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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사설] 미·중 패권 경쟁 속 시험대 오른 한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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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바이든 앞서 시진핑과 통화

반중 전선 견제하는 중국의 무언 압박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8개월 만에 전화 통화를 했다.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중요한 이웃 국가인 중국과 정상 간 소통의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시기 선택에서 엿보이는 중국의 노림수다. 청와대 관계자가 밝힌 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첫 전화 통화를 코앞에 두고 있다. 갓 취임한 국가 정상의 전화 회담은 순서 배치부터 외교적 함의를 갖는다. 한·중 통화는 중국 측의 요청으로 한·미 간 첫 통화가 이뤄지기 직전에 틈을 파고들어 이뤄진 모양새다. 더구나 청와대 관계자가 ‘신년 인사’ 차원의 통화였다고 강조한 대로 긴급 현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중국이 무엇을 노렸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시 주석은 바로 전날 다보스 포럼 화상연설에서 “국제사회가 자기들끼리 편 먹고 신냉전에 기댄다면 세계를 분열과 대결로 이끌 것”이라고 했다. 그 직후 문 대통령과의 통화를 선택했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구축하려는 대중국 포위망에 한국이 경솔하게 뛰어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억지 주장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그렇게 본다. 홍콩의 권위지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민주사회의 반중 동맹을 좌절시키기 위해 한국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중국은 시 주석의 업적을 치켜세운 문 대통령의 발언을 집중 부각시켜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중국의 국제적 지위와 영향력이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며 “두 번째 100년 목표의 실현을 위해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했다. 두 번째 100년이란 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세계의 선두 국가가 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을 뜻한다. 외교적 수사로 볼 수도 있지만 듣기에 따라선 여러 가지로 오해를 살 수 있는 발언이다. 과거 문 대통령은 “중국은 큰 산, 한국은 작은 산” “한·중은 운명공동체”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 일로에 접어들면서 한국이 처한 외교적 입지는 날로 좁아지고 있다. 한국이 친중 행보를 보이면 워싱턴에서는 대중경사(對中傾斜)론이 나온다. 중국은 사드 보복 때와 같이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한국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럴 때일수록 현명하고 슬기로운 처신이 요구된다. 경솔한 행동이나 발언, 적절치 않은 선택을 하는 순간 우리 국익은 큰 손상을 입게 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유일한 동맹인 한·미 관계를 외교·안보의 축으로 삼고 협력동반자 관계인 중국과는 실리에 바탕한 사안별 협력으로 윈-윈을 추구한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임기 1년여 남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이 그 어느 때보다 냉혹한 시험대에 올라 있음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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