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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으려다 수업 놓칠라... 탄력급식 권고에 학교마다 '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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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방역 현장 점검에 나선 정세균(오른쪽에서 세 번째) 국무총리가 25일 오전 다음 주 개학을 앞둔 서울 영등포구 영신초등학교 급식실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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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한 초등학교에서 영양사로 근무하는 A씨는 최근 교육청의 학교 '탄력급식' 공문을 받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앞으로는 원격수업 중인 학생도 신청을 받아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라는 내용인데, 정작 구체적인 방안이나 지침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부모들 의견은 교육청과 달랐다. A씨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 반대가 심해 일단 3월은 탄력급식을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학교 방역에서 제일 위험한 시간이 마스크를 벗는 점심인데, 등교도 나눠 하는 마당에 모여서 밥 먹으라는 게 말이 되냐는 반발이 많았다”고 전했다.

26일 교육계에 따르면 새 학기를 앞두고 원격수업을 하는 학생도 원하면 학교에 가서 급식을 먹도록 하는 ‘탄력급식’ 운영을 두고 학교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 취지는 좋으나 학교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전형적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다.

지난달 28일 교육부는 올해 학사운영 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가정에서 원격수업을 듣는 학생도 희망하면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안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등교 중지가 이어지면서 학생들이 밥을 굶거나 인스턴트식품을 자주 먹는다는 지적이 많은 데 따른 결정이다.

문제는 학교 현실에 비춰보면 시행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학생이 원격수업 도중 점심을 먹기 위해 학교를 오가는 경우 통학거리가 멀면 점심시간 전후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된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장 B씨는 “학교 배치 기준이 통학 거리 30분 이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집이 먼 학생은 학교에 왔다가는 데만 한 시간이니 점심시간 앞뒤 수업을 제대로 못 듣는다"며 "이런 학생을 배려하려면 결국 원격수업을 쌍방향이 아닌 '과제형'으로만 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탄력급식 신청자가 많을 경우 수업 시간표를 다시 짜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B씨의 학교는 지난해보다 등교 학생 수가 많은데 ‘한 칸 띄어앉기’를 해야 하니 급식실을 예년의 절반밖에 사용할 수 없어서 점심시간을 20분 늘렸다. 그런데 탄력급식 신청자가 많으면 점심시간을 더 늘리거나, 학년별 시간을 달리해 나눠서 급식을 제공해야 한다. B씨는 "2, 3개 학년 수업을 동시에 맡는 교사도 있어 현실적으로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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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보낸 급식 운영방안 공문. 제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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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급식을 신청한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으면 잔반 처리도 문제가 된다. 학교 급식은 통상 한 달에서 일주일 전 미리 식재료를 신청하는데, 탄력급식은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 주문하기가 어렵다. 이희원 학교비정규직노조 경기지부 영양사분과장은 “교육청이 탄력급식 수요 조사 주체를 명확히 하지 않아 일부 학교는 영양사가 전교생을 조사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신청해 놓고도 해당 학생이 오지 않으면 남은 음식은 쓰레기가 된다”고 우려했다.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가 4월 초 새로 구성되기 때문에 탄력급식 방안에 대해 실제 학교 구성원 간 협의를 제대로 거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A씨는 “현재 우리 학교 학운위 학부모 위원 6명 중 4명이 6학년 학부모”라며 “자녀가 졸업한 마당에 탄력급식 방안을 결정해야 하는데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개학 나흘을 앞둔 26일까지도 대부분의 학교가 구체적인 탄력급식 운영 방법을 결정하지 못한 채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 의견조사만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부작용을 우려해 강원도교육청은 탄력급식을 운영하지 않고, 저소득층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급식카드 지원을 확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원격수업 중인 아이들이 학교에 드나들면 방역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통학 거리가 길면 오히려 탄력급식으로 사고가 발생하거나 학습에 지장받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등교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를 가정에 보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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