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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시시콜콜] 허경영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정책은 갖다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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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공영제 들고 서울시장 선거 출마한 허경영
기본소득·출생수당 등 15대 대선 때부터 제시
"허경영은 호기심 대상 그 이상 아냐" 비판도
한국일보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가혁명당 중앙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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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트라다무스(노스트라다무스+허경영)인가 인기에 목마른 관종인가.'

굵직한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해 화제를 몰고 다니는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표가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허 대표의 출마 이력은 화려한데요. 1997년 15대 대선과 2007년 17대 대선에 도전했죠. 또 2020년 21대 총선 때 신당을 창당해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국회 입성을 노렸습니다.

허 대표의 출마가 이슈가 되는 건 자신의 IQ가 430이고 공중 부양과 축지법을 쓸 수 있다고 외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허 대표는 자신이 인간은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늘 다소 황당해 보이기까지 한 선거 공약을 쏟아내 대중의 관심을 모았죠.

이번 서울시장 보궐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허 대표는 국가가 연애·결혼·출산을 일정 부분 책임지는 '3대 공영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요. 정부 부처로 '결혼부'를 신설해 미혼 남녀에게 다달이 20만원의 연애 수당을 지급하고, 결혼하는 신혼 부부에게 총 3억원에 이르는 자금 지원을, 아이를 낳으면 5,000만원의 출생 수당을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미묘한 온도 차가 느껴집니다. 대중이 그를 단지 비웃지만은 않기 때문인데요. 오히려 재평가해야 한다며 그를 치켜세우는 목소리가까지 나옵니다.

허 대표가 과거 선거에서 들고 나온 공약들이 몇 년이 지난 뒤 여의도 정치권에서도 실제 이슈가 되면서 그가 시대를 앞서 보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공약들이었지만, 10여년이 흘러 정치권이 그의 주장과 비슷한 내용을 정책으로 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난지원금 논의 앞서 기본소득 주장

한국일보

지난해 3월 5일 허경영(가운데) 국가혁명배당금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예비후보자 등록 1,000명 돌파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당원, 지지자와 인사나누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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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이 논의된 시기에 정치권에선 기본소득 문제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죠. 허 대표 역시 비슷한 시기에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꺼냈습니다.

그가 지난해 4·15총선 때 만든 당의 이름은 '국가혁명배당금당'입니다. 기업이 영업 이익을 내면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주는 것처럼 국가가 국민들에게 일정 금액을 배당하자는 정책을 만들겠다며 만들었습니다. 기본 소득과 같은 맥락이죠.

허 대표는 21대 총선이 달아오르기 전인 2019년 9월 '세 가지 150 정책'을 냈는데요. 국회 150석 확보, 배당금당 당비 납부 당원 150명으로 제한과 함께 전 국민에게 매달 15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허 대표와 같은 시기 창당해 국회로 들어온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은 기본소득 도입을 목표로 치열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허 대표의 공약이 몇 년 뒤 제도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 결혼과 연애,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 등 이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담겨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허 대표가 이전에 제시한 공약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내놓은 것일까요, '아니면 말고'식으로 일단 표만 노리겠다는 포퓰리즘이었을까요. 허 대표가 선거 때 어떤 공약을 들고 나왔고, 정치권에선 실제 어떻게 다뤄졌는지 살펴보죠.

10년 뒤 '출산주도성장' 외친 김성태

한국일보

2018년 9월 5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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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대표가 지난 총선이나 이번 보궐선거에 낸 공약들은 사실 15·17대 대선 때 본인이 내놓은 것들과 대동소이합니다. 두 번의 대선을 치르면서 만든 공약을 보면 산삼뉴딜정책출생 장려금 지급, 결혼수당 지급,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이 있습니다.

이번 3대 공영제는 과거 대선 때 내놓은 결혼 수당과 출생 장려금 지급을 조금 더 다듬고 보완한 것으로 볼 수 있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 주장들은 10년 뒤쯤 정치권에선 논쟁을 벌였고, 어느새 현실이 됐습니다.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18년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하며, 대안으로 '출산주도성장론'을 주장했습니다.

출생 장려금으로 2,000만원을 주고 아이가 성년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1억원의 지원금을 지급하자는 내용이었는데요.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허 대표가 17대 대선 때 제시한 출생 수당과 비슷합니다. 성장 과정에 들어가는 돈을 국가가 지원하자는 내용 역시 허 대표의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김 전 원내대표는 당시 발언으로 "여성을 인간이 아닌 아이를 낳는 출산 기계로 생각하느냐"며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국당에선 김 전 원내대표에 앞서 더 큰 금액을 제시한 인사도 있었죠.

"출생수당, 통 크게 1억원 주자"는 주장도 나와

한국일보

2012년 12월 3일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가 서울 공평동 진심캠프에서 열린 해단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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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선 2018년도 예산안을 논의했는데요. 예결위원이었던 김기선 전 한국당 의원이 이 자리에서 아동수당을 줄 바에 차라리 통 크게 출생 영아 1인당 1억원을 지급하자고 제안했죠.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김동연 전 부총리는 이 말을 듣고 "제가 잘 못 들었나요. 1억원을 주자고 그러셨나요"라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최근 한 지방자치단체는 최대 5,150만원에 이르는 출생 장려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는데요. 이상천 제천시장은 이달 초 출생 장려를 위해 충북 제천시에서 아이 세 명을 낳을 경우 은행 대출 5,150만원까지 탕감해 주는 지원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장은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하는 이유에 대해 "출생 장려 정책은 2016년부터 썼지만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 더 임팩트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습니다.

허 대표가 2007년에 주장했던 '국회의원 100명으로 축소' 역시 5년 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제안으로 정치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당시 무소속으로 대선을 뛰었던 안 후보는 2012년 10월 23일 한 대학 강연에서 정치개혁 방안으로 국회의원 정원 100명 축소와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를 제안했습니다. 다만 현실성이 떨어지고 정치 개혁을 외쳤던 학자와 시민단체의 의견과 정반대의 주장을 펼쳐 오히려 뭇매를 맞았습니다.

"허경영의 정책은 다른 나라서도 많이 하는 것들"

한국일보

지난해 3월 24일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 대표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비례 위성정당 위헌·위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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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대표가 말했을 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제도 정치권에서 인지도 높은 정치인이 말하면 논쟁으로 이어졌죠. 10여년 전 허 대표가 제시한 내용 중 일부는 세월이 흘러 현실이 되다 보니 대중은 신기하게 바라보게 되고요. 일부는 이를 '허경영 현상'이란 말까지 붙여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허 대표의 주장이 시간이 지나 실현됐다고 해서 이에 의미를 두거나 그의 주장을 비판없이 다루는 것에 경계합니다. 자칫 정치 혐오나 불신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허 대표는 대부분 재원 조달 방안이나 구체적 실현 계획에서는 설명이 부족한 채 여론 환기용으로 '툭' 던지는 경우가 많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모든 정책은 해당 시기는 물론 앞뒤 흐름, 사회 상황까지 고려해 다뤄지게 된다"며 "돈을 나눠주는 것도 시기와 상황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 "(허 대표가 제시한 내용 중에는) 국내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도 시행하는 정책들도 있다"면서 "허 대표의 전리품이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설 교수는 그러면서 "민주주의에서 하나의 정책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보면 사회·경제적 조건과 국민의 요구가 맞물려야 하며 이해 관계자 사이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결정된다"며 "(허 대표의 주장을) 비판없이 그대로 다루면 이러한 과정을 무시하게 되고 민주주의 자체를 허무주의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과 교수는 "특이한 발언을 하게 되니 대중이 단순하게 호기심을 갖는 정도"라며 "배당금당은 지난 총선 때 가장 많은 후보를 냈지만 의미 있는 득표율을 얻지 못했다는 점도 대중이 그(허경영)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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