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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기자의눈] '싸가지 있는' 정치인 조수진은 왜 '후궁'을 떠올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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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 뜻 모를리 없는데…"뜻하지 않은 논란 안타깝다" 해명

언론인 출신 여성의원, 여성 비하를 '독설'의 소재로

뉴스1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재산을 축소 신고한 혐의로 기소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위반 혐의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1.1.27/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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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률 기자 = 2021년 국회에서 '조선시대 후궁'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발언자는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싸가지 있는 정치인이 될 것을 다짐한다"고 했던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다.

'후궁' 논란의 전말은 대략 이렇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저격했다. 그러자 조 의원이 고 의원을 향해 "조선시대 후궁이 왕자를 낳았어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정권 차원의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후궁'이라는 말을 꺼낸 것.

정치권에 여야 의원들이 원색적인 말로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하지만 야당의 공격수 격인 조 의원은 유독 구설에 자주 오르고 있다. 조 의원이 굳이 '후궁'이라는 단어를 동원한 것에 어떤 꼬인 심사가 담겨 있을까.

'후궁'(後宮)의 사전적 뜻은 제왕의 첩을 말한다. 양성평등을 외치는 국회에서 언론인 출신의 여성 의원이 동료 여성의원을 빗대는 말로 사용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조 의원은 같은 당 동료를 비하한 고 의원을 비판하다 나온 우발적 표현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 입성 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조 의원의 언어습관을 보면 이번 후궁 논란은 단순한 실수라고 넘기긴 어려워 보인다.

조 의원은 지난해 5월에는 미래한국당 대변인 시절 의정 연찬회를 앞두고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 "문희상(국회의장)이라는 정치인 하면 단연 '봉숭아 학당'이 떠오른다"며 "엽기적인 학생들이 선생님을 상대로 난장을 벌이는 옛 개그 프로그램처럼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내놨다"고 했다.

유인태 사무총장의 별명 '엽기 수석'도 언급했다. 조 대변인은 "'엽기수석'이란 별명으로 불린 유 총장은 졸지 않은 모습을 거의 뵌 기억이 없다"고 했다.

조 의원이 기자시절 만났던 문희상 국회의장과 유인태 사무총장을 회고하면서 상대방을 깎아내린 것이다. 당시에도 조 의원이 즐겨 사용하는 비유들이 품격이 떨어지고 상대를 폄훼하는 정도가 좀 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조 의원은 "'웃자고 하는데 죽자고 달려든다'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이더라"고 했다.

법제사법위에서도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조 의원은 초선으로서 '야성'을 발휘하고 있다. 여당에 비해 수적 열세에 있는 야당에서 일약 '주포'의 자리를 꿰 차면서 든든한 화력 지원을 담당한다. 특히 세간의 주목을 끄는 현란한 비유와 상대의 특성과 약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동물적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설화급 논란을 불러온 '후궁'이라는 단어 역시 고민정 의원을 둘러싼 이미지와 정치적 자산들과 교묘하게 얽혀 있다. 고 의원이 초선의 여성 정치인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캠프시절부터 함께한 최측근이자 청와대 대변인를 지낸 후 여의도에 입성했다는 점, 친문 그룹의 의원으로서 21대 국회에서 주목받은 인기 정치인이라는 점들을 모두 묶어내 비난의 지점으로 삼았다.

고 의원이 언론인 출신으로서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라는 점과 청와대 대변으로 쌓은 국정 경험의 폭과 깊이,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결심하면서 거친 고민의 시간, 치열한 선거 과정을 거쳐 지역구민의 선택은 받은 모든 과정을 '후궁'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폄훼해 버린 것이다.

후궁 논란이 커지자 조 의원은 결국 고 의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해당 글을 내리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조 의원은 "본래 취지와 달리 모욕이나 여성 비하로 논란이 되고,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부당한 비유에 대해서는 속시원하게 사과하지 않아 찜찜한 뒷맛을 남겨 놓았다.

조 의원은 "비유적 표현이 여성 비하의 정치적 논란거리가 됐다는 자체가 가슴 아프다. 애초 취지와 달리 비유적 표현이 정치적 논란이 된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했다. 표현에 악의적 의도는 없었다는 항변이다.

조 의원은 짧은 사과 글에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취지가 잘못 전달돼 정치적 논란이 된 것이 미안하다고만 했다. 후궁이라는 표현의 부적절성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면 좀 더 사과의 의미가 명확했을 것이다.

과거 조 의원 자신도 민주당 의원들의 사과 방식에 대해 비난한 적이 있다.

지난해 8월 이재정 의원 등이 민주당 혁신 라이브 독수리 5남매 방송에서 당시 미래통합당 법사위원들을 겨냥해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도 되나"라고 해 논란이 됐다. 결국 이들은 "부적절 했다"고 사과했지만 조 의원은 "해명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고 의원과 민주당 쪽에서 조 의원의 이번 사과 방식에 "해명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해도 크게 반박할 말은 없을 듯싶다.
jr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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