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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레이더P] 국민의힘, 또다시 막연한 환상에 빠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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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는 몸담은 조직을 꿰뚫고 있다. 하지만 구성원이기에 공론화할 가치가 있음에도 알고 있는 것이나 마음속 주장을 솔직히 밝히기 어렵다. 레이더P는 의원과 함께 국회를 이끌고 있는 선임급 보좌관의 시각과 생각을 익명으로 담은 '복면칼럼'을 연재해 정치권의 속 깊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4연패 뒤 이번엔?

지난해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은 막연한 환상에 빠져 있었다. 헌정사상 전국 단위 선거에서 네 번 내리 승리한 정당이 없다는 전례에 기반한 희망 섞인 전망, 중진은 험지로 청년들은 사지로 내보내 역전의 드라마를 써보겠다는 무모한 용기, 정부의 실정과 코로나 대응에 정권 심판론을 내세워야 한다는 상황적 오판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실체도 없는 희망에 목을 매다가 결국 4연패 정당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상상도 못했던 보궐선거의 기회가 주어졌고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국민의힘으로서는 질 수도, 져서도 안 되는 선거다. 그런데 상황이 심상치 않다.

총선 당시 막연한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모습이 마치 데자뷔처럼 떠오른다. 진다면 그냥 끝일뿐이고, 운이 좋아 이겨도 당의 개혁과 대선 승리의 교두보가 되지도 못할 상처뿐인 승리가 될 수 있다. 내부자 입장에서 봤을 때, 국민의힘이 안 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지도자는 있는가

첫째, 지도자가 없다. 지금 지도부는 지도자이기보다 스스로 관리자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다. 보궐선거를 이기면, 비대위원장의 임기가 끝나면 등 미래적 시점에 기대를 걸고 다음을 기약하며 현재의 문제에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현상 유지를 하면서 욕먹지 않을 수준으로 당을 운영하는 것이 지상과제 같다. 그 누구도 책임과 명운을 걸지 않는다. 정치의 생명력은 대권을 향한 정당의 경쟁에서 나오듯, 정당의 생명력은 당권을 향한 내부 경쟁에서 나온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경쟁이 있는가.


그저 이목을 끄는 인플루언서가 되려는가

둘째, 지도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 국민의힘 최대 계파는 56명의 초선 의원들이다. 이들 특징은 계파색이 옅다는 것이다. 초선들이 공천을 받기까지 '신세'를 진 실세들이 원내에 없기 때문에 그간 계파에 치여 엄두도 못 낸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기대만 컸다.

정치인은 지도자이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 지도자가 되려 하지 않고 블로그 조회 수와 인스타 폴로어 수, 유튜브 구독자 수에만 열을 올리는 인플루언서가 되려 하는 듯하다. 무엇을 해보겠다는 결사체도 없다.

심지어 일부 비례대표 의원 중에는 벌써부터 대선에 기여해 장관을 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는 말이 딱이다.


최악을 대비하고 있는가

셋째, 시나리오가 없다. 정치는 내부적으로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려에 둔 사람들이 없다. 그러다 보니 위기감이 없고, 결기가 없고, 대안이 없는 것이다. 누워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듯 집권 세력의 실책과 여권을 비판하는 외부 논객들의 입만을 바라본다.

서울시장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단일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만 있을 뿐 어떻게 단일화를 이뤄내고 승리를 이끌어 낼지, 단일화가 안 됐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나리오도 없다.

국민의힘에 있어 정치적 낙관주의는 정권 심판을 바라는 국민의 허무주의만을 야기할 뿐이다. 지금 집권 세력이 보이는 행태의 근거를 국민의힘 스스로가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관리자가 아닌 지도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조회 수가 아닌 결기, 그리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태도가 절실하다.

[국민의힘 L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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