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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왜냐면] 정청래 의원님, 제가 바로 ‘방통대 출신 변호사’입니다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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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은선

변호사·전 고등학교 교사


나는 방송통신대학교 출신이다. 로스쿨 입학 준비차 방송대 법학과를 다녔다. 그런 내게 방송대 로스쿨 법안을 발의하며 “방통대 출신은 변호사 되면 안 되냐”고 한 정청래 의원의 발언은 답답하다. 방송대 로스쿨은 차별 아닌 ‘교육’의 눈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방송 의대’, ‘방송 교대’가 왜 없을까. 해부실습이나 교생실습을 온라인으로 할 순 없어서다. 직장이나 가사에 매인 이들에게, 출석수업이 필수가 아니고 시험도 과제 제출로 대체 가능한 온라인 강의는 효과적이지만 ‘실무적·전문적 교육’에선 한계가 있는 거다.

그런 점에서 방송대 로스쿨 도입 발의는, 안타깝게도 현 로스쿨에 실무적·전문적 교육 없음의 반증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가 ‘교육을 통해 실무적이고 전문적인 변호사들을 많이 배출해 시민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쉽게 이용’하도록 사법개혁 차원에서 설립한 로스쿨. 하지만 그 설립 취지는 공허해졌다.

로스쿨 입학 준비 시 조언자들은 내 자기소개서에 대해 한결같이 “이렇게 쓰면 떨어진다”고 했다. 조언대로 전직 교사로서 변호사가 되어 교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지 쓴 부분을 모조리 들어냈다. 대신 내가 고시생으로 얼마나 적합한지를 담았다. 오래된 임용시험 성적표를 찾아냈고 세탁된 방송대 법학과 성적표를 첨부했으며, 이미 민법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고 입학하면 합격을 위해 전력 질주할 것임을 강조했다.

그렇게 입학한 로스쿨은 고시학원 내지 법대 고시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니 고시학원조차 아니었다. 몇몇 수험 적합 과목들이 아니면 학생들은 대부분 로스쿨 수업보다 변호사시험 학원 강의에 의존했다. 리걸클리닉 등 실무수업이나 전문법 수업은 사치였다. 서면작성수업에선 의뢰인 상담 기술과 사실관계 분석 및 논거 정리 방법 등이 다뤄지지 않았다. 그저 제한시간 내에 득점 포인트를 공략하며 점수 잘 받는 답안지 만드는 합격 비법만이 강조됐다. 교수들조차 학생들이 사법시험 1차 합격자들을 중심으로 스터디를 하며 좀 더 고시생답기를 장려했고 의료법, 중국법 특성화 로스쿨들에선 그 법 수업들이 폐강되기 일쑤였다.(최근 발생한 변호사시험 문제 유출 사건의 이면에도 한 로스쿨 교수의 제자들 합격을 위한 삐뚤어진 사랑이 자리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로스쿨이 왜 필요할까. 의문이 들었다. 이런 변호사시험을 왜 로스쿨 출신자만 (그것도 졸업한 뒤로부터 5년 내에만) 볼 수 있을까. 이해되지 않았다. 변호사의 자격은 그저 변호사시험 등수로 부여되거늘 로스쿨 출신이 아니면 시험장에 들어서지도 못하는 것은 참으로 부당하지 않은가. 그 점에서 나는 ‘방송대 로스쿨’에 일단 찬성한다. 어쨌든 변호사 자격에 대한 접근 기회 확대니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답일까? 접근과 기회만 생각한다면 진짜 답은 차라리 ‘변호사시험의 전면 개방’이다. 변호사시험만 두고 이제라도 로스쿨을 아예 없애야 하는 거다.

여기까지 보면 나는 ‘로스쿨 폐지론자’다. 하지만 ‘그냥 폐지’는 아니다. 이대로 둘 거라면, 기득권 법조인들의 이익만을 위해 변호사시험 자격시험화와 로스쿨 교육 정상화를 거부하며 이대로 로스쿨 고시학원화를 방치할 거라면, 그렇다면 차라리 로스쿨을 폐지하란 얘기다.

변호사시험 합격률 통제는 로스쿨에서 ‘교육’을 실종시켰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면, 법조인은 의료인·교사와 달리 시험 잘 보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니까 교육이 있건 없건 기회의 평등 같은 형식적 공정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정청래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은 입학전형에 법학학점 이수 요건은 물론 법학시험까지 있어 실상 예비시험 도입인 방송대 로스쿨을 설립해도 좋다. 아니 차라리 로스쿨을 폐지하고 사법시험을 부활시키는 편이 낫다. 로스쿨 설립 취지를 십여년 만에 잊어버린 기억력이 놀랍기만 하지만 그런 망각과 변화(또는 변절)가 민주당의 법조인 양성 시스템에 관한 새로운 정의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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