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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동거 커플도 가족으로 인정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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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다양한 형태 ‘법적 가족’ 확대키로… 민법 개정 등 ‘산넘어 산’

정부가 법적인 ‘가족’ 범위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기존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뿐 아니라, 비혼 동거인이나 가족처럼 서로 기대고 돌보면서 사는 친구, 노인 커플, 셰어하우스에서 가족처럼 사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이 각종 사회제도에서 차별받지 않게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을 24일 발표했다. 국가 가족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근간이 되는 이번 계획안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적용된다. 여가부가 이번 계획안을 현실로 반영하려면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 등 상위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법적 가족 개념을 확대하려면 사회적인 합의뿐 아니라 앞으로 추가로 들어갈 예산이나 부작용 등을 광범위하게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5년 안에 마무리하기 어렵고 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적 가족 개념 확대 추진

현행 민법 779조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규정하고 있다. 여가부는 이 조항을 삭제해 법적 가족 개념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을 검토할 계획이다. 민법뿐 아니라 건강가정기본법(건가법)상 가족 개념도 손본다. 건가법은 여가부 관할법으로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기본 단위’로 규정한다. 여가부는 2018년 12월 여기에 ‘사실혼’을 추가하려고 했지만, 20대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지 않아 무산됐다. 이번에는 아예 해당 조항을 삭제한다는 계획이다. 여가부는 건가법에 대해선 관계 부처 협의를 이미 끝냈고, 민법 개정은 앞으로 법무부 등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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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기존 ‘혼인한 부모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 가족 형태가 아닌 1인 가구, 동거인, 한 부모 가정, 비혼 출산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 데 주력해왔다. 미혼모, 미혼부에 대한 지원을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법적 가족의 개념 확대도 같은 취지다.

여가부 김민아 가족정책과장은 “민법과 건가법상 가족 개념이 확대된다고 해서 당장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혼인·혈연 관계 이외 가족을 차별하는 법·제도를 개정할 근거가 된다”면서 “혼인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어 다양한 형태 가족이 늘고 있는 만큼 이들이 차별받지 않게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 비혼 동거 등 기존 법 테두리에서 벗어난 가족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된 바는 없다. 단지 한집에 같이 사는 걸로는 부족하고 실제 가족처럼 생계를 함께하고 서로 돌보는지 따로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가족이 혈연이나 혼인으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인식은 높아지고 있다. 여가부가 작년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가족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더니 69.7%가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거주하고 생계를 공유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상속·의료·출산 등 차별도 개선”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동거인 등을 배제하는 다른 법령과 제도도 찾아내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면, 가족관계등록법상 출생신고는 ‘부모'가 하도록 되어 있다. 부모가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등 여러 이유로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들이 있는데 이를 위해 의료 기관이 출생 사실을 국가에 바로 통보하는 ‘출생 통보제’ 도입을 추진한다. 또, 현재 수술동의서는 민법상 주로 부양 의무가 있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만 서명하도록 하는데, 사실혼 관계나 동거인도 가능하도록 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인도 유산 상속 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여가부는 수십 년 함께 산 동거인일지라도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를 치를 수 없게 하는 장사법 역시 개선 과제로 보고 있다. 이 밖에도 혼인⋅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채 ‘가족’과 다름없이 사는 사람들이 돌봄, 출산·육아, 연금 등 각종 정부 서비스와 제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점도 개선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프랑스·독일 등 해외에서는 동거 커플에게도 부부가 받는 각종 국가 혜택을 주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서류 몇 가지만 내고 ‘팍스(PACS·시민연대협약)’라는 계약을 맺으면, 혼인 신고 없이도 동거인 간 상속이 가능하다. 세금과 보조금 등 혜택도 받는다. 여성계 관계자는 “우리 나라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선진국 수준으로 동거인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법적 혜택을 주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가족 개념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과거 가족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이 발의됐을 때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동성(同性) 혼인을 합법화하겠다는 거냐”는 반발 의견이 터져 나온 바 있다. 또 아파트 청약이나 각종 정부 수당 지급에서 다자녀·부모 봉양 혜택이 많기 때문에 이를 노린 ‘위장 가족’ 문제는 어떻게 대처할지도 고려해야 할 부작용 중 하나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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