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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대한민국 발칵 뒤집은 학폭...10년 전 중학생 유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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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사이버로 번진 학폭 그래픽


"매일 맞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벌써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지난 2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학폭 사건을 보면 항상 떠오르는 중학생의 유서'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에 나온 유서 내용의 일부다. 작성자는 고인이 남긴 유서의 일부를 올리며 "가끔 가해자에게 너무 가혹하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이 학생의 유서를 떠올리면 마음을 다시 다잡게 된다"고 적었다. 이어 "피해자와 그 가족은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데 가해자도 똑같이 당해야 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이 유서는 지난 2011년 학교폭력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故 권모군이 남긴 것이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권군은 물고문과 구타, 금품 갈취 등 동급생의 상습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권군은 집 거실에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를 남기며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보복이 두려웠다"며 신고하지 못한 이유를 적었다.

'대구 중학생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권군이 남긴 유서 전문이 공개되면서 공분을 일으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 2월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됐고, 6월에는 학교폭력 근절 범정부대책의 하나로 학교폭력전담경찰관(SPO)제도가 도입됐다.



'대구 중학생 자살' 10년 지났지만, 학교폭력은 계속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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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일러스트.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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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폭력은 계속된다. 지난달 교육부와 17개 시도 교육청이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이버폭력 비중이 2019년 8.9%에서 지난해엔 12.3%로 증가했다. 피해장소가 '학교 밖'이라는 응답은 2019년 25.1%에서 지난해 35.7%로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면서 학교 밖이나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 등의 사이버 공간을 통한 학교 폭력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언어폭력, 사이버불링 등 학교폭력은 모두 학교 내·외에 관계없이 일어날 수 있다"며 "학교 안에서는 감시할 수 있는 도구도 있고 학교가 적극적 대응도 하지만 사실상 아이들은 학교보다 학원 등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낸다. 이런 학교 밖과 같은 사각지대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밖 공간에서의 학교 폭력이 늘어남에 따라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분리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승 위원은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빨리 전학시키거나 퇴학시키는 데에 급급한데, 피해 학생의 입장에선 가해 학생이 퇴학해봤자 학교 밖이나 SNS상에서 또 만날 확률이 높으니 가해 학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 학생이 더는 그런 행동을 못 하게 하는 게 중요하고 피해 학생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그 과정에서 치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도보다 분위기 문제"



전문가들은 제도는 이미 다 마련이 돼 있다며 학교폭력을 가볍게 보는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승 위원은 "금품갈취나 성폭행 등 우리가 봤을 때 강력범죄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심각한 문제도 생기는데 이를 그냥 학교폭력으로 치부해버리면 안 된다"며 "가해 학생에 대한 실질적 사법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윤호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법률사무소 사월)는 "학교폭력위원회와 같은 많은 제도가 도입됐고 학폭위가 작년에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되는 등 보완된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아직 사이버 불링 같은 신종 학교폭력에 대해 선생님이 심각성을 잘 인지 못 하고 또 실제 학생들 사이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폭력 유형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관심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심각성을 인지하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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