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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헤럴드포럼] 반도체와 티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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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太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 큰일을 도모하려면 아무리 작은 규모의 협력이라도 마다하면 안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주 간결한 경구인 ‘티끌 모아 태산’에 다름 아니다. 45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사는 지구도 티끌이 모여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다만 전자가 포용의 리더십에 방점을 둔 것이라면, 후자는 검박함의 미덕을 강조한 것이다. 다소 무리가 있지만 티끌을 주제로 끌어내고자 생뚱맞은 비교를 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대업도 가능하지만 그 티끌을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클린룸의 고진공장비 내에서 수행되는 반도체의 식각 공정이다. 반도체 공정의 식각이란, 조각에서의 부조처럼 특정한 부분을 파내 패턴을 형성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식각 공정 중 발생하는 티끌(오염입자)이 실리콘 웨이퍼 위에 떨어지면 칩 불량을 일으켜 가격경쟁력과 직결되는 생산수율이 저하된다. 이러한 티끌 문제에 대한 대처 능력의 제고가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이 초격차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과제임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반도체 회로의 선폭이 점점 미세해짐에 따라 허용 가능한 수준의 티끌의 크기와 숫자도 작아지고 있다. 정밀도가 낮았던 반도체산업 초기에는 인체에서 떨어져 나온 티끌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때는 클린룸도, 방진복도 없었고 아주 초보적인 방책인 구리모(피부크림) 바르기와 마스크 및 모자 착용으로 불량률을 줄이던 때였다. 오늘날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초정밀 반도체 공정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불과 수십나노미터 크기의 티끌이 문제를 야기시킨다.

티끌과의 전쟁에서 최첨병은 식각 공정 장치 내부 소재라 할 수 있다. 다시 설명하자면 반도체의 식각 공정은 주로 플라스마 분위기에서 행해지는데 이 과정에서 플라스마와 부딪히더라도 티끌 발생이 최대한 억제되는 소재가 요구된다. 중국의 제조 강대국 산업화 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가 어려운 시기를 맞는 이유 중 하나가 선진국의 첨단 공정장비에 대한 대중국 수출 규제인데, 상기 장비 내부에 어떤 소재가 사용됐는가가 핵심 기술의 요체다. ‘티끌 모아 태산’이 정말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반도체산업의 지속 발전을 위해서는 티끌을 발생시키지 않는 우수한 소재의 개발이 절실한 것은 분명하다.

비전문가인 일반대중도 최종 제품인 반도체와 생산 공정장비의 실체와 중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대일본 무역분쟁과 코로나 사태에 의한 글로벌 가치사슬 붕괴 여파로 최근 들어 ‘소부장’이라는 용어가 보통명사로 익숙해졌을 만큼 소재 자체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제품이나 장치의 내부에 꼭꼭 숨겨져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때에 따라서는 분해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던 것이 소재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것이 소재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세상이 크게 변한 것을 느낄 때 ‘상전벽해(桑田碧海)’라든지, ‘격세지감(隔世之感)’ 등의 문자를 사용한다. 요즘 소재연구자들의 심정이 하나같이 이와 같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박영조 한국재료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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