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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전설의 홈런왕 ‘행크 에런’ 86세로 잠들다... 바이든 대통령 “미국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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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우상 루스 넘어선 통산 755홈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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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로 세상을 떠난 메이저리그 전설적인 홈런타자 행크 에런.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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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홈런타자 행크 에런이 2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6세.

미 주요 언론들은 “에런이 애틀랜타 자택에서 현지시간으로 금요일 저녁에 사망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에런이 활약한 애틀랜타 구단에서도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전했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에런은 현역 시절 홈런으로 메이저리그 역사를 다시 쓴 최고의 타자다. 2007년 배리 본즈의 의해 그의 최다 홈런 755호 기록은 깨졌지만, 통산 최다 타점과 장타 기록은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1934년 앨라배마주 모빌의 8남매 가정에서 태어난 에런은 어린 시절 목화농장에서 일해야 할 정도로 집안 사정이 좋지 못했다. 야구 장비가 없어 막대기와 병마개로 홀로 타격 연습을 해야만 했다. 배트 그립도 야구를 정식 배우지 못한 탓에, 오른손 타자임에도 왼손이 오른손보다 위에 쥐는 잘못된 방식으로 스윙했다. 그는 “특별한 재능은 없었고, 훈련을 통해 얻은 손목과 팔은 남보다 강했다. 훈련으로 23년간 꾸준히 선수생활을 해 홈런왕이 된 것”이라고 과거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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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간) 애틀랜타 홈구장 트루이스트파크 앞에 마련된 행크 에런 추모 공간에 직원이 헌화하고 있다. 애틀랜타=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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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런은 니그로리그의 마이너리그 구단을 거쳐 1952년 당시 보스턴 브레이브스와 계약하며 프로무대에 데뷔했다. 소속팀이 밀워키로 옮긴 직후인 1954년에 20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후 그의 활약은 눈이 부셨다. 이듬해 첫 올스타에 선정됐고, 1956년 내셔널리그(NL) 타격왕, 1957년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57년에는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넘어서 우승을 차지한 해이기도 하다.

그는 1976년까지 현역생활을 하면서 MVP와 홈런왕을 각각 4회 차지했고, 타격왕 2회, 타점 1위 4회, 올스타 25차례 선정, 외야수부문 골든글러브 3차례 수상 등을 타자로서 최고의 기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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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 행크 에런.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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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에런이 세운 통산 755홈런은 백인들의 우상인 베이브 루스가 보유한 최다 홈런 기록(714개)을 뛰어넘는 신기록이다. 2007년 배리 본즈(762개)에게 홈런 1위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약물에 의존한 본즈보다 약물 없는 시대에 장타를 쏟아낸 에런을 최고 홈런타자로 기억하는 팬이 많다.

루스의 기록을 넘어서던 당시 에런은 극심한 인종차별 모욕과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에 1개 부족한 761개로 정규시즌을 시작한 1974년 “루스 기록을 절대 못 깰 것이다”, “백인은 흑인보다 우월하다”, “은퇴하지 않으면 살해하겠다” 등의 협박에 시달려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만 했다. MLB닷컴은 “당시 더그아웃에서 애런 옆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총을 맞을 수 있으니까라는 농담이 들릴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거침없이 배트를 휘둘렀고, 마침내 74년 4월 8일 LA 다저스를 상대로 4회 투런 아치를 쏘며 715번째 홈런을 만들어냈다. 당시 불멸의 기록이었던 루스의 통산 홈런 714개를 넘어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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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크 에런이 1974년 4월8일 베이브 루스의 종전 통산 최다홈런 기록을 넘어서는 715호 홈런을 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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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런이 이렇게 인종차별에 맞선데에는 브레이브스가 1966년 애틀랜타로 홈구장을 이전한 영향도 있다. 당시 애틀랜타는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이 활동한 인권운동의 중심지였다. 에런은 “킹 목사와 앤디 영 등이 애틀랜타에 있다는 것을 알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등을 고민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에런은 1976년 7월20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딕 드래고에게 자신의 755번째이자 마지막 홈런을 장식한 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통산 3,298경기 타율 0.305, 755홈런, 3771안타, 2297타점, 2174득점 등의 기록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홈런 2위, 안타 3위, 타점 1위, 득점 공동 4위다. 그는 1982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2002년 대통령 ‘자유의 메달’ 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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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크 에런이 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모어하우스 의대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애틀랜타=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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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올해 1월5일 흑인 사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앤드루 영 전 유엔 대사 등과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공개적으로 맞기도 했다. 흑인들은 과거 정부가 진행한 비윤리적인 인체 실험 영향으로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에런은 백신 접종을 마친 후 “(백신 접종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이런 일을 한 나 자신이 매우 자랑스럽다. 이 나라의 수백만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작은 일이라고 본다”고 인터뷰를 했다.

에런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에런이 베이스를 돌 때, 기록만 좇지 않았다. 편견의 벽을 깨는 게 우리가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줬다”며 “에런은 미국의 영웅이었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애도를 표했다.

본즈는 “경기장 안팎에서 매우 존경할만한 분이었다.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우리에게 가르쳐 준 모든 것을 잊지 않겠다. 아프리칸 아메리칸 선수들은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꿈을 꿀 수 있었다. 당신이 그리울 것이다”고 추모했다. 현역 최고의 타자 마이크 트라웃(LA에인절스)은 “우리는 오늘 전설을 잃었다. 에런을 보며 경기장 안팎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모든 부문에서 최상위권에 오른 대단한 선수다. 기록상으로도 대단하지만 그의 인성과 진실성은 더 대단했다”며 “에런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가 동경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야구 역사에서 늘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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