게 한국 팬들에게 인사를 부탁했다. 브라이언트는 "한국에 두 번 방문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지난 20년간 많은 해외팬들이 날 지지해줬다. 항상 특별했던 기억을 안겨준 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당시에는 은퇴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이 컸지만, 이후에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지난해 새해 첫 달부터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1월 27일 브라이언트와 딸 지아나 브라이언트가 헬기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케빈 가넷과 함께 90년대 중반 NBA에 고졸 슈퍼스타 바람을 몰고 온 브라이언트의 죽음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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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브라이언트가 코트를 떠났지만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처럼 농구팬들의 가슴에는 한 경기 81점을 넣었던 슈퍼맨으로 영원히 남아있다. 브라이언트의 초인적인 경기력과 밝은 미소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AFPBBNews = News1(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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