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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리얼돌, 음란물 아닌 성기구" 대법 판결도 끝내지 못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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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세관에 적발된 리얼돌 [뉴스1]


‘리얼돌(real doll)’은 풍속을 해치는 물품(음란물)일까. 2019년 6월 대법원은 리얼돌을 음란물이 아닌 성기구로 정의한 고등법원 판결을 확정했지만, 리얼돌을 둘러싼 법적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성인용품 수입업체 A사는 지난해 1월 김포공항세관을 통해 성인용 여성 전신 인형인 ‘리얼돌(real doll)’을 수입하려 했지만 보류당했다. 관세법은 ‘풍속을 해치는 물품’을 수입ㆍ수출하지 못하게 하는데 리얼돌이 이에 해당한다는 세관 판단 때문이다.

A사는 서울행정법원에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A사 측은 “리얼돌은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볼 수 없어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덧붙여“기존 법원 판결에도 어긋나는 세관의 처분은 위법하다”라고 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박양준)는 A사 측 주장을 받아들여 김포공항세관장의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 비용은 세관이 부담하라는 판결을 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기존의 법원 판단과 맥락을 같이 하는 판결이다.



1년 반전 ‘기존 법원 판결’은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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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 사이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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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에서 A사 측이 언급한 ‘기존 법원 판결’은 2019년 6월 확정된 판결이다. 2017년 시작된 이 소송 역시 리얼돌 통관을 보류한 인천세관의 처분에 업체가 불복하며 시작됐다. 1심에선 인천세관이, 2심에서는 업체가 승소했다. 얼마 뒤 대법원은 2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이를 확정했다.

당시 1심과 2심은 리얼돌을 ‘음란물’로 볼 것인지 ‘성기구’로 볼 것인지에 대해 엇갈린 판단을 했다. 관세법에서 ‘풍속을 해치는’이란 표현은 대체로‘음란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은 어떤 물건이 음란한지 평가할 때 “단순히 저속하다는 느낌을 넘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ㆍ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등을 따진다.

1심은 “전체적 모습이 실제 사람 모습과 흡사하고, 특정 성적 부위는 실제 여성의 신체 부위와 비슷하게 형상화돼 있다”며 “리얼돌은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ㆍ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같은 리얼돌에 대해 “상당히 저속하고 문란한 느낌을 주는 정도지만 사람의 존엄성을 해치는 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리얼돌은 음란물이 아니라 성기구라는 관점이다. 2심은 “성기구는 개인의 은밀한 영역에서 사용된다는 점에서 성기구와 일반적인 음란물을 동일하게 규제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인용했다. 사생활에 국가가 깊숙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 판결에도 논란은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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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리얼돌 수입업체의 공지사항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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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리얼돌 수입을 둘러싼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2019년 관세청 국정감사에서도 리얼돌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김영문 관세청장은 리얼돌 통관 문제에 대해 “판결이 났으면 그와 유사한 물품은 통관이 허용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국민 정서가 많이 바뀌었기에 당분간 통관 금지를 유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 A사의 리얼돌 판매 홈페이지에는 이와 관련한 문의가 여러 건 있다. 수입 리얼돌 구매자들의 통관 절차 문의에 업체는 “세관이 억지 이유를 들며 통관을 막고 있다” “세관과 소송을 통해 통관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리얼돌 관련 법원 판결이 남성 편향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지영 교수는 논문 ‘리얼돌, 지배의 에로티시즘’을 통해 2심 법원과 대법원의 판단을 비판했다. 윤 교수는 “이 판결은 리얼돌의 사용 주체부터 리얼돌의 심리적ㆍ성적ㆍ사회적 순기능의 수혜자를 남성으로 한정해 논의했을 뿐, 정작 리얼돌이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심리적ㆍ물리적ㆍ성적 위해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oe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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