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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엄마·아빠 합의 땐, 엄마 성도 물려받게 된다…제도 변경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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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부성 우선원칙 폐기 검토

동거커플·룸메이트, 가족으로 인정

비혼 1인가구도 가족정책에 포함

자녀가 부모에 부양청구권 명문화

정부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양육책임 규정을 법에 담고, 이혼 등으로 자녀를 부양하지 않는 부모에겐 자녀가 직접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자녀의 성(姓)을 결정할 때 부모가 협의해 아버지나 어머니의 성을 고를 수 있도록 하고, 비혼ㆍ동거 커플도 가족의 범위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여성가족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안을 마련하고, 전문가와 일반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해 26일 오후 온라인 공청회를 개최한다. 여가부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양육책임 규정을 민법에 신설하고, 자녀가 부모에 대한 부양청구권을 가진다는 내용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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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민법은 ‘친권과 양육권을 가진 부모는 자녀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이혼하면서 자녀를 포기하는 경우 자녀에 대한 부양 의무도 없는 것처럼 읽힌다. 자녀가 부모에게 자기 부양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청구했는데도 부양 안 하는 부모에게는 향후 자녀 재산에 대한 책임을 잃도록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이혼 부모 중 자녀를 양육하는 쪽에 비양육 배우자에 대한 양육비 청구권이 주어진다. 아이에겐 자기 부양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 조부모나 위탁가정에서 아이를 맡아 기르고 부모가 외면하더라도 아이를 대리해 양육비를 청구할 수도 없다.

김 연구위원은 “가수 고(故) 구하라 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20년간 자녀를 돌보지 않던 친모가 구씨가 숨진 뒤 갑자기 나타나 유산의 40%를 받아갔다. 부모의 자녀 양육 책임을 명문화해 이런 걸 막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고 구하라 씨는 2019년 11월 숨졌다. 구씨의 아버지는 자신의 상속분을 아들(구씨의 오빠)에게 양도했지만, 20년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어머니가 상속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 이달 초 법무부는 부모가 자녀에 대한 양육의무를 저버린 경우 상속권을 상실시키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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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구하라씨에 빈소에 놓인 영정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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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아빠 성’ 대신 부모 협의해 결정



여가부는 자녀 출생신고 시 아이의 성을 정할 때 아버지의 성을 우선하는 기존의 원칙에서 벗어나 부모가 협의해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성으로 정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현재도 혼인신고를 할 때 부부가 협의하면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는 있다. 하지만 혼인신고 때 미리 정하지 않으면 자녀 출생신고 때 ‘부성 우선 원칙’이 적용된다.

김민아 여가부 가족정책과장은 “부성 우선 원칙을 부모 협의 원칙으로 전화하는 것은 법무부민법개선위원회가 2019년 개정 필요성을 권고한 사항이다. 관계부처 간의 오랜 논의가 있었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행 민법(779조)과 건강가정기본법(3조)에는 가족을 혼인과 혈연ㆍ입양으로 맺어진 관계로 정의하고 있다. 여가부는 이런 법률을 개정해 가족의 정의를 넓힐 계획이다. 결혼 제도 밖에 놓여있는 다양한 가족구성을 보장하고 혼인ㆍ혈연ㆍ입양 외에 친밀성과 돌봄에 기반을 둔 대안적 관계도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여가부는 비혼 1인 가구, 동거 커플뿐 아니라 애정 관계와 무관한 생활 파트너도 가족 정책의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1인 가구는 급격히 증가(2010년 23.9%→2019년 30.2%)하고, ‘부부와 미혼자녀’ 가구 비중은 감소(2010년 37.0%→2019년 29.8%)하는 등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이 빠르게 바뀌고 있어서다.

김민아 과장은 “국회에 계류된 민법 개정안(남인순ㆍ정춘숙 의원 발의)은 아예 가족의 정의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가족의 정의를 좀 더 폭넓게 보는 안과 삭제하는 안 중에 어떤 것이 현재 법 체계상 맞는지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 주택 청약을 위해 자녀 5명인 사람과 위장 결혼하는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렇게 가족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도록 장기간에 걸쳐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는 방안은 3차 기본계획에도 담겼던 내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동성 부부를 인정하자는 것”이라고 반발해 진척되지 못했다. 김 과장은 “동성 부부를 염두에 둔 것이 전혀 아니다. 제도권 밖에 있는 다양한 가족들,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초점 맞추고 제도를 개선하려는 것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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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가족 포용을 위한 차별 해소 과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여가부는 이와 별도로 개별 법률ㆍ제도를 손보는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은 공공 주거지원 관련 정책 대상에 ‘신혼부부’ 등 법률혼만 인정하고 있다. 여가부는 이를 비혼 동거나 생활공동체 등 가족 다양성을 반영해 변경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 지금은 수술동의서나 의료행위에 관한 설명ㆍ동의서에 법정대리인이나 가족만 서명할 수 있게 돼 있는 제도ㆍ관행을 바꿔 ‘본인이 지정한 자’가 서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채웅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기존 혼인ㆍ가족 제도는 너무 경직돼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완전히 새로운 권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 기존에 일부 보호 받던 권리를 제도화하는 수준이라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다만 여가부가 추진하는 기본 계획은 민법 등 다른 부처 소관 법률 개정 문제와 연결돼 있어 당장 시행되긴 어렵다. 여가부는 앞으로 관계 부처와 계속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관계 부처 협의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공청회 의견 수렴 이후 논의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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