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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김규식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조직위원장 ‘여성비하’ ‘성추행’논란에 바람잘날없는 도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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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에서 벗어나, 혼란의 7년 반.’

최근 일본 언론에서 ‘2020 도쿄올림픽’을 두고 이런 뉘앙스의 표현이 나왔다. 올해 2월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회장이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사퇴한 것을 비롯해 과거 ▲경기장 건설 혼란 ▲일본올림픽위원회(JOC) 회장의 뇌물제공 혐의 ▲표절 의혹으로 엠블럼 취소·재공모 소동 ▲마라톤·경보 경기 개최지 변경 ▲전염병에 따른 사상 초유의 ‘연기’까지, 2013년 9월 도쿄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이후 벌어졌던 사건들이 범상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도쿄올림픽은 오는 7월 23일 개막을 앞둔 상황에서도 당혹스런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도쿄올림픽 조직위의 수장이다. 코로나19로 정상개최 여부에 대한 논란·불확실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모리 조직위 회장이 여성 비하 발언으로 올림픽 정신인 ‘평등’을 훼손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은 끝에 물러났다.7년 반의 고비를 넘으며 어렵게 여기까지 온 도쿄올림픽이 또 한 번 큰 홍역을 겪고 있는 셈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모리 회장은 올해 2월 3일 JOC 임시 평의원회에서 여성 이사 증원 문제를 언급하면서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에) 시간이 걸린다”고 발언했다. JOC는 20% 수준인 여성이사를 40%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리 회장은 자신이 회장·명예회장을 맡았던 일본럭비협회에서 의사진행에 시간이 걸렸던 점을 지적하며 “여성은 경쟁의식이 강해 누군가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하면 자신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래서 모두가 발언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여성 이사를 늘리게 되면 발언 시간을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회의가 좀처럼 끝나지 않아 곤란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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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모리 요시로(森喜朗)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평등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올림픽을 끌어갈 사람이 이런 발언을 한 게 용서될 리 없다. 모리 회장의 발언 후 일본 여론·언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모리 회장은 발언 다음날인 2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올림픽·패럴림픽 정신에 반하는 부적절한 표현이었고 깊이 반성한다”며 사죄하고 발언을 철회했다.

하지만 사과 정도로 논란이 수그러들 발언이 아니었다. 일본 언론에서 모리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사설 등이 나왔고 여론의 비판도 거세졌다. 해외 언론의 보도도 잇따랐고 일본 내 외국 대사관들의 항의도 이어졌다. 주일 유럽연합 대표부는 트위터에 ‘#성평등’ ‘#침묵하지마라’ ‘#남녀평등’ 등의 해시태그가 영어와 일본어로 달린 게시물을 올렸다. 주일 독일대사관과 스웨덴 대사관 등도 같은 내용의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을 트위터에 올렸다. ‘성차별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다’로 시작하는 온라인 캠페인도 서명이 이어졌다. 모리 회장의 발언에 실망한 자원봉사자들의 사퇴가 줄을 이었고 일본 야당 여성 의원들은 항의의 의미로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인 ‘흰색’ 옷을 입고 국회에 등원하기도 했다. 여기에 도쿄올림픽의 주요 스폰서들도 ‘올림픽 정신에 맞지 않고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완전히 부적절하다’는 성명을 발표하자 결국 모리 회장이 손을 들었다. 모리 회장은 결국 지난 2월 12일 “중요한 것은 올림픽을 제대로 7월에 개최하는 것이고 그 준비에 내가 방해가 되면 안 된다”며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2014년 1월 출범 때부터 조직위를 이끌어온 모리 회장의 후임으로는 당초 가와부치 사부로 전 일본축구협회 회장이 거론됐으나, 이사회 등을 통해 좀 더 투명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없던 일이 됐다. 논란을 일으킨 모리 회장이 후임을 내정하는 형태가 되자 밀실 인사라는 비판이 일어났고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여성이나 젊은 사람에 후임을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조직위는 후보자 검토위원회와 이사회 등의 절차를 거쳐 지난 2월 18일 하시모토 세이코 올림픽담당상(장관)을 새 회장으로 선임했다. 하시모토 회장은 스피드 스케이트·사이클로 동·하계올림픽에 7차례 참전한 여성 경기인 출신이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일본 최초의 여성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1995년 자민당 참의원으로 정치경력을 쌓기 시작해 2019년 9월에는 올림픽담당상으로 발탁됐다. 조직위가 여성 비하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며 떠난 모리 회장의 후임으로 여성 회장을 임명하는 수를 뒀지만 이번에는 ‘성추행’ 문제가 재조명되며 국내외 언론에 등장했다.

하시모토 회장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후 열린 뒤풀이 행사에서 술에 취해 남자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다카하시 다이스케에게 키스했는데 이것이 일본 주간지를 통해 보도되며 물의를 빚었다. 당시 다카하시 선수는 “성추행으로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하시모토 회장이 일본 스케이트연맹 회장이자 선수단장이었기 때문에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추행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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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회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그때도 지금도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일본 주간지 슈간분순은 최근 “하시모토 씨의 성추행은 다카하시 한 건이 아니며, 피해자 중 한 명인 전직 여성 의원이 하시모토는 술에 취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입을 맞추는 버릇이 있다는 증언을 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이 사건들은 올림픽 개막이 6개월도 남지 않은 2월에 벌어진 것이지만, 그 전에도 도쿄올림픽을 두고는 크고 작은 사건·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도쿄올림픽은 당초 ‘콤팩트 올림픽’을 표방하며 선수촌 8㎞ 이내에 경기장의 85%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예산을 너무 작게 계산했던 탓에 이런 계획을 실현하기 어렵게 되자 2014년 1월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출범한 후에는 신설하기로 했던 농구·배드민턴 경기장 등에 대해 기존 시설을 이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렇게 되면서 경기가 개최되는 지역은 도쿄를 포함해 10개에 달하게 됐다.

비용 문제는 주경기장을 두고도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당초 주경기장으로 사용될 국립경기장 리모델링 디자인·설계로 이라크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을 선정했다. 거대한 우주선을 닮은 디자인으로 국립경기장 재건축을 추진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건설 예산이 걸림돌이 됐다. 1300억엔 정도로 예상했던 공사비가 2500억엔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이자 결국 2017년 7월 계획을 백지화하고 결국 디자인·설계를 재공모했다.

2015년에는 표절 논란도 있었다. 도쿄올림픽조직위는 2015년 7월 일본의 유명 아트디렉터 사노 겐지로가 제출한 작품을 대회 엠블럼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절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벨기에의 그래픽 디자이너 올리비에 데비가 2년 전 제작한 벨기에 극장 로고와 비슷하다는 의혹이 나온 것. 사노는 기자회견을 통해 “어떤 디자인이라도 매우 시간을 들이며 내 자식처럼 키운다”며 표절 의혹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가 디자인한 다른 문양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고 결국 2015년 9월 도쿄올림픽조직위는 사노가 제출한 엠블럼 사용 계획을 백지화하고 새 작품의 공모에 들어가기로 한다.

도쿄올림픽의 잔혹사는 2019년에도 이어진다. 재선이 유력해보였던 다케다 스네카즈 JOC 회장이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뇌물을 주고 일부 IOC 위원들을 매수했다는 혐의로 프랑스 사법당국 수사를 받았고, 결국 2019년 6월 퇴임했다. 2019년 11월에는 올림픽이 열리는 도쿄의 무더위 때문에 ‘마라톤·경보’ 경기 지역이 홋카이도 삿포로로 변경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도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IOC가 내린 결정이다. 그리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던 도쿄올림픽이 지난해 3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코로나19는 도쿄올림픽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김규식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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