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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육군 병장 제대한 공기업 직원 “공익 출신보다 월급 적고 진급 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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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승진 심사를 앞둔 공기업 직원 이모(31)씨는 “올해 승진은 힘들 것 같고 내년 승진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군 복무 기간이 길면 호봉을 더 쳐주고 진급이 빠른데, 육군 병사로 21개월을 복무했기 때문에 2년간 군 생활을 한 공군이나 같은 기간 복무한 공익근무요원(현재의 사회복무요원) 출신 동기들보다 진급이 느리다는 것이다. 이씨는 “군 생활을 남들보다 편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소외받는 기분”이라며 “군 경력을 직장에서 꼭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납득할 만한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원 승진 자격을 따질 때 군(軍) 복무 기간을 반영해선 안 된다”는 기획재정부의 최근 공공기관 대상 지침으로 ‘군필자 역차별’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군필자 사이에서도 형평성 시비가 일고 있다. 340곳 공공기관의 90%는 군 복무 기간만큼 호봉을 높여주고, 이 가운데 일부는 진급을 위한 최소 근무기간에 군 복무 기간을 쳐준다. 이 가운데 진급 심사 때 혜택은 폐지하라는 게 기재부 지침이다.

군 복무를 마친 남성과 병역 의무가 없는 여성 사이의 이른바 ‘군 가산점’ 논란과 별개로, 병역의 의무를 다한 남성들 사이에서는 또다른 논란거리가 있다. 병역 종류별로 군 복무 기간이 다른데, 이 기간을 곧이곧대로 호봉과 진급 심사를 위한 경력에 반영하는 것은 군 경력을 인정해주는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공군·사회복무요원보다 승진·호봉승급 느린 육군·해병대 출신

이씨가 입영한 2011년초 당시 육군·해병대 병사의 복무기간은 1년9개월, 해군은 1년11개월, 공군과 사회복무요원은 각각 2년이었다. 따라서 이씨 같은 육군 출신이나 해병대 출신은 호봉 승급이 공군·사회복무요원 출신보다 3개월 늦고, 진급 심사 때 근무기간이 3개월 적은 것으로 인정받는다. 해병대 병장 출신 금융공기업의 한 대리(33)는 “다른 방식으로 병역의 의무를 다한 사람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복무 기간을 일률적으로 계산한 결과 동기들보다 급여가 적고 진급이 느리다는 것은 자존감의 문제”라고 헀다. 현재는 병역 기간이 줄어 복무 기간이 육군·해병대 1년6개월, 해군 1년8개월, 공군 1년 10개월, 사회복무요원 1년 9개월, 산업기능요원 1년 11개월이다. 여전히 육군·해병대보다 사회복무요원의 복무 기간이 3개월 길다.

◇복무기간 3개월 짧으면 승진 1년 늦어질 수도

군 복무 기간에 따른 승진 격차는 복무 기간 차이보다 크다. 승진 때 군 복무 기간을 계산하는 공공기관들은 1년이나 6개월에 한 번씩 승진 인사 발령을 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매년 1월과 7월 진급 인사를 단행한다. 따라서 군 복무 기간이 3개월 이상 차이가 날 경우 진급이 6개월 이상 늦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진급 심사에는 근무 연수뿐 아니라 직원의 업무 성과 등이 종합적으로 감안되기 때문에 복무 기간 차이가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업무역량에 대한 부서장 평가 등 다른 요인이 똑같다면 군 복무 방식에 따른 연차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산업은행의 경우 1년 단위로 진급 심사가 있기 때문에 3~4개월의 군 복무 기간 차이가 육군·해병대 직원의 진급 시기가 공군·사회복무요원보다 1년 이상 늦어질 수 있다. 대리 진급은 군 경력을 감안한 근무 연수를 고려해 월(月) 단위의 자동 진급이 이뤄진다. 이후 1년 단위로 하는 과장 진급은 대리 진급 시점을 기준으로 심사한다. 따라서 군 복무 기간이 3개월 짧으면 대리 진급이 3개월 늦어지고, 이 경우 과장 진급은 1년 늦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자동 진급인 대리 진급과 달리 과장 진급은 업무 성과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군 복무 기간이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했다.

◇공공기관 아닌 한국은행, 금감원 등은 ‘승진 가산점’ 없앨 의무 없어

기재부는 최근 공공기관 340곳에 보낸 ‘승진 시 남녀 차별 규정 정비’ 공문에서 “군 경력이 포함되는 호봉을 기준으로 승진 자격을 정하면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으니 각 기관은 관련 규정을 확인해 필요한 경우 조속히 정비해 달라”고 했다.

현행 제대군인지원법은 “제대 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군 복무 기간을 근무 경력에 포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은행 등 공공기관은 기재부 지침대로 이른바 ‘승진 가산점’을 없앨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군 복무 기간만큼 호봉을 많이 쳐주는 제도는 그대로 남는다. 호봉 가산제는 공공기관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등 중앙 부처 공무원들에게도 적용된다. 상대적으로 고된 군 생활을 한 육군·해병대 출신들이 동기들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이다.

다만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은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공공기관이 아니라 지침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일부 민간 회사들도 한국은행과 마찬가지로 군 복무 기간을 진급 심사에 반영하는 인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부의 규제 대상이 아니다.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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