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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인터뷰킹의 유머와 경청…마돈나·푸틴도 무장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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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25년 간판, 5만 회 인터뷰

미국 현직 대통령 모두 거쳐가

‘준비는 조금만, 질문은 간단히’

김정일 인터뷰 꿈 이루지 못해



래리 킹 193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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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킹의 족적. 그가 1985~2010년 CNN ‘래리 킹 라이브’ 를 진행하며 인터뷰한 인물들. 1995년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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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마돈나부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까지.

23일(현지시간) 88세로 세상을 떠난 미국 방송인 래리 킹이 인터뷰한 ‘거대한 빙산의 일각’이다. 킹은 전 세계 정·재계 인사는 물론 대중문화 분야의 유명 인사와 진행한 인터뷰가 5만 회 이상이다. 그가 CNN에서 1985년 6월 3일부터 2010년 12월 16일까지 사반세기 동안 진행했던 ‘래리 킹 라이브’에는 미국의 현직 대통령 전원이 출연했다. ‘킹’이라는 이름 그대로 토크쇼의 제왕이었다. 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투병하다 이날 눈을 감았다.

9세 때 아버지 숨져 … 대학 진학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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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킹의 족적. 그가 1985~2010년 CNN ‘래리 킹 라이브’ 를 진행하며 인터뷰한 인물들. 99년 가수 겸 배우 마돈나.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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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음이 들리자 전 세계에서 애도 메시지가 쇄도했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래리와 20회 이상 인터뷰하며 항상 그의 유머 감각과 인간에 대한 진지한 관심 덕분에 즐거웠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푸틴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킹은 진정한 프로였다”고 애도했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페이스북에 “당신과의 인터뷰는 항상 선물과 같았다”는 글을 올렸다. CNN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는 “거인이자 달인인 킹의 쇼엔 누구나 출연하고 싶어 했다”며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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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킹의 족적. 그가 1985~2010년 CNN ‘래리 킹 라이브’ 를 진행하며 인터뷰한 인물들. 99년 코미디언 제리 루이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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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은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꿈을 잃지 않았다. 1933년 유대계 이민자 부모 밑에서 뉴욕 브루클린에서 로런스 하비 자이거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9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를 도우며 살았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라디오 업계에서 일하는 꿈을 키웠다. 75년 CBS방송의 플로리다지국에서 일자리를 얻었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3년 뒤 쇼 진행자로서 마이크를 잡았다. 당시 상사가 그의 본명인 ‘자이거’를 두고 “특정 인종을 떠올리게 한다”며 ‘래리 킹’이란 예명을 지어줬다. 그는 자서전에서 “책상 위에 펼쳐진 신문에서 ‘킹 주류회사’ 광고를 보고 ‘이거 좋네’라며 이름을 바꿔줬다”고 회고했다. 킹의 쇼는 곧 미국 전역에 방송됐고 80년 개국한 CNN의 테드 터너 사장이 그를 스카우트했다. 그 뒤 멜빵바지 차림의 킹이 등장하는 토크쇼는 CNN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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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킹의 족적. 그가 1985~2010년 CNN ‘래리 킹 라이브’ 를 진행하며 인터뷰한 인물들. 부동산 개발업자 도널드 트럼프.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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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은 생전에 인터뷰 잘하는 비결을 세 가지 들었다. “인터뷰 대상자의 말을 경청할 것” “준비를 너무 많이 하지 말 것” “질문은 간단히 하되, 답변을 보고 바로 후속 질문을 할 것”이다. 중앙일보의 고(故) 김영희 대기자와의 2011년 인터뷰에서 “비결은 ‘나(I)’라는 말을 쓰지 않고, 준비를 지나치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기자는 “권위주의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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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킹의 족적. 그가 1985~2010년 CNN ‘래리 킹 라이브’ 를 진행하며 인터뷰한 인물들. 2000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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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이 중시한 건 경청이다. 그는 가디언과의 2014년 인터뷰에서 “나는 내 인터뷰 대상자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내가 그들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며 훈계를 하지 않는다”며 “나는 ‘왜 그랬죠?’를 첫 질문으로 던지고 일단 하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백지상태에서 기초 질문부터 던지며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면 대부분의 인터뷰 대상자는 심리적으로 무장이 해제되면서 속마음을 털어놓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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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킹의 족적. 그가 1985~2010년 CNN ‘래리 킹 라이브’ 를 진행하며 인터뷰한 인물들. 2012 년 5월 풍자로 유명한 뉴욕 프라이어스 클럽에서 영화 아티스트에 나왔던 우기라는 개와 인터 뷰를 시도하는 코믹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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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뒤에 비로소 후속 질문을 쏟아낸다. 날카롭고 정곡을 찌르되 부드러운 유머를 첨가했다. 1999년 인터뷰에서 가수 마돈나가 “내 딸이 유부남과 사귄다면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을 것”이라고 말하자 킹은 답변이 끝나기도 전에 “그러는 당신은 유부남과 사귄 적이 없나”라고 대놓고 물었다. 수많은 염문설의 주인공이었던 마돈나를 향해 많은 이가 궁금해하던 질문을 던졌다. 마돈나는 “절대 없다”고 답했다.


‘인터뷰의 제왕’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었다.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와 2009년 했던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그를 만난 킹은 통역을 통해 “너무 오래 집권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부터 “당신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인가”를 과감하게 질문했지만, 카다피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글쎄” 등 성의 없는 단답형 대꾸만 했다. 킹은 이를 최악의 인터뷰라고 회상하며 “마약을 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여덟 번 결혼, 코로나 못 이기고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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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킹의 족적. 그가 1985~2010년 CNN ‘래리 킹 라이브’ 를 진행하며 인터뷰한 인물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설치된 킹의 명판 앞에 23일 추모 꽃 다발이 놓였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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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킹이 가장 인터뷰하고 싶어 했던 인물의 한 사람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그는 2011년 6월 중앙일보 김 대기자에게 “김 위원장에게 ‘발전한 남한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가’를 (첫 질문으로) 묻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김 위원장은 그해 12월 숨졌다.

킹은 7명의 부인과 여덟 차례 결혼했으며 5명의 자녀를 뒀다. 지난해 여름 65세 아들이 심장마비로, 51세 딸이 폐암으로 숨졌다. 이들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킹은 지난 2일 코로나19 확진 뒤 입원치료를 받다가 그들의 곁으로 떠났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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