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선 '○○○을 파면한다.'고 결정내리는 탄핵심판 특성을 고려하면, 이미 퇴임한 상태의 임 부장판사에게 '파면' 결론은 의미 없는 것 아니냐고도 합니다. 우리 법에는 퇴임·사임 공직자의 탄핵 소추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법관 징계'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한상희 교수는 임 부장판사가 퇴임한 뒤라도 '파면'의 실익이 있다고 봤습니다. 파면 결정이 내려지면, 5년간 공직에 임용될 수 없고 변호사 등록이 거부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한 것입니다. '파면'에서 파생되는 징계 효과를 고려하면, 이번 탄핵 심판을 통해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더 나아가 한상희 교수는 앞으로도 법관 탄핵을 하나의 징계 절차로 바라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법관 등 강력하게 신분이 보장된 공직자들에게 조직 내부에서 징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 헌법적인 징계절차가 마련돼 있다는 것이지요. 경미한 위법·위헌 행위라면 법관징계법에 따라 정직 1년 이하의 징계를 받겠지만, 중대한 경우엔 탄핵을 통해 '파면'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본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일본 탄핵 재판소에선 여성을 스토킹하거나 불법촬영을 한 법관들, 향응 접대를 받은 법관 등을 파면한 전례가 있습니다.
◇'헌법 수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노희범 전 헌법재판소 연구관은 탄핵 절차의 본질을 2가지로 나눠서 설명했습니다. 먼저 공직자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을 탄핵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볼 수 있겠죠. 반면 헌법을 위반한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나서서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탄핵의 본질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파면'이 갖는 징계의 성격은 따로 얘기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사법농단' 사건을 헌법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노희범 전 연구관은 '주문'에서든 '결정 이유'에서든, 헌법재판소가 이번 사건의 위헌적 성격을 설명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내다봤습니다. 송기춘 교수도 "심판청구를 각하하더라도 위헌성에 대한 부분은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형사 처벌이 가능한지, 직권남용죄 법리 안에서만 심리했던 법정의 판단과는 달라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대통령 탄핵과는 다른 '중대성'의 무게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때'에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질서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기억하고 있는 건 대통령 탄핵입니다. 하지만 토론자들은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고려된 '중대성' 수준을 그대로 대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서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인 정당성을 고려하면, 대통령 탄핵은 다른 공직자들 탄핵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 한 사람을 쫓아내느냐", "2300명 법관 중 한 사람을 쫓아내느냐" 라는 두 가지 질문에서 '중대성'의 무게는 다르게 고려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 부장판사가 탄핵 당할 만큼 중대한 헌법적 문제를 저질렀느냐는 질문이 남습니다. 토론자들은 모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임성근 판사의 재판 개입으로 인해 헌법에 명시된 법관 독립의 근간이 흔들렸다는 것입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결이 이렇게 하찮게 이뤄지는가 하는 의문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한상희 교수도 임 부장판사가 '대리재판'을 했다고 표현하면서, 군사독재시절의 '쪽지재판'에도 비유했습니다.
◇'법관 탄핵' 물음표 풀어내기
임성근 부장판사 한 명 뿐 아니라 법관 수십 명이 연루됐던 사법농단 사건. "퇴임한 법관을 탄핵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양승태 전 대법원장 퇴임 전에도 나왔던 질문이었죠. 사상 첫 '법관 탄핵' 절차 곳곳에선 물음표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 중 가장 먼저 탄핵의 기로에 선 이번 사건은 '법관 탄핵'의 백지 위에 기준을 하나씩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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