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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레스토랑 간편식(RMR) 전성시대...코로나에 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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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에서 베트남 쌀국수 맛집으로 유명한 레호이 본점. 한때 줄서서 먹어야 하는 맛집으로 인기였지만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예년만큼 매출이 오르지 않았다. 막연히 시도해볼 생각만 했던 HMR(가정간편식) 제품 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6개월여 시행착오 끝에 지난해 10월 육수를 냉동해 제품화한 쌀국수를 내놨다. 문제는 판로. 여러 유통 채널을 타진해보다 제품을 영상으로 풀어내는 미디어커머스 플랫폼 ‘컨비니’를 알게 됐다. 컨비니는 레호이 육수 맛이 왜 다른 식당 육수 맛과 다른지 남다른 제조 과정을 자세히 영상에 담았다. 영상커머스가 나간 직후부터 주문이 쏟아졌다. 11월 첫 달만 2600인분, 12월에는 3000인분가량 주문이 밀려 들어왔다. 3000인분이면 식당 한 달 매출과 맞먹는 규모다. 그 덕에 레호이는 코로나19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집콕’ 등의 여파로 HMR 시장이 폭발 성장하고 있다. 덩달아 관련 시장도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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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R 덕에…유명맛집, 코로나에도 방긋

셰프의 맛 그대로…레디밀·메디밀 뜬다


5조원.

2022년 국내 가정간편식(HMR) 시장 규모 추정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2019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가정간편식 시장 규모는 2018년 3조2164억원이었다. 2022년에는 5조원을 돌파하며 더욱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미 시장이 성장세였는데 코로나 시국이 불을 붙였다. 애초 저가형 제품으로 출발했으나 최근에는 프리미엄 제품, 구독경제 등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통, 식품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 스타트업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어 우후죽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유명 호텔, 맛집 등 이른바 ‘이름값’이 있는 곳도 직접 제조하거나 식품 공장에 의뢰해 HMR을 만들어 직접 파는 식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유명 맛집 레시피로 가정간편식으로 만들었다는 뜻의, 이른바 ‘RMR(레스토랑간편식·Restaurant Meal Replacement)’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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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은 줄서야 맛볼 수 있는 서울 삼각지 맛집 ‘몽탄’이 지난해 여름 현대백화점과 손잡고 만든 우대갈비 세트는 완판 행진으로 RMR 성공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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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사례도 꽤 있다. 2018년 9월 워커힐호텔앤리조트가 내놓은 ‘명월관 갈비탕’과 ‘온달 육개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년 대비 판매량이 2배 이상 급증하는 등 효자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신세계조선호텔 중식당 ‘호경전’ 레시피로 만든 조선호텔 유니짜장, 삼선짬뽕도 지난해 8월에 선보인 후 100여일 만에 판매량 10만개를 돌파하면서 유통 채널을 쓱닷컴 새벽배송, 전국 이마트로 늘렸다.

3시간 가까이 줄서야 겨우 먹을 수 있다는 서울 삼각지 맛집 ‘몽탄’은 지난해 7월 현대백화점과 손잡고 새벽배송 서비스 ‘투홈’에 우대갈비 몽탄세트를 내놨다. 몽탄세트는 출시 초기 매주 500세트만 내놨는데 1분 만에 계속 매진되자 1000세트로 늘리는 등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소이연남, 툭툭누들타이 등의 맛집으로 유명한 타이이펙트도 9개 직영점을 내며 승승장구하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놓은 소고기 쌀국수 HMR 제품은 지난해 1월 출시 후 1년 만에 20만개, 매출액으로는 약 10억원 이상을 올리면서 직영점 한 곳 매출을 커버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HMR 산업은 증권가, IB(투자금융)업계에서도 ‘핫’한 단어다. ‘비비고’ 브랜드로 연매출 1조원을 달성한 CJ제일제당은 증권가 애널리스트 사이에 최선호주로 꼽힌다. 지난해 CJ제일제당은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 18조943억원, 영업이익 1조62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4%, 69.5% 증가했다. 동원F&B도 HMR 특수 여파로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 약 2조4000억원을 기록하면서 연간 매출 3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대상도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3조원 클럽 가입이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편의점에 HMR 제품을 확대하고 있는 BGF리테일, HMR 제조 대행을 해주는 우양 등도 향후 주가 상승 종목으로 분류된다. 김정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 가공식품 시장에서 HMR은 일시적인 수요 증가를 넘어 이제 구조적 성장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HMR 관련 스타트업 약진도 눈길을 끈다. 밀키트 시장점유율 1위 업체 ‘프레시지’는 2016년 창업 당시만 해도 매출액이 미미했으나 HMR 전문 공장을 계속 늘려나가고 ‘백년 가게’와 함께 독자적인 PB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면서 지난해 추정 매출만 1700억원 이상 됐다. 그 덕에 기업가치도 3000억원 이상으로 평가받으며 IB업계 주목을 받는다.

수산물 전문 스타트업 ‘얌테이블’ 역시 성장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8월 방송인 백종원 씨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바다장어 팔아주기’ 기획 때 ‘바다장어무조림’ 밀키트를 얌테이블 광주제조센터에서 공급하면서 유명해졌다. 꼬막무침, 대방어장, 딱새우장 등 자체 HMR 제품을 연간 50만개 팔아 매출액 60억원 정도를 올리고 있다. HMR이 선전하면서 2019년 321억원이던 매출액이 지난해에는 46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소셜미디어(SNS)상에서 음식 영상으로 팔로워 수 5000만 이상을 기록 중인 쿠캣은 그간 영향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HMR을 직접 만들어 파는 쿠캣마켓을 본격 가동해 2019년 180억원이던 매출액이 지난해 390억원으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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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진화할까

HMR은 분류상 밀키트(손질된 식재료와 양념이 포장된 형태·Meal Kit)부터 RTH(가열하면 먹을 수 있는 상태), RTE(그대로 먹을 수 있는 상태), RTP(재료가 준비된 상태), RTC(요리 할 수 있는 상태) 등으로 점차 세분화하고 있다. 이에 더해 유명 식당 혹은 셰프가 직접 레시피를 만들었거나 제조에 참여해 먹기 쉽게 만든 레디밀(Ready Meal·간편하게 데워 바로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 메디밀(Medi Meal·건강식단) 등 프리미엄 HMR로 진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예상은 실제로 현실화되고 있다. CJ비비고가 만두를 잇는 차기 글로벌 히트작으로 ‘레디밀’을 지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CJ제일제당은 미국 현지 유명 셰프, 맛집과 제휴해 밀키트를 비롯해 조리 과정을 대폭 줄인 ‘레디밀’ 신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메디밀 관련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현대그린푸드는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글로벌 장수(長壽)마을’ 식습관을 테마로 한 건강식단 ‘그리팅’을 선보였다. 에쓰푸드는 세브란스병원과 합작해 지중해식 식단을 한국형 메뉴로 재창조한 정기구독형 HMR ‘메디쏠라’ 서비스를 시작했다. 오세조 교수는 “내 집에 요리사를 들인 느낌의 고급형, 다이어트·면역 관리 등 건강식 수요에 맞춘 메디밀, 노령인구 전용식 등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킬 제품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HMR이 무조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다. 제조원가 관리부터 온라인 판매, 모바일 고객 응대, 물류까지 신경 쓸 게 워낙 많다 보니 아무리 유명 맛집이라도 도전하기에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임동혁 타이이펙트 대표는 “메뉴를 테스트할 때는 한 가지 메뉴를 백 번 이상 먹어보며 끓이는 시간, 가열하는 불의 세기 등 표준화된 조리법을 구축하는 식의 시스템 경영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수호·노승욱·나건웅·박지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4호 (2021.01.27~2021.02.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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